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열두 권은 될 것이라고. 왜 하필 열두 권일까. 일 년 열두 달 편할 날이 없었다는 말을 참 멋들어지게 한다. 어머니도 늘 그랬다. 나니까 살았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나였기에 해냈다는 착각은 생의 끝자락 빈손 앞에 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들어간 삶이었다는 것을. 나라고 별다를까.
어느 날, 친구로부터 밥 먹자는 전화를 받았다. 봄비 내리는 밤을 꼬박 새웠는지 얼굴도 푸석했다.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녀 앞으로 반찬을 밀어 넣어주고 슬슬 눈치 보면서 먹었다. 간간이 장단을 맞추면서도 친구의 말이 끊길까 그냥 듣기만 했다. 내가 다 먹는 동안 친구는 반도 못 먹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밥보다 속 화풀이가 더 중요해 보였다.
친구는 전날 밤 저녁상을 차리면서 남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했다. 소파에 기대어 TV만 보지 말고, 수저도 놓고 반찬도 꺼내 놓으라는 소리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40년 넘도록 밥해주고 살림했으면 어깨너머로 본 것도 있을 텐데 같이 하면 오죽 좋겠냐며 속사포처럼 쏘아 부었다고 했다. 하루 세끼 밥상 차리고 설거지까지, 나도 좀 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며 손짓 발 짓 흉내도 냈다. 하는 일도 없이 어찌 그리 손가락 까딱하지 않느냐고 내친김에 그동안 쌓였던 말들을 쏟아냈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잘했어, 친구야.”
한 번쯤 질러도 된다며 나도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점점 친구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주위의 눈치가 보여서 나는 찻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의 하소연은 오색 찬란한 색깔로 피워내기도 하고 암울한 회색빛 사연에 눈물도 흘렸다. 눈가를 훔치는 나를 보며 그녀의 어깨는 더 흔들렸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남편은 매일 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밥을 먹는다고 한다. 퇴직한 지 5년이 지나도 그 배꼽시계는 변함없이 울린다고 눈물 콧물 닦으며 넋두리는 이어졌다.
친구는 남편의 빚보증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시집살이 서럽던 이야기, 손주 자랑 등 저녁 시간이 가깝도록 줄줄 풀어 놓았다. 붉어진 눈동자를 손수건으로 훔치며 “책을 쓰면 열두 권은 되겠지.” 하며 빙그레 웃었다. 몇 마디 하지 않고 듣기만 한 나를 보며 들어줘서 고맙다고 내 손을 잡았다.
“그래도 남편은 필요하겠지?”
나는 푸하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네가 내 친구여서 좋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오늘 하루의 보상을 다 받은 기분이었다. 단지 들어주고 공감했을 뿐인데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저녁밥 해야 할 시간이라며 일어서는 친구를 보면서 영락없는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았다.
점점 체력은 약해지고 쉬고 싶은데 남자는 여자의 살림살이 고단함을 모른척한다. 결혼, 남자는 쉼터를 바라고 여자는 보디가드를 원한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노을의 길목에 있는데 함께 하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면 좋을 텐데…. 화성에서 살고 금성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생각도 말하는 방법도 다르다. 옆집, 앞집, 뒷집도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내 맘에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상대방은 나를 맘에 들어 할까.
“당신도 퇴직하고 쉬고 있는데 나도 좀 쉬고 싶어요.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는 하세요.”
이 말도 목구멍에서만 맴돌 뿐 알아서 해주기만을 바라는 나는 바보다. 누굴 탓하랴. 다 내가 만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