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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Umbr(a)’라고 불렀던, 2003년에 출간되었던 라깡주의 학술지 ‘무의식의 저널’ 가운데 한 권을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엮었다고 한다. 제목처럼 단순히 ‘법’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법으로 상징되는 앎의 문제가 다양한 각도에서 의식/무의식의 차원에서 논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법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 자의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 역시 법이라는 개념과 그것의 역할에 대해서, 이른바 라깡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출간된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마도 라깡 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겨졌기에 늦게라도 번역한 것이라 이해된다.
이 책의 역자 서문에는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라는 작품의 분석을 통해서, ‘무지’라는 주제가 단순히 모른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편지의 내용도 전혀 알 수 없고 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이 추리소설을 통해서, 역자는 사건의 진행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왕의 존재를 일컬어 ‘무능’한 것이 아니고 ‘전능’하다고 강조한다. 곧 ‘왕이라는 법’이 전제되기에 그의 무지가 이 사건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 논리를 따라 생각해보면, 그러한 설명이 일견 수긍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무지와 전능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라깡을 비롯한 기호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의 자의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것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집자의 말은, 이 잡지의 주제인 <법의 무지>에 대해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무지와 앎 사이의 이분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서술, 즉 ‘알려지지 않는 앎’이 무지라고 규정한다. 법이라는 것이 결국 권력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서 법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이해된다. 그러나 기호학과 정신분석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역시 명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어서 법과 욕망 그리고 최고 폭력의 문제를 라깡의 이론에 의해 설명하는 스티븐 밀러의 글에서는, ‘시민 불족종’과 ‘신의 법’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존 롤즈의 정의론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파악된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법이라는 것이 때로는 구성원들에게 불합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법이 폭력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법의 불합리를 폭력으로 맞설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이해된다.
‘안티고네’의 행동이 지닌 해석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글에 대한 비판과 반론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결국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반론을 기고한 지젝을 이 책의 대표저자로 내세우는 것이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그의 명성을 빌리기 위한 것이라면, 그의 이름을 보고 책을 구입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밖에도 현실의 총체성이나 주체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기호학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대체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다양한 관점을 취하고 있어 통일성을 찾기가 쉽지 않은 점이 있는데, 이는 잡지로 발간되었던 사실을 때문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수록된 글들이 여전히 쉽지 않게 느껴지지만, 이제 라깡의 이론과 용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력이 높아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하자. 기본적으로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라 독서 시간이 평소보다 더 많이 소요되기도 했다. 여전히 라깡의 용어와 표현들, 그리고 그의 이론은 여전히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다시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를 기대하며, 과거에 비해 라깡이라는 인물과 그의 이론들이 조금은 새롭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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