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 石
春坡 한 준 수
(제4회 시흥문학상 수상작)
나이 오십 줄에 리비아로 취업을 나갔었다. 국민의 수는 작은데 땅의 넓이는 한반도의 여덟 배나 된다고 했다.
내가 맡은 일은 원유와 가스를 모아 두었다가 배로 보내는 탱크 터미널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유전에서 시작 한 파이프라인은 끝없는 사막을 가로질러서 왔는데 나는 그 구간을 점검하러 오가며 비를 여러 번 만나고 모래바람도 여러 번 만났다. 그러나 비가 그치고 나면 한꺼번에 수백 밀리씩 퍼부었던 빗물은 모두 모래땅 속으로 잦아들고 언제 비가 왔더냐 싶었다.
그 때 화석을 처음 보았다. 그것들은 지질시대 이전에 살아 있던 생물들이 돌로 변한 거라고 했다. 나는 텅 빈 사막 가운데에서 화석들을 감상하기에 어둠이 깔리는 줄도 모른 날이 많았다. 그런데 그 화석들은 모두 까만색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동안 외로움과 기다림으로 까맣게 타버렸는지. 바람이 부드러운 날은 새들이 날아와 화석들을 허연 점박이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하늘에 구름이 해일처럼 일고 비바람이 두드리고 지나간 후에는 다시 말끔히 씻어 놓은 검은 보석이 되었다.
주워 놓았던 것 중에서 귀국할 때 작은 것 스무나문 개를 가져왔다. 식물이 화석으로 변한 것들이지만 개구리, 거북이, 물개 같은 것도 있고, 금강산의 어느 기암괴석(奇岩怪石)을 닮은 것들도 있다. 좌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 내 책장 위에는 작은 만물상이 생긴 셈이다. 사막의 자연이 수억 아니, 수십 억 년을 두고 갈고 닦아 만든 예술품들이라고나 할지.
그것들을 주울 때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해 올 때가 있다. 하늘은 거대한 방갓처럼 되어 광활한 사막을 덮고 있었다. 그 둥근 방갓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나의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 있었다. 몇 발짝 앞으로 걸어가 보았지만 그때의 하늘 끝은 내가 밀고 간만큼 더 물러가 있을 뿐이었다. 뒷걸음을 몇 발짝 쳐보아도 하늘의 끝은 내가 물러선 만큼 더 이상 따라와 주지 않았다.
나의 가슴도 화석처럼 까맣게 탄 무슨 덩어리가 들어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아들놈을 잃고, 연이어 작은 누님, 큰형님,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세 분이, 일이 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난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팔 년간을 몸담고 있던 회사 대표가 부도를 내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나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해외취업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냇가의 미루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는데 나의 돈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다 아내가 요구르트 배달을 시작하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해외 취업을 결심했다.
딴사람들은 귀국 후에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챙기기에 혈안이었지만 나는 끝없는 사막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화석에만 마음을 두었던 터이다. 그것들은 수많은 세월동안을 누군가가 알아줄 날을 참고 기다려온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아내는 편지에 말했다. 이젠 사글세방이 전세 집이 되었으니 고생 그만하고 돌아 오라고.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움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밖으로 뛰어나가 별을 헤며 내 집을 작만 할 날을 손꼽아 보곤 했다.
명색이 책임자라서 숙소는 혼자 썼다. 그러다 보니까 속내를 들어 내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대화의 상대는 말 못하는 화석뿐이었다. 나는 화석을 집어들고 말을 붙이곤 했다.
“너는 이렇게 고독한 밤에는 어찌했느냐? 새도 한 마리 찾아와 주지 않는 사막 하늘엔 눈물에 젖은 별밖에 다른 무엇이 있었겠니.”
화석은 초조해 하는 나의 마음에 늘 느긋하게 참을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기다려봐 이 사람아, 세월은 결국 가고 마네 곧 고향으로 가, 가족을 만날 날이 올 것이네.”
그런 화석의 덕에 나는 삼십삼 개월이란 긴 세월을 잘 참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말없이 수십 억 년을 참아 왔을 화석들. 나는 지금도 그것들을 볼 때마다 참고 기다리는 미덕이 무엇인지 배운다.
첫댓글 읽기도 전에 댓글 달기는 처음. 정말 존경스러워 먼저 예를 올리려구요.
축하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대독하는 일, 점점 영광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화석인데 석화로 되었네요.
이제 읽기 시작합니다.
제목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금방 시/마에서 읽고 왔거든요.
한 선생님의 글은 늘 찡합니다.
좋은 글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철수 선생님의 말씀 중에 선생님의 세대가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는 글이 생각납니다.
그러한 사막 속의 인고가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드리고 축하 드립니다.
김미옥 선생의 말씀에 공감! 준빠님, 축하드려요. 한 잔 쏘셔야겠네요.^^
맛난 글 아니 가슴 저미는 거시기....
역시 헹님!
참 좋은 글이네요.. 한 선생님 축하합니다.
벗 여러분, 어쭙잖은 글을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시어 매우 고맙습니다. 글을 올려주신 김경애님도 정말 고맙습니다.
몰랐다 아이가. 어찌 낌새도 피우지 않고, 뒤늦게 축하인사 드립니다, 추카추카 *^^*
축하올립니다! 사막에서 인고의 세월..... 장하십니다 저희 남편도 예맨.사우디.리비아.....등등 7년을 근무하면서 밤하늘을 그토록 우러렀다고 하더군요
그 외로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