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03) 창작 과정의 실제 - ③ 한 마리의 새우가 된 고래/ 시인 이형기
창작 과정의 실제
Daum블로그 http://blog.daum.net/nam-sh0302/ 모비 딕(Moby Dick) / 이형기
③ 한 마리의 새우가 된 고래
나에게는 허무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허무는 내가 〈낙화〉 같은 서정시를 버린 이후 오늘까지 계속 추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마지막에 한 줌 흙이 뿌려지고 만사는 끝나버린다’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조만간 그렇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덧없는 존재가 아닌가.
긴 말을 줄이고 단순화시키면 이러한 인식으로 귀착되는 것이 나의 허무주의이다.
물론 이러한 허무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엇갈린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창작 과정을 살피는 지금의 우리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시를 쓴 내가 허무라는 주제의 형상화를 의도했다는 사실만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시를 읽어주기 바란다.
영화는 끝났다
예정대로 조연들은 먼저 죽고
에이허브 선장은 마지막에 죽었지만
유일한 생존자
이스마엘도 이제는 간 곳이 없다
남은 것은 다만
불이 켜져 그것만 커다랗게 드러난
아무것도 비쳐주지 않는 스크린
희멀건 공백
그러고 보니 모비 딕 제놈도
한 마리 세우로
그 속에 후루룩 빨려가고 말았다
진짜 모비 딕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이렇게
만사를 허옇게 다 지워버리는
그리하여 공백으로 완성시키는
끔찍한 제 정체를 드러낸다
― 이형기, 〈모비 딕〉 전문
이것은 90년 초에 쓴 작품이다.
평소 나는 제목을 미리 정해놓고 시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먼저 초고인 스케치를 작성하고 그것을 다듬어나가는 동안에 제목을 정한다.
그 스케치의 바탕이 되는 것은 〈낙화〉와 〈고압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할 때 말한 시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이 시는 스케치 작성 이전에 제목을 잡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희멀런 공백의 스크린’이라는 이 시를 쓸 때의
최초의 이미지와 함께 곧바로 〈모비딕〉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제목이 정해지면 그 제목에 어울리는 장면이나 상황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그래서 이 시는 다른 작품의 경우보다 스케치 만들기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제목을 〈모비 딕〉으로 정하게 해준 최초의 이미지 ‘희멀건 공백’을 우연한 돌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은 2년 전 어느 날 모비 딕을 거대한 허무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허무는 평소 내가 큰 관심을 가졌던 주제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날부터 그 모비 딕은 줄곧 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 나는 오락가락하고 있는 그 모비 딕의 형상화를 몇 번인가
시도해보았지만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모비 딕을 소설에 나오는 그대로의 모습,
즉 거대한 흰 고래의 모습으로 시에 등장시켜서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모비 딕의 모습을 고래가 아닌 다른 무엇, 그것도 좀 엉뚱한 다른 무엇으로
바꿔보려고 한 것이 그동안 내가 시도해보았던 작업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였다.
변용에 실패한 모비 딕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즉 나는 모비 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한동안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희멀건 공백의 스크린’이란 이미지와 함께 잠적했던 모비 딕이 되살아났다.
허무주의적 성향을 가진 나는 평소에도 하늘을 희멀건 공백으로 보는 습성이 있었다.
‘희멀건 공백의 스크린’이라는 이미지가 갑자기 떠오르게 된 배후에는
그런 습성의 무의식적인 작용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나는 2년 동안 머릿속에 오락가락하던 모비 딕을 형상화할 수 있는 확실한 계기를 잡게 되었다.
제목을 미리 정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순조롭게 진행된 스케치의 작성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것은
‘모비 딕을 세우 한 마리로 후루룩 빨아먹고 마는 더 큰 모비 딕’이라는 상념이다.
이 상념이 떠올랐을 때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거대한 고래가 한 마리 작은 새우로 바뀌어서 또 다른 고래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제법 기발하고 따라서 그만큼 충격성이 있는 변용이 아닌가.
이 변용은 고래라는 T가 새우라는 V와 결합된 일종의 은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은유에 있어서는 T와 V의 거리가 상당히 먼 편이라 할 수 있다.
실은 이처럼 거리가 먼 이질적 사물을 결함시켜 표현의 충격성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평소 내가 시를 쓸 때의 기본적인 유의 사항이다.
〈고압선〉에서 고압선을 흉악범으로 의인화한 것도
그러한 방법론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적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T와 V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세 편의 시와 창작 과정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 창작 동기로서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쓰기 전에 먼저 줄거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시의 전체적인 구도에 해당하는 이 줄거리를 잡기 위해서는 일종의 계산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시의 종자에 해당하는 최초의 이미지가 우연히 떠올랐다 해도
정작 그것을 작품화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냉철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경우이다.
시는 저절로 우러나는 천재적 소산이 아니라
시인이 무슨 수공업의 직공처럼 언어를 이리저리 선택하고 조립해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떠올랐다고 하지만 시의 종자도 평소의 노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평소 지속적으로 시를 생각하고 있어야만 그것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첫머리에서 ‘시에도 공짜는 없다’고 한 말을 거듭 상기해주기 바란다.
<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이형기 시인의 시 쓰기 강의(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2.2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03) 창작 과정의 실제 - ③ 한 마리의 새우가 된 고래/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