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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어린이책 시장만큼은 불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자식들이 읽을 책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부모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수십 권에 달하는 전집 위주의 어린이책들이 많이 팔린 적도 있었으며, 어느 집엘 가도 비슷한 류의 책들이 아이들 책장에 꽂혀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어린이책이라는 이유로 한꺼번에 전집을 구입하기보다, 책의 내용과 교육적 효과 등을 따지면서 구입 목록을 선정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더욱이 너무도 많은 책들이 출간되면서 오히려 자녀들에게 어떤 책을 사서 읽힐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책 관련 단체에서 작성하는 선정 도서의 목록을 참고해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는 전문적인 어린이책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한국의 작가들이 국제적인 상을 수상한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이 책은 어린이책 작가와 평론가, 어린이책 편집자와 교사 등이 모여,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주제로 ‘성별, 나이, 인종, 장애 유무 등 개인의 특성을 서로 존중하며 포용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의 목록을 제시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각기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어느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는 사회’를 그려내고, 그러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책들을 선정하여 목록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주제’만을 강요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지난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후원한 ‘나다움 어린이책’의 목록 가운데에서, 일부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의 딱지를 붙여 회수를 당한 조처가 있었다. 당시 국회의원 한 사람이 ‘책의 주제나 글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특정 그림을 캡처한 후 외설적 책으로 낙인을 찍은 보수 기독교계’의 주장을 옹호함으로써,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겪으면서 당시 오랜 기간 동안 고민 끝에 선정되었던 책들의 목록과 그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각각의 주제별로 <오늘의 어린이책>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라고 하겠다.
단지 누군가의 억지스런 주장에 따라 이미 출판된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 독자들에게 읽히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제도적인 폭력’에 다른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는 독자들이 결정하고, 또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책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의 서두에 ‘금지된 책들의 이야기’라는 특집을 통해서 ‘나다움 어린이책’의 선정 목록이 삭제된 배경과 그것이 지닌 ‘폭력성’을 밝히면서, ‘금서에 반대’하는 편집자들의 분명한 목소리를 제시하고 있다. ‘다움북클럽 추천 도서’라는 항목을 통해서 주체성과 몸의 이해, 일의 세계와 가족 등 모두 10개의 주제별로 책의 목록을 제시하고 각각의 책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곁들여져 있다. 아울러 각 주제마다 선정에 참여한 이들이 해당 주제의 의미와 선정 이유,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독서 방법 등에 대한 내용들을 덧붙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소개되기도 하며, 소극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제시하고도 한다. 이밖에도 일부 정치인들과 왜곡된 신념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혐오 반대’를 다룬 책의 목록을 소개하면서, ‘사회적 인정’과 ‘안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연대’라는 주제 등에 관해 다룬 내용들이 추천 목록에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소개된 주제들과 추천 목록들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성과 포용, 특히 성인지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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