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본문 글에서 경어를 생략하였으므로 양지바랍니다 --------
고려사 세가 현종편에 의하면,
顯宗 원문(元文)대왕의 이름은 순(詢)이요, 자는 안세(安世)니 안종(安宗)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효숙(孝肅)왕후 황보씨이고 성종 11년 임진(992년) 7월 임진일에 태어났다.
安宗은 추존왕으로, 이름은 욱(郁)이고 태조(877-943년)와 신성왕후 김씨神成王后 金氏의 아들이다.
獻貞王后 皇甫氏는 고려의 제5대 왕 경종(景宗)의 제4비(妃)로, 태조의 7남인 대종 왕욱(戴宗 王旭)과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경종(955-981년 7월 11일) 사후, 私家에 나가 살다가 異腹 叔父인 安宗과 사통하여 아들 현종을 출산하였다.
고려사 열전의 경종 후비편에 의하면,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씨(皇甫氏)
헌정왕후 황보씨 역시 대종(戴宗)의 딸이다. 경종이 죽자 왕륜사(王輪寺) 남쪽에 있는 개인 집으로 나가 살았는데, 한번은 곡령(鵠嶺)에 올라 소변을 누었더니 온 나라에 흘러넘쳐 모조리 은빛 바다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해몽해 보았더니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되어 한 나라를 가질 것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왕후는, “내가 지금 과부로 있는 터에 어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의아해하였다.
마침 안종(安宗)의 집이 왕후의 집 근처에 있어 서로 왕래하던 중 정을 통해 임신까지 했는데 만 10개월이 되도록 사람들이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종 11년(992) 7월, 왕후가 안종의 집에서 자고 있는 사이 그 집안 사람들이 장작을 뜰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맹렬히 솟아오르자 백관들이 불을 끄러 달려오고 성종도 급히 와 안부를 물으니, 집안 사람들이 마침내 사실대로 알렸으며 이에 왕은 안종을 유배보냈다. 왕후가 부끄럽고 한스러운 나머지 목을 놓아 울부짖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대문에 막 닿자마자 산기가 있어 대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해산하던 중에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해서 아이를 기르게 했는데 그가 바로 현종이다.
현종이 즉위하자 친모를 효숙왕태후(孝肅王太后)로 추존하고 능을 원릉(元陵)이라 하였다. 현종 8년(1017) 5월 혜순(惠順)이라는 시호를 덧붙이고 12년 6월에는 혜순을 인혜(仁惠)로 고쳤으며, 18년 4월에는 선용(宣容)을, 고종 40년(1253) 10월에는 명간(明簡)을 각각 덧붙였다.
=> 이 기사에 의하면, 헌정왕후 황보씨는 992년 7월에 현종을 낳으면서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가?(나중에 재론한다)
헌정왕후와 成宗의 관계는 어떠할까?
고려 성종의 아버지는 戴宗(태조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이다.
헌정왕후도 아버지는 戴宗(태조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로 같다.
위키백과 헌정왕후 항목을 보면, 헌정왕후는 성종의 여동생으로 되어 있다.
사실인가?
헌정왕후의 출생연도로 위키는 965 또는 966년이라 하는 데, 성종의 출생연도 960년(12월 26일)보다 뒤로 되어 있다. 헌정왕후의 출생연도의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위키의 이 記述은 오류다(나중에 재론한다).
고려사열전 태조 왕자편의 안종(安宗) 왕욱(王郁)기사에 보면,
왕욱이 유배가 있을 때 황보씨는 해산하다가 죽었다고 되어 있어 (성종11년, 992년 가을 7월 초하루 임진일에 종실 욱(郁)을 사수현(泗水縣-경남 사천)에 귀양 보냈다- 고려사 세가), 같은 열전의 경종 후비편의 기사와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현종이 두 살 일때, 성종은 현종을 사수현에 유배중인 왕욱에게 보냈으며, 성종 15년(996년)7월 을사일에 왕욱이 귀양지에서 죽자, 997년 2월에 현종은 개경으로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안종은 992년 7월 1일 임진일에 사수현으로 귀양을 떠나고 ,이후 황보씨(헌정왕후)는 현종을 낳다가 죽었다(고려사 열전 안종 왕욱 기사) - 현종은 992년 7월 1일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기록이 된다
2. 헌정왕후는 992년 7월에 현종을 낳다가 죽었다(고려사 열전 경종 후비 기사)
3. 현종은 992년 7월 임진일에 태어났다(고려사 세가 현종기사)
4. 헌정왕후는 성종의 여동생이다(위키백과 헌정왕후 항목)
이들 기사는 서로 모순된다.
진실은 무엇일까??
다행스럽게 자료가 남아 있다.
바로 현종(顯宗)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현화사(玄化寺)의 개창을 기념하여 지은 비문인 현화사碑다.
현종이 즉위한 후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창건한 절로 중국으로부터 귀화해 온 문인 주저(周佇)가 짓고, 채충순(蔡忠順)이 글씨를 써 1021년(현종 12년)에 세운 것이다.
이 비는 현재 황해북도 개성시 월고리의 현화사 터에 남아 있으며,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당대에 그것도 현종의 왕명으로 현화사를 세우면서 기록한 이 비문은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자료일 것이다.
이 비문의 기록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아 낼 수 있다.
1. 현종의 아버지 安宗孝懿大王은 태조의 친아들로 태어나 서종 12년(993년) 겨울에 泗州로 거란의 침입을 피해 내려갔는데, 그 곳에서 성종 15년(996년) 7월 7일에 죽었다. 이 귀양길에는 현종도 동행하였다. => 안종이 사주로 내려간 경위를 고려사와 다르게 적은 것은 부모의 不倫을 감추기 위한 아들의 자연스런 행동일 것이나, 객관적인 연도 자료는 왜곡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 비문의 기록을 보면, 안종이 사주에서 죽을 때 이미 현종은 출생한 후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열전(태조 왕자편)에, 현종이 두 살일 때 왕욱에게 보냈다는 기사를 감안하면, 현종은 992년에 태어난 것은 맞고 993년(2세) 왕욱에게 보냈다하니 993년 같이 내려갔다는 비문의 기사를 설명할 수 있을 법하다.
2. 孝肅仁惠王太后는 성종의 누이동생이 아니라 둘째 누나다.
비문에 의하면, 皇妣孝肅仁惠天太后戴宗大王之愛女成宗大王之次姉也라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 위의 위키는 오류다.
3. 헌정왕후는 992년 7월에 현종을 낳다가 죽지 않았다
비문에 의하면, 皇妣孝肅仁惠天太后...先皇考而亡以淳化四年[993년]...三月十九日崩于大內之寶華宮.. 이라하여,
993년 3월 19일에 보화궁에서 崩하였다 하므로, 고려사등의 992년 7월 출산일 사망기록은 오류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는 각종 묘지명을 참조하면 그 기록이 오류인 것이 多數 散見된다.
이번 것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고려 현종은 992년 출생했다(기존의 기록과 일치해 보인다)
2. 현종의 아버지 안종은 996년 7월 7일에 사주에서 죽었다(기존의 기록과 일치해 보인다)
3.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993년 3월 19일에 죽었다(산고로 죽은 게 아니다)
4. 헌정왕후는 고려 성종의 둘째 누나이다(여동생이 아니다)
덧붙인다면, 고려사절요등에 현화사의 창건연도가 1018년 6월로 되어 있는 데, 현화사비에 의하면, 현화사는 1017년부터 4년간에 걸쳐 공사를 하여 1020년에 완공된 절이다.
웹상의 1011년, 1018년 창건설은, 따라서 오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