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능선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그 아래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거운 불빛
한 곳 트일 데 없는 막막한 어둠
하루쯤 후미진 산골을 돌아본들
넝마처럼 해진 삶은 더욱 황량하고
휴게소에서 내려
뜨거운 국수국물을 마신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뉘우치고만 있을 것인가
타락의 대열 한귀퉁이에서
파멸의 행진 그 한귀퉁이에서
대폿집에서 찻집에서
시골길에서
길은 어둠 속을 향해 뻗쳐있고
다시 버스는 힘을 다해 달리는데
긴 능선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 허공 속에서 문
말없이 사는 이들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듣는다
(신경림, '시골길에서'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아마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길이라 여겨진다.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접어드는 시간,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하늘을 떠받친 긴 능선만이 보인다.
이따금 불빛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배경은 그저 막막한 어둠이 차지하고 있다.
문득 버스가 잠시 멈춰선 휴게소에서 뜨거운 국수국물을 마시며 생각한다.
후미진 산골을 돌아보아도 그저 넝마처럼 해진 삶이라 더욱 황량하다고 생각될 뿐이다.
화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타락의 대열'과 '파멸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잇다.
그렇지만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뉘우치고 있는 처지인 것이다.
도대체 화자를 옭죄고 있는 '타락'과 '파멸'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 작품이 창작된 1978년이라는 시간에서 그 해답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시가 창작된 1978년은 바로 유신독재 말기로, 박정희 정권의 탄압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자신의 측근으로부터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지만, 이 당시에는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둠을 틈타 버스에 몸을 실은 화자는 그러한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대폿집과 찻집, 그리고 시골길에서 경찰의 눈을 비해 사람들이 모여 시국을 은밀하게 논하던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실은 화자의 눈앞에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길과 하늘과 땅을 가르는 능선 그 어디쯤 문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을 것이다.
하여 엄혹한 시대에 '말없이 사는 이들의 숨죽인 / 울음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거센 탄압이 진행되던 독재정권 시절, 이렇게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