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마지막까지
기회가 주어진다.
동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여도
한번은 정 없다고,
삼세판은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한다.
두 번째는 아쉬우니까?
한판 더 하자고 한다.
세판을 지고도 그래도 아쉬워하면,
마지막 기회를 한번 주어진다.
네판이 지나면,
웃으면서 인정 하고
함께하려는 생각을 공유한다.
사고가 일어나도 늘 복기를 하면,
결정적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 기회가 작지만,
두 번 세 번 주어진다.
그래도 무시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주변을 잘 살피면,
언제나 오늘 온 어려움을 풀어 줄 인연들은
주변에 항상 대기하고 있다.
평소에 어떻게 그런 인연들과 잘 지내는지
어려울 때 표가난다.
남이 하는 말을 늘 되 받아치는 며느리가 있다.
누가 이야기를 해도
까칠하게 말을 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한다고,
내 말이 늘 옳다고 한다.
사람 몸에는 두 가지 이상 기능을 하는 장기들이 있다.
팔과 다리도 두 가지고
콩팥도 두 개고, 코 구멍도 두 개가 있고,
눈도 두곳이 있다.
한곳으로 치우치는 사람은
늘 그곳에 아픔이 온다.
수맥이 흐르면 잔잔한 파장을 이르키듯이
호롱불도 내 주변부터 밝아지고.
선함도 내 주변에서부터 소문이 나고
오만 것들은 나로부터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 파장에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부터 친다.
남편이 신장 투석을 하고,
아내는 늘 남 탓 하면서
동네 방네 다닌다.
조금씩 남들에게 한 나쁜 파장들이 모여
내 남편이
아픈 줄은 모른다.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우리 집에서 가장 귀한 자손을 친다.
남편은 독자다.
시어머니와 며누리 같이 연구를 해야한다.
조금씩 방치하고 쌓아둔 것들이
조상들로부터 내려와
오늘 독자를 만들어놓고
새로 공부시키는 일이다.
며누리는 이 집안에 온 원리를 바르게 풀면
최후의 만찬인지,
최후의 변론인지가 결정이 된다.
이 집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며누리다.
방치하고 나두면,
시댁의 문제와,
친정에서 가져 온 문제가
복합 되어서 새로운 더 큰 문제를 이르킨다.
사람을 바르게 들이는 법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면 당하는 것이고,
알면 다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언제나 최후에 변론을
들어주기 위해서 기다려주신다.
자연이 무엇인지 사람이 무엇인지
같이 연구해 보야야 한다.
2024년4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