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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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광 성
몇 년 전 고희를 맞은 친구에게 지팡이를 선물한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부실한 나이. 믿음직한 시종 한 명을 붙여준 기분이었다.
옛 날 동양에서는 아무나 지팡이를 짚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 조정에서 벼슬이 으뜸인 사람, 모든 이들이 우러르는 사람을 삼달존三達尊이라 했는데, 그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충족시켜야 가능했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 기사騎士가 신사紳士가 되면서 칼을 쥐던 손이 대신 스틱을 잡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이 지팡이를 짚는 풍습이 생겼던 것이다. 개화기에 서구문물이 밀려들어올 때 이런 유행도 따라 들어왔다. 한때 지팡이를 개화장開化杖이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삼달존에 관계없이 단장을 휘두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수필가 김동석은 나이 서른에 스틱을 짚었다. 그리고 <나의 단장>이란 예찬론까지 썼다.
8.15 해방과 함께 시대가 바뀌었다. 젊음을 구가하는 현대문명은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인간상보다 실질적이고 활동적인 인간상을 요구했다. 그렇게 경로敬老의 시대는 가고 경로輕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구십이 지난 노인네도 지팡이를 짚으려 들지 않는다. 늙게 보여서 득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이리라.
늙으면 조심할 게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낙상落傷이다. 골절로 병상에 눕는 순간 온갖 병이 몰려와서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젊게 보이고 싶은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 허영심이 명을 재촉하니 문제다. 종합병원 입원환자의 반이 노인이고 그 반이 낙상환자다. 겸손하게 지팡이만 짚었어도 그 반의반은 입원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어떤 사물이 직립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은 세 개의 다리다. 삼발이도 사진기도 다리가 셋인 것은 그 때문이다. 아침에 네 발로 걷고 점심에 두 발로 걸어도 저녁에는 겸손하게 세 발로 걸어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호모 일렉투스homo electus다.
적자로 허덕이는 의료보험을 살릴 길이 있다. <지팡이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70세 이상 자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지팡이를 짚으라”
이런 취지면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볼 것인가 70세 이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입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무튼 법이 제정되는 순간 정부와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반의반으로 줄 것이 틀림없다.
지팡이의 좋은 점이 또 있다. 부실한 다리에 쏠리는 체중을 분산시켜주니 무릎이 아프지 않아서 좋고, 걷다가 지치면 의지해서 잠시 쉬면서 자연과 인생을 관조할 수 있어서 좋다. 굳이 ‘느림의 미학’을 떠들 필요가 없다. 지팡이를 짚어 보면 안다.
혼자 걷다보면 손도 마음도 허전한 법. 이런 때 지팡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친구와 함께라면 일일이 말대꾸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언쟁으로 발전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지팡이는 대답을 강요하는 일도 주인을 깨무는 일도 없다.
이 과묵한 친구는 듬직한 경호원이 되기도 한다. 건방진 녀석 한둘쯤 혼내 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마땅찮게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한바탕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 한들 어떠랴.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네’더러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이란 벼슬은 못 되지만 때로는 면죄부 역할은 톡톡히 하는 법.
전동차에서도 요긴한 소도구가 된다. 언제 빈자리가 날까 슬금슬금 다른 승객들의 동정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요새 젊은 놈들 버릇이 없다’고들 하지만 지팡이를 짚은 노인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대한민국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이 세상 하직할 때도 그렇다. 이 친구들은 주인을 홀로 보내는 법이 없다. 아내도 자식도 따라나설 수 없는 외로운 여정. 그러나 이들은 산책길을 따라나서듯 묵묵히 동행해 줄 것이다.
나에게 세 개의 지팡이가 있다. 귀여운 푸들 머리 손잡이는 이탈이아에서 귀화한 것이고, 퓨마를 조각한 주석 손잡이는 중국에서 온 것이다. 오리브 나무 몸통에 황금빛 쇠뿔 손잡이가 달린 것은 제자가 사준 프랑스 친구다. 나날이 노쇠해가는 선생이 딱했던지 어느 날 적지 않는 몸값을 치르고 선물한 것이다. 매서운 겨울 저녁에도 이 지팡이만 짚고 나서면 몸은 추워도 마음은 추운 줄 모른다. 제자의 따뜻한 부축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런 나의 고마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첫댓글 수필과비평의 유주간님께 부탁했더니 작품을 보내주셨네요. 혹시 파일을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글 쓰기에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필가는 학식 있는 시인이다"... 여러분, 월욜마다 귀청이 뚫어지도록 듣는 이야기, 아시지요?^^*
김 선생님, "수필'은 학식 있는... // "수필가"는 학식 있는. "가"가 빠진 거죠?
