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창에 널린 이불 창에 널린 이불
최정례
아파트 창에 널린 햇살에 적나라한 솜이불
애국도 매국도 아닌 태극기도 일장기도 성조기도 아닌 목화솜 이불인지 폴리에스터 요깔개인지 이념도 아니고 사상도 아닌 우리의 생활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내장을 꺼내 뒤집어놓은 것처럼
입 꾹 다문 일 가구의 내면을 햇살에 내어 말리고 있는 작은 창 가난한 방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
최정례(1955~)
집의 속옷, 속살에 닿는 물건.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안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늘 부끄러운 표정의 사물, 이불입니다. 좀처럼 노출이 불가한 물건인데 누군가 적나라하게도 이것을 ’작은 창‘에 내 널었습니다. 예리한 시선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국경일의 태극기나 걸려야 할 자리였으니 가히 ’생활‘의 국기라 불릴 만합니다. 늘 ’애국‘이니 ’매국‘이니 떠드는, 소위 직업적 애국자들, 도덕주의자들 에게는 불경할 풍경이기에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풍경이고 더 나아가 ’내장‘ ’뒤집어놓은 것‘ 같은 반항적 ’회화(繪畫)‘ 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국적 이전이고 이념 이전이고 정치 이전입니다. ’가난한 방‘ 앞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이 실은 심대한 사상의 풍경임을 이 예민한 시인이 제시합니다. 가만히, 자세히, 가까이 좀 보라는 뜻이지요.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