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영국을 거쳐 독일로 갔다.
곧장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비자를 아직 얻지 못했고(당시, 한국에는 크로아티아 대사/영사관이 없음), 그래서 우리는 뮌헨 한인교회에서 1달을 머무르며 성도들과 교제한 후 그곳에서 크로아티아 입국 비자를 해결할 계획이었다.
뮌헨에는 크로아티아 영사관이 있었다.(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크로아티아 체류비자, 또는 거주증은 오직 크로아티아 내에서만 가능했다)
당시 뮌헨 한인교회는 남진열 담임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우리가 크로아티아 선교사로 가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신 분이었다(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분의 후원 협력 전화는 내게 크로아티아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백한 사인이었다. 남 진열 목사님을 그 때까지 잘 알지 못했지만, 나는 한달 가량 뮌헨에 머물면서 남진열 목사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게 되었다. 나는 남 진열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큰 축복이라고 믿는다. 또한 뮌헨한인교회와의 만남도 그러하다.
그 분은 지금도 변함없는 크로아티아의 든든한 후원자시이며,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기대고, 의지하고, 속 마음을 내 놓고 상의할 수 있는 소중한 영적 후원자이자 선배 목사님이시며 선교 동역자이시다.
한달 가량 그곳에서 머물면서 뮌헨한인교회에서의 후원이 교회 내에 평신도 한 가정의 헌신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알았다.
교회는 그 가정의 헌신을 통해 우리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가정을 통한 교회의 섬김은 그때부터 10년 동안 지속되며 한결같이 섬겨주었다. 지금은 그 분이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또 남진열 목사님도 사임하시고, 뮌헨한인교회와도 선교 협력은 종결되었지만, 나는 그 모든 요소들이 크로아티아 선교의 주요한 디딤돌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아주 가끔씩 우리를 섬겨 주신 그 가정과 연락을 한다. 소식을 나눌때 마다 우리에겐 귀한 동역자 의식이 있다.
나는 그 가정의 물질의 헌신과 섬김에, 그리고 그 가정은 크로아티아 선교 헌신과 섬김에, 서로 간의 신뢰와 감동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린다.
나는 독일에서 머물면서 크로아티아 입국을 준비했다.
마침내 가족과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들어갔다.
그때가 2009년 5월 초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 가운데 크로아티아 선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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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아티아 선교사로 오기 까지의 나의 인생이야기를 어린시절 부터 2009년까지 회상하며 적어보았습니다.
선교서신 571번부터 여기까지 썼으니 90번 정도의 글을 짧은 기간 내에 쓴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은 기억이 흐릿하기도 했지만, 한번은 정리 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기록했으니, 혹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크로아티아 선교와 우리에 대한 이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선교사역은 2009년도부터 쓰여진 선교서신을 찾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계속해서, 10년이 지난 회고적 시각으로서의 지난 크로아티아 선교에 관한 본인의 입장과 상황을 서술해 나갈 계획입니다. 글이 부족하고 주관적일 때가 있지만, 될 수 있으면 그 생각과 색깔조차도 가감없이 첨가하여 하나님께서 나 자신에게 보여 주신 의미를 적으려 하니 읽는 분들께서 이해 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