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42] 반계정 한 그루 나무 되어
반계정 한 그루 나무 되어
고증식
어찌 흔들리지 않았으리 산 넘고 물 건너 어찌 달려가고 싶은 맘 없었으리 사직의 어지러운 발소리 들릴 때마다 글 읽은 선비의 가슴 어찌 또 이 한 몸 던지고 싶지 않았으리 사람들이여 날 산림처사라 부르지 마오 벼슬을 버려 다만 맑은 바람 한 자락 얻었을 뿐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씻고 천년의 반석 위에 무욕의 마음 한 자락 새겼을 뿐 나무들아 꽃들아 가난한 이웃들아 나 다만 등 굽은 나무 한 그루로 그대들 곁에 서 있을 뿐
고증식(1959~) 오래된 정자에 가 봅니다. ‘횡(橫)’으로는 여전한 풍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물과 바람, 하늘과 언덕이 둘러서서 경(經)을 펼쳐주고 읽어주고 합니다. ‘종(縱)’으로는 옛 역사가 옹이처럼 멍울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 주인의 겪은 바 삿됨과 의로움, 진(進)과 퇴(退)가 반듯합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한 반석(盤石)이 기둥들을 받치고 있습니다. 변치 않는 ‘진리·정의’의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 리하여 예나 지금이나 정자는 글 읽는 자들이 찾아서 옛 역사와 선비 정신과 더불어 ‘나무’와 ‘꽃’과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장소입니다. 그러한 곳에는 반드시 ‘천년’의 느티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11월 말 찬 바람에 모두 잎 떨구었습니다. 그럼에도 춥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당당히 명년 봄을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또 ‘천년’이 올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