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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대리석으로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하게 조각된 가방들을 조각하여, 열었던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전시회를 주관했던 미술관의 관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우연히 들렀다가 보게 되었던 전시회였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전시회를 통해서, 유명 브랜드에 대한 현대인들의 맹목적인 소유욕을 풍자하고자 했던 것이라 기억된다. 누군가는 비록 돌로 만들어진 유명브랜드의 로고이지만 그것조차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 터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에 긍정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나는 어떤 물건이든지,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때문에 ‘나는 왜 특정 브랜드에 끌리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브랜드를 둘러싼 사람들의 욕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1990년대 후반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던, 저자가 주로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서들은 물론 데리다의 책들이 번역되어 활발히 읽히던 때였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라는 생소한 용어가 신문이나 잡지 등에도 등장하면서, 앞으로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는 것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를 신는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는 그저 스치며 읽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실감나게 적중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체로 현대인들은 유명 브랜드의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이 남과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고 여겨진다. 물론 나는 철저히 실용성을 따지면서 물건을 구입하기에,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특정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들과, 나처럼 브랜드는 크게 개의치 않고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어 구입하는 경우이다. 저자에 의하면 브랜드는 원래 몸에 새기는 문신이나 타투에 가까우며, ‘스티그마(stigma)’라는 그리스의 어원은 ‘칼 끝으로 긋거나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이나 점 혹은 표시’ 등을 일컫는다고 한다. 몸에 새긴 그러한 자국을 통해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특징으로 삼는 것이니, 자본과 결합한 브랜드들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처음 이 책의 목차를 보았을 때 특정 브랜드들이 열거되어 있어, 해당 브랜드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저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왜 책의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붙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6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유명 브랜드의 특징을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해당 브랜드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상품의 특징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 저자의 분석한 바를 잘 정리해 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해당 브랜드를 설명하면서, 영화나 시 혹은 문화사의 조류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이 저자가 추구하는 ‘인문학’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의 성격을 구분한 바는 저자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어, 만약 특정 브랜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5개의 브랜드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예컨대 ‘프라다’를 소개하면서는 설명의 근거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또한 의류 브랜드인 ‘지방시’에 대해서는 함민복의 ‘꽃’이라는 시를 제시하고, 저자가 이해하는 브랜드와 시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브랜드가 이처럼 저자가 설정한 다양한 ‘인문학적 자료’에 의해 그 특징이 서술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체성’으로 분류된 브랜드들은 각자 그들이 추구하는 철학이 관철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자신들이 만든 상품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저자는 다른 특징으로 설명하고 다른 브랜드들에서도, 굳이 이런 측면을 찾아서 논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각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논하고 있는 4개의 상품들은, 브랜드의 로고나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상품의 특징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서양 신화의 주인공인 ‘세이렌’을 로고로 취하고 있는 스타벅스를 죽음충동이라는 특징과 연결시켜 논하고 있으며, 원색으로 유명한 베네통의 가방은 색채 감각에 주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의 로고나 상품들의 특징을 포착하여 그 의미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항목에서도 저자가 설정한 각 브랜드의 성격에 맞는 시나 소설 등의 작품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
‘주체성’에서 다루고 있는 브랜드 가운데 나는 특히 마지막에 제시된 레고에 관심이 주어졌던 것 같다. 커가면서 점점 흥미가 다른 분야로 옮겨갔지만, 아들의 어린 시절 좋아하던 레고를 구입하여 옆에서 도와주다가 그 재미에 내가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창업자나 상품의 주체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는 6개의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향수로 유명한 샤넬과 수제화에 대한 자부심을 자랑하는 페라가모, 구찌와 랑방을 비롯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는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 그리고 레고 등을 저자는 주체성을 중시한 브랜드로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는 브랜드 이름이 있었지만, 브랜드 자체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품의 특성과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인문학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매우 유익했다는 것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성’으로 설명하고 있는 브랜드들은 시간 자체를 표현하는 시계(카르띠에)가 주요 상품이거나, 보석이나 크리스탈을 가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성을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티파니/스와로브스키),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패션을 추구하는 브랜드(랄프 로렌) 드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항목에서 언급되고 있는 만년필 브랜드인 몽블랑은 특히 글 쓰는 일이 직업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지된 그림을 연속적으로 재생하여 영화로 만드는 디즈니가 이 항목에 포함된 것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영원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것도 시간이 지닌 의미를 잘 서령하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에 대해서는, 예상대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처럼 영화나 시 혹은 철학적 사유를 적절히 곁들여 각 브랜드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도 역시 저자가 지닌 능력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매체성’의 항목에서는 3개의 국내외 출판사와 2개의 의류 브랜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출판사의 경우 책이 바로 매체이기에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버버리와 리바이스는 오히려 ‘정체성’ 혹은 ‘주체성’과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버버리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판매 전략을 주목하였으며, 리바이스는 그전까지 옷의 재료로 보지 않았던 청바지의 재료에 주목하여 여기에서 다루고 있다고 여겨졌다. 마지막 항목인 ‘일상성’에서는 4개의 의류 브랜드와 1개의 생활용품, 그리고 가방으로 대표되는 루이비통을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드들이 반드시 일상성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필요는 없으며, 상품의 특성 혹은 그들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다른 항목으로 설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자신이 설정한 의도에 따라 각 브랜드의 특징을 포착하여,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저자의 설명 방식에 따라 브랜드의 특징을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잘 알지 못했거나 생소했던 브랜드들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던 점이 나에게는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저자가 다루고 있는 브랜드들을 쉽게 구입하지는 않겠지만, 각각의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특징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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