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즉사(江亭卽事) 강가 정자에서 / 풍정강미초(風靜江湄草) 바람 자니 강가 풀 조용 해 지고 / 어경월하파(魚耕月下波) 고기는 달 아래 물결을 가르도다. / 야한수불매(夜寒愁不寐) 밤이 추워 근심에 잠 못 이루는데 / 연외기어가(烟外起漁歌) 안개너머에서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나덕명의 시 : 임진왜란 당시에 함경도 변방으로 피난 간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적지에서 구출해낸 인물이며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난 다음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며 자적했다. 순수한 자연을 찬탄한 그의 시가 드들강과 잘 어울린다.
이 고장 남평출신 천재적인 작곡가 안성현 선생의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노래비가 드들강의 풍광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주며 시인 묵객 즐겨찾던 탁사정 옆에 자리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노래비 이곳 남평읍 동사리에서 출생 했으며 엄마야누나야을비롯 진다래,봄바람,부용산,낙엽,내고향등 많은 음악을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발길을 돌여 걷다보니 "금암정사"에 다다릅니다. 금암정사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 상남길 9-6 에 위치한 작은 정사로 입구 연못에는 물래방아에 부레옥잠과 작은 부수가 여름을 식혀주는듯 보여 집니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중국의 승려인데, 이름은 계차(契此)이고 명주(明州) 봉화현 사람이었다. 몸집이 뚱뚱하고, 이마는 늘 찡그려 깊은 주름이 잡혀 있고, 커다란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이 일정치 않고 횡설수설 아무말이나 잘 지껄였으며, 길을 가다가 피곤하면 아무데서나 잘 눕고, 졸리면 어디서라도 잠을 잤다. 언제나 지팡이에 큰 자루를 지니고 다녔는데 필요한 소지품은 모두 그 자루 속에 넣고 다녔다.
여긴 금암정사 정원인데 모과가 이상하게 옆에 꽃을피워 열매를 맺고 있어 한컷 잡아보면서 포대화상은 무엇이든지 보기만하면 달라고 하였는데 얻은 물건도 모두 자루 속에 넣고 먹을 것을 주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자루 속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포대화상(布袋和尙) 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특히, 날씨 예측이나 사람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잘 예언하였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고 계속 어디론가 방황하면서 늘 길을 걸어 다니며 일생을 보내시는 모습에서 알수 있고 포대화상이 남긴 "게송"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고, 서기 916년 3월 명주 악림사(岳林寺)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으며 그때도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고 합니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分身百千億(분신백천억) 時時示時人(시시시시인) 時人自不識(시인자불식) 미륵불 중에도 진짜 미륵불/ 백천억 가지로 몸을 나누어 / 항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도 /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네
포대화상을 바라보며 나도 남을 해치는 말이나 거친 말 남을 괴롭히는 말이나 원한을 품게 하는 말 저속하고 나쁜 말 비열하고고 천한 말 이런 말은 다 버리고 늘 정다운 말 부드러운 말 듣기좋은 말 착한 말 도리에 맞는 말, 때에 맞는 말 진실한 말 항상 아름다운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화엄경을 떠올려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울어도 눈물이 없고 찢어지는 가슴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것이 삶일진데 한날의 삶의 소중함속에 모든것을 자연에 내려놓고 자연과 벗삼아 시골길 걷다가 더우면 논 가운데 에 있는 시원한 정자에 누워 쉬었다 가니 시골길이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또한 이곳은 광주 카톨릭 대학(전남 나주시 남평읍 중남길 12-25)이 자리하고 있어 대학 주변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1995년 10월 18일 대학 이전 계획에 따라 전남 나주시 남평읍 남석리 170번지 대지352,359㎡(106,588평), 건물 연면적 27,099㎡(8,197평)의 21개동 기공식을 갖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 때문에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어 많은 교회나 수도회의 주보가 되었으며 192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에는 103인 성인의 하나로 선포되었으며 1836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방침에 따라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적합한 소년을 물색하던 모방 신부에 의해 마카오에 보내져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에서 정식 교육을 받고 1844년 상하이에서 신품성사를 받았고 1846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Μαριάμ의 약자인 Μαρία에서 유래하였다. 마리아가 실제로 사용했던 언어인 아람어로는 마리얌(ܡܪܝܡ) 또는 마리암이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초기 신약성경에는 마리아의 이름을 Μαρία와 Μαριάμ 둘 다 표기하였으며 기독교에서 마리아는 일반적으로 ‘동정녀’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남자와의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믿기 때문이며 동정녀라는 호칭 외에도 서방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 ‘복되신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동방 교회에서는 ‘테오토코스’라는 호칭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천주교의 공식명칭은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 또는 로마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이며.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서학(西學)·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천주공교(天主公敎) 등으로 불리어오다가 천주교로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가톨릭으로도 불리우며 하느님과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그리고 천사와 인간을 창조한 진실하고 영원한 전지전능의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