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가족 5월 가족편지 - 사랑, 참사랑

[제니스]

제니스 가족 5월 가족편지

푸르릅니다!

가슴 벅찬 초여름의 푸르름, 잘 누리셨지요?

걷기도, 놀기도, 배우기도, 사랑하기도 좋은 계절의 절정에 와 있네요. 그간 평안하셨길요.  

오월은 정말 꽉 찬 달이었어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입하, 소만... 도법스님과 하늘친구 100일째 만남, 5월 생일잔치, 입하방학, 한알학교 느티나무 축제, 중등 싼티아고 순례, 꽃잎열매 고흥순례... 어느 하루도 허투루 살았으면  참 뜨끔했을 오월이었지 싶어요.

편지를 쓰려고 눈을 감으니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재희 : "제니스, 나는 배움터에서 다른 사람 땜에 맘 상한 기억 쓰려니 너무 힘들어.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용훈 : "나 밥 안 먹으면 안 돼?" (장염으로 고생하고 와서) 

          "제니스 나는 오늘 청소 깨끗이 했어." (다른 친구들 게으름 피운다고 야단맞고 있을때 눈웃음 애교 부리며)

성우 : "신발 숨겼던 친구들은 지금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현승 : (신발 잃어버려 울고있는 강민에게) "야, 그럼 다른 사람은 모르고 너만 아는 곳에 신발 숨겨놓지그래?"

          (강민 더 울며 "그럼 나도 못찾는단 말야!") 

주환 : "오늘은 빨리 끝내. 아니 리빨 리빨 리빨..." ('빨리'라는 말 나올때마다 닫는 명상 1분씩 길어진다고 했더니) 

승희 : "오늘 놀아요!" (맨날 놀며 또 놀재요. ㅠㅠ)

다은 : "제니스~~~" (헤어지는 인사하면 달려와 꼬옥 안아주고 갑니다)

준서 : "제니스, 지금 몇시야?" (꼼꼼한 준서는 하루에도 몇 번 시간을 묻지요)

구빈 : "깔깔깔깔!!!" (웃음이 유난히 많아졌어요. 사춘긴가...?)

태식 : "제니스, 저 오늘은 밥 먹을게요." (요리를 도맡아하면서부터 영웅이 되었어요)

어진 : "제니스, 오늘은 나랑 같이 걷자." (엄마랑 같이 등교하는 바람에 아이들 아침산책을 늘 왕복으로 걸으면서도

          투정없는 어진. 이것도 복이죠?)

최근 우리 배움터에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신발을 숨기고, 주먹질을 하고, 몰래 불장난을 하고, 출입금지구역에서 은밀히(!) 놀고... 하여, 요즘 배움지기들은 거의 매일 모여 아이들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상 언어로 표현하자면 '아이들의 폭력성'인데요,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아이들이 일깨워주는 문제를 대하는 '저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나의 투사(그림자)요 질문꺼리요 배움'임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그것 너머에는 분명 중요한 메세지가 있을텐데요, 그것에 어렴풋이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는 과정을 걷고 있답니다. 

오늘 배움지기 윤독글에 의미심장한 글귀가 있더군요.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만 주먹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으면 그것은 이미 비폭력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미 내 마음의 적개심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겁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의 언어나 행동의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만 가르쳤습니다. 욕설을 들어도 '반사!'하며 웃어버리라고 하고, 누가 나를 때려도 같이 때리는 건 평화를 깨뜨리는 폭력이니 그러지 말라고만 했습니다. 딱 거기까지였죠. 그런데 (내게 폭력을 가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없는 비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니...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사랑'이 모든 문제해결의 근본이라니 안심이 되는 대목이기도 했어요. 사랑, 그것도 참사랑...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말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깨달은 이 진리를, 아이들과는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니 지금부터 머리속이 드글드글~~~ ㅎㅎ 그런데요, '방법을 몰라 사랑하지 못하는 법은 없다'는 관옥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밤 저를 위로해 주십니다.)

어제는 노자를 공부하고 왔어요. 아이들이야말로 가르치는 바 없이 가르치는(爲無爲) 스승이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이들 덕분에 철이 들고, 아이들 덕분에 질문하게 되고, 아이들 덕분에 엔돌핀이 솟습니다. 이 아이들과 무얼 하려하기 이전에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명제가 왜 진리인지 조금씩 알아차리는 중이라고 할까요.  배움지기들의 '나를 중심으로 산다'는 화두에 대한 답인 듯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13년 새식구맞이 설명회'를 합니다. (7월 7일) 새식구 맞을 채비가 스스로 되어 있는지 '헌가족(?)'으로서 한번쯤 사유하는 6월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날마다 좋은날 되시길 간절히 두 손 모으며...

2012년 5월 31일 마지막날 배움지기 제니스 드림

P.S.) 참, 저는 당분간은 카메라를 놓아보기로 했어요.

카메라에서 자유로우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