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過庭書譜(5)
好異尙奇之士는 翫體勢之多方하고 窮微測妙之夫는 得推移之奧賾이로다 著述者는 假其糟粕하고 藻鑑者는 挹其菁華로다
異를 즐기고 奇를 崇尙하는 사람들은 體勢의 變化가 많은 것에 마음이 끌리고, 작은 것까지도 窮究하고 奧妙한 것을 헤아리는 사람은 推移의 그윽하고 깊어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얻는다. 저술가들은 그 糟粕만을 빌린 것이고 品藻를 매기고 鑑別하는 사람은 그 菁華를 음미한다.
* 추이(推移): 일이나 형편(形便)이 차차 변(變)해 감.
* 조박(糟粕): 찌꺼기. 소용없는 물건. 곧 저술이란 사물의 찌꺼기와 같음을 뜻한 말이다. 《晉書》에 “名位爲糟粕”이라고 하였다.
* 조감(藻鑑): 品藻와 鑑別.
* 청화(菁華): 精華(사물의 精粹)와 같음. ①빛. 광채. ②사물 중의 가장 뛰어나고 華美한 부분.
固義理之會歸는 信賢達之兼善者矣라 存精寓賞이 豈徒然與아 而東晉士人은 互相陶淬하니 至於王謝之族과 郗庾之倫하여는 縱不盡其神奇라도 咸亦挹其風味로다 원본 15.1~16.5
진실로 義理에 회귀함은 참으로 賢達하면서도 善을 겸비한 사람만의 일이다. 精妙한 이치를 간직하고 감상하는 것이 어찌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그러나 東晉의 士人들은 서로를 감화시켰으니 王氏, 謝氏의 族屬과 郗氏, 庾氏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神奇함을 다하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또한 다 그 風味를 맛보았다.
* 도연(徒然): ①움직이지 않는 모양(=居然). ②장난삼아. 되는 대로. ③그것 뿐. ④아무 하는 일이 없이 멍하니 있어서 심심한 모양.
* 도쉬(陶淬): 陶染(도염: 질그릇을 만들고 옷에 물을 들인다는 뜻인데, 轉하여 사람을 感化한다는 뜻으로도 쓰임.) 과 같다.
* 왕사(王謝): 六朝時代의 名望家인 王氏와 謝氏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치유(郗庾): 六朝時代 名望家인 郗氏와 庾氏를 아울러 이르는 말.
* 륜(倫): 輩․類와 같다.
去之滋永하니 斯道逾微하여 方復聞疑稱疑하며 得末行末하여 古今阻絶하여 無所質問하고 設有所會라도 緘秘已深하여 遂令學者로 茫然莫知領要하고 徒見成功之美하여 不悟所致之由니라
그 후 시대가 더욱 멀어짐에 따라 서도는 더욱 衰微하여 바야흐로 의심스러운 (서론이) 들리고 일컬어지며, 末梢的인 技巧만이 行해져서, (서도의 근본에 관하여는) 古今이 막히고 끊어져서 질문할 곳도 없고, 간혹 (서도의 秘奧를) 이해한 사람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감추어 둠이 깊어서, 드디어 (書藝를)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망연히 요령을 알 수 없게 하고, 다만 성공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만 하고 성취한 緣由를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或乃就分布於累年이나 向規矩而猶遠하여 圖眞不悟하고 習草將迷로다 假令薄解草書하고 粗傳隸法則好溺偏固하고 自閡通規하니 詎知 心手會歸는 若同源而異派하고 轉用之術은 猶共樹而分條者乎아 원본 16.5~18.6
혹은 여러 해에 걸쳐 글씨의 分間布白을 硏究하였으나, 그 規矩를 향하는 데는 오히려 멀어서, 眞書(楷書)를 써도 깨닫지 못하고 초서를 익혀도 또한 분명치를 못하였다. 가령 多少間 草書를 이해하고 隸法의 개략은 통하였다 하더라도 偏固한데 빠지기를 좋아하였고, 스스로 (서법의) 올바른 법칙을 통하는 문을 잠가놓고 있으니, 마음과 손이 맞아 돌아가는 경지는 근원은 같은데 물줄기가 다른 것과 같고, 붓을 다루는 기술은 나무를 하나로 하고 가지가 나뉘는 것과 같음을 어찌 알겠는가!
* 분포(分布): 分間布白을 줄인 말로, 글자의 點劃結構와 글자와 글자의 布置를 말한다.
* 규구(規矩): 規矩準繩. 목수(木手)가 쓰는 그림쇠, 자, 수준기, 먹줄을 통틀어 이르는 말.
加以趨吏適時에 行書爲要하고 題勒方幅은 眞乃居先하니 草不兼眞이면 殆於專謹하고 眞不通草면 殊非翰札하니라
더욱이 바쁜 官吏가 사무를 적절히 볼 때는 行書가 요긴하고, 題字와 金石碑文과 篇幅등은 眞書가 이에 적합하니 草書만을 익히고 眞書를 겸하지 않으면 단정하게 쓰는데 위태하고, 眞書만 익히고 草書에 통하지 못하면 書札을 쓰는데 적합하지 않으리라.
* 추리(趨吏): 바쁜 관리.
* 제륵방폭(題勒方幅): 題字․ 金石碑文과 篇幅.
* 전근(專謹): 謹正. 端正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