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박성원)
'안동역에서'란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 진성이 내놓은 후속곡이 '보릿고개'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로 시작한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 나고 올해 지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보릿고개의 아픔을 담았다. '춘궁기'로도 불리는 보릿고개는 4~5월이었으니 시기적으로 이때쯤이다.
가수 진성은 얼마 전 TV 토크쇼에 출연해 "어릴 때 겪었던 보릿고개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가사를 썼다"며 "노래 첫 소절처럼 부모님은 몸을 자주 움직이면 금방 허기가 진다며 뛰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고 전했다. 당시엔 너나 할 것 없이 먹을 것이 부족해 쌀 한줌에 나물 등으로 양을 늘린 허여멀건한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숟가락 놓고 돌아서면 금세 다시 배 고파지는 한창 클 나이의 자녀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부모들의 안타까움은 오죽 했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지혜(?)가 자녀들의 활동량을 줄여 음식물 소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배 꺼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던' 부모들의 아픔이 절절하다. 지금이야 주위에 먹을 것이 넘쳐나고 건강과 체중 조절을 위해 음식 섭취를 줄이는 정도에 이르렀지만, 보릿고개는 70대 이상 연령층에겐 굶주림의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보릿고개는 1970년대 '통일' 등 다수확 신품종 벼 개발에 힘입은 식량 자급자족이 실현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오히려 쌀이 남아돌아 재고미 활용 기술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하고, 옛 추억을 더듬는 '보리밥 식당'이 성업을 이루는 격세지감의 시절이 됐다.
쌀이 넘쳐나도 배곯는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은 아직도 많다. 최근 경북 구미의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아버지와 16개월 된 아들이 굶어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부검 결과가 나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네티즌들도 '21세기에 무슨 굶어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느냐'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굶주렸던 보릿고개 시절,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따뜻한 정을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 마음을 이어받아 생계곤란ㆍ고독사ㆍ자살 위험군 등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
박성원 사회부장 sw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