제7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 강지혜, 손효경
구두 / 강지혜
'구두'
고단 했던 시간
훌훌 털어 버리고
밤 내린 신발장
아버지의 구두도 잠이 들었다
바람 불어
흙먼지 일던 길을 걸었지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또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코끝에 햇살 내려와
밝게 빛나게 될 날은
언제일까
멀어도
바람 속
꿈을 안고 걷는 이 시간
언젠가는 꼭
비단길이 펼쳐지겠지
빛바랜 구두
닳은 굽 모서리
먼 꿈을 꾸며
달빛 한 자락 끌어 덮는다
[수상소감]
온 세상이 은빛으로 물들어 있는 눈 내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눈꽃이 가슴 가득 들어옵니다.
언젠가, 새해 첫날 신문 지면에 당선 소감과 내 사진이 실릴 멋진 날을 꿈꾸어 왔던 시간 속에
지금 놓여져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미리 소감문을 써보며 혼자 웃기도 했었고, 미리 사진을 찍어보며 가상의 극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술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지칠 때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부축여 힘을 내었습니다.
우선 제게 힘찬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함을 전합니다.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질로 좀 더 낮은 자세로 걸어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진정한 시인이 되겠습니다.
집안 일을 거들며 적극 격려해주는 남편과 항상 엄마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외쳐 봅니다.
제게 시의 문을 열어 주신 스승님, 문협 선생님들과 오늘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짧디 짧은 글 속에서나마 인사를 드리며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한 분들을 잊지 않고
더욱 박차를 가해 좋은 글 세상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때때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오늘의 기쁨을 안기 위한 시간이었고,
더 튼튼하게 자라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아직도 설렘에 가슴이 벅찬 날, 자신에게 또 최면을 걸어 봅니다.
넌 언젠가 든든한 뿌리가 될거야! 더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라고.
[가작] 정중한 각도 / 손호경
관솔 몇 점으로 술잔을 만든다
그 잔에 향기를 가득 채우면 그가 나를 차지할 것이다
먼저 톱을 켜서 곁가지를 자른 다음 용각무늬가 새겨진 몸을 열어놓는다
빗물로 몸을 닦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던 한 생이
압축된 곡선을 고담하게 품고 있다
끌 머리를 토닥이며 흑반점 하나를 도려내자 메아리가 퍼렇게 울려 퍼진다
그늘이 엷은 바람을 일으키자
그 몸에 우주를 그리듯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숨을 멈춘 채 굳은 살점을 파들어간다
날 선 끌을 튕겨내다가 제 무늬를 가무리며 끌을 물고 늘어진다
어느 누가 제 몸을 호락호락 내어줄까
정중한 각도로 손잡이를 고쳐 잡고 청정한 마음으로 살점을 들어낸다
구멍이 깊어질수록 관솔은 유순해지고 한 생애를 묵언으로 간직해온 감로정의 향기가 무늬의 간극 마다 흘러나온다
두 손 위로 올라앉은 술잔
울창한 솔밭 한 채가 그 안에 담겨있다
[수상소감]
응모 후, 마음을 텅 비운 채 차라리 눈이 내리길 기다렸다.
눈을 맞으며 ‘풀밭’에 가고 싶었다.
허름한 건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옥상이 있고 한쪽 옆에 낡은 옥탑방이 있다.
풀 향기 풍기는 그곳에서 나는 꿈을 키워나갔다.
늦은 밤까지 서로의 작품에게 매를 대는 날이면 허기보다 절망감이 먼저 찾아올 때가 많았다.
누가 걸어놓았을까, 창밖에 걸린 풍경소리에 조용히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 작은 풍경소리가 바람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울려나왔고 내 생각은 점점 깊어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각도로 대했을 때만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풀 한포기를 뽑는다거나 작은 못 하나를 박는 일까지도 각도가 어긋나면
풀잎만 뜯기거나 못만 휘어지지 않았던가.
나는 그 각도를 정중한 각도라고 생각했다.
모든 삶에 있어서나 버림받은 시에게까지도 정중하고 싶었다.
막상 당선이 되고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정중했을지,
기쁨 뒤에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부끄러워진다.
많이도 부족한 시를 놓고 고민하셨을 심사위원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부족함이 덜어지도록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시는 선배님들과 열띤 합평 후에 늘 손잡아주시는 모든 풀밭 식구들이 고맙다.
그리고 용기를 주셨던 마경덕 시인님을 비롯하여 풀밭에서 스쳐간 모든 인연들도 고맙다.
유일한 독자가 되어주고 비평까지 아끼지 않았던 아들 동흔,
당선이란 한 마디를 듣고 병환 중에도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그
웃음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심사평]
산문 부분에서는 머니투데이가 실시하는 경제신춘문예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맹목적인 절약을 강조하거나 경제용어와 현상을 설명하기에 바쁜 글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이야기 안에 여러 경제적 행위와 현상을 녹여내는 작품들이 늘었다.
시와 산문을 통틀어 대상작으로 뽑은 <옵션>은 주식시장의 파생상품인 ‘옵션 거래’가
어떤 성격의 상품인지를 옵션거래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는 인물을 통해 박진감 있게 보여주었다.
그냥 옵션에 대한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품의 특성과 누구나
기대하는 한방에 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위험성에 대해서까지 화자의 입을 통해
이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소설 안에 아주 적절하게 녹여낸 솜씨가 만만치 않다.
주인공의 내력과 그곳에서 만나 사람의 또 다른 설레임을 느끼게 하는 여인의 이야기도 작품을 윤기 있게 한다.
선택에서는 밀렸지만 <아보카드 으깨기>도 아주 잘 쓰여진 작품이다.
그러나 공모 부분이 경제신춘문예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소재로서 경제와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몇 편의 수필들도 실제 생활 속의 이야기보다는 무엇을 계도하고 주장하는 쪽에
더 초점이 맞춰진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시부문은 아직 수준에 미달하는 출품작들이 많았다.
산문의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렵게 4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폐화분>과 <오리무중>그리고 수상작으로 결정된 <구두>와 <정중한 각도>가 그 작품들이다.
<페화분>은 골목에 버려진 화분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함께 출품한 작품들이 이에 따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다음으로 <오리무중>은 "세상은 수심이 너무 깊어/발이 닿지 않았다"는 표현에서 보듯 시적 상상력이 뛰어났다. 다만 작품 후반이 전반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가작으로 뽑힌 <정중한 각도>는 함께 출품한 작품들이 골고루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시적 훈련이 되어 있는 분임을 말해준다.
산문처럼 늘어지지 않는 시적 긴장도를 갖춘다면 더욱 좋은 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수상에 뽑힌 <구두>는 슬프고 단아하고 아름답다.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있고 특히나 다른 분들의 작품과 달리 희망을 버리지 않아 좋았다.
시적 분발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심사위원 이희주 시인, 이순원 소설가, 채원배 머니투데이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