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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특정한 서사가 두드러지지 않고, 그저 주인공의 심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은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청소년기의 기억을 더듬으려고 해도 이미 까마득한 시간 속으로 사라져, 적어도 나에게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감성을 이 책을 통해 새삼 접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대체로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시간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18살의 고등학생 ‘시지’에게 우연히 닥친 만남과 그로 인한 감성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여 서술하고 있다. 누구나 대학입시를 위해 정신없이 매달리는 고등학교 시절, 주인공 시지는 대학입시마저도 안중에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꿈이 없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남다른 취미나 특기도 없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걱정이 많다.’ 그리하여 방학 동안 친구들의 전화마저도 받지 않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수지에게 우연히 엄마 친구 아들과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혹시 작가는 이 대목에서 ‘엄친아’의 이미지를 빌어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엄마를 따라 엄마 친구인 유선 아줌마와 그 아들 ‘얼’을 만난 날을 ‘그런 하루’로 명명하고, 약 3시간 동안 얼과의 만남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상황을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 만남에서 얼은 시지에게 새끼 거북이의 처절한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어쩌면 주인공을 포함한 이 땅의 고등학생들의 처지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두꺼운 모래를 뚫고 나와 바다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새끼 거북이, 그러나 바다에 도착한 거북이들 역시 얼마나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대학 진학에 관심조차 없는 시지와 ‘엄친아’인 얼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하루’ 이후 얼에게 전화번호를 건네고, 서촌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기다리는 시지. 얼의 전화를 기다리며, 그날 이후 하루하루를 지내며 시지의 감정과 생활을 묘사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작품이다. 시지에게는 얼과 만났던 ‘그런 하루’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던 ‘이전’과 달리, ‘그런 하루’ 이후에는 얼의 전화를 기다리는 활기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서, ‘그런 하루’에 일어났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을 상담하는 시지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얼에게는 그 약속이 그저 지나가는 말로 건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시지는 얼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약 2달 동안의 시지의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끝내 연락조차 없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지만, 만약 ‘얼’에게 전화가 왔다면 주인공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며, 새로운 친구인 ‘얼’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순간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가의 문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저 밋밋한 생활에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그런 하루’ 이후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에 흥미를 느꼈던 이유는 주인공이 변화하는 계기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주인공의 감정을 사소한 것이 아닌 ‘연애 감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에서는 적어도 상대인 얼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두 달 이후 주인공 시지는 더 이상 ‘이전’의 상황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는 ‘꿈이 없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을 바꿨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그저 나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며, 그 이후의 변화는 작품에서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만약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작가는 주인공의 두 달 동안의 감정 흐름과 함께 변화된 모습을 다뤘을 것이다. 두 달 동안의 기다림을 일종의 ‘상처’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주인공은 그 상처를 통해서 분명히 무엇인가를 느끼고 얻었을 것이라 하겠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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