그리고 오자 발견. 맨 밑에서 두번째 줄. "몸은 추어도" "추워도"가 맞을 것 같은데요.
(나 혼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용)
맞슴다. "가"를 넣었구요 수필과비평에는 "추워도"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작가님께서 잡지사에 보내신 원본을 다시 저에게 보내온 것입니다. 어쩌나~!^^*
<지팡이 법>
과연 선생님이십니다.
사람보다 지팡이가 좋다....
읽는 맛은 앵두처럼 상큼하고 울림은 깊고 묵직합니다.
역시...
맞습니다. 앵두처럼, 라일락 향처럼, 에밀레종처럼....
과연!!!
더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늘 공부하라시는 말씀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철수 회장님의 등살에...ㅋ
좋은 글 읽을 수 있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네, 글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막힘이 없고 편안한 것은 역시 손광성 선생님이십니다-
쉬운 이야기도 읽으면서 머리에 와 박히지 않아 애를 쓰는 글이 많은데 상당히 어려운 논제도 쉽게 와 닿는 글이 좋음을 배웁니다.
결국 글도 소통일진데 아름다운 문장이 소통에 방해 된다면 편한 글로 바꿔 써야 되지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아름다운 수사가 결국 전체 문장에 득보다는 실이 됨을 보게된는데요--이게 제가 맞게 글을 보는건지요---ㅎㅎ
선생님 글을 보면 강의 듣고 공부하고픈 충동이 생깁니다--고맙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들으러 오세요. 수업 시간, 날마다 감탄사가 연발입니다.
노력하겠습니다--저도 마음은 강의실에---
그런데 문제는 손광성 선생님의 명강의가 언제 끝이 날지 몰라,
수강생들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이 급하답니다
빈틈이 없는 완벽한 문장, 적확한 단어, 아름다운 운률로 숨이 막히게 했던, 그래서 때로는 글을 쓰는 일에 절망조차 느끼게 했던 선생님의 글이 많이 느슨해진 느낌입니다.
여유가 느껴지고 참 편안하네요. 그러면서도 짚을 건 정확하게 짚고 유머도 가미하여 재미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감성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잘된 글을 읽을 때의 느낌은 힘이 빠져있더라구요.
곁길로 새는 듯 싶다가고 제자리에 돌아와서 한 방 치고 빠지고(^^*) 여유가 보입니다.
배영를 하는 수영 선수처럼 말입니다.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에구~! 히말라야를 쳐다봅니다.ㅎㅎ
참 편안하고 수긍이가는 좋은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새벽을 납니다. 제복은 지팡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많습니다.
네, 객기를 부리지 말고, 지팡이를 짚어야 할 때가 되면 순순히 받아드려야 겠지요.
고맙습니다.
교과서가 무엇인지.
내일 또 보지요.
감사합니다.
네, 매일 한 번씩 읽어도 좋을 듯 싶네요.
말씀대로 교과서입니다.
제게 지팡이 같은 분은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작품 소개해 주신 분께 경례!!
없는 지팡이를 찾으면 뭣합니까..
얼마 후 단체로 지팡이를 삽시다. 롯데에서 세일 할 때. ㅎㅎ
“70세 이상 자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지팡이를 짚으라” 의료비 부담이 반의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하셨는데,좋은 아이디어, 지팡이 짚은 사람만 경로우대증 준다, 즉 전철무료 라고 한다면 효과만점! 우선 나부터도 ㅋㅋ
이 새벽에 혼자 깔깔대고 웃습니다. 샘님 땜시 나 정말 미츠요. ^^*
카피해 갑니다. 감사~
개근하면서도 이 방에 들른지 며칠만인데, 이런 재미가 있었군요. 나 모르게. 다시 한 번 읽자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