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드러나는 경우에 관하여
정신은 드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즉 어떤 드러나 보이는 부분에서도 정신을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만약 경험한다면, 그 드러나 보이는 부분에서 정신을 파악한다. 이와 같이 정신을 파악해야하는 이유는 물질을 전달할 때 물질의 이면인 정신이 전달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즉 정신이 전달되어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그 물질이 생명을 갖는다.
예컨대 K 음악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것은 K 음악에 내재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세계인을 감동시키기 떄문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세계를 인도하는 정서가 내재되어 있기 떄문인데, 필자는 이를 크게 보아서 '홍익인간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여행을 많이 하는 시대라 세계를 다녀보면 그 민족 특유의 정서를 느낄 것이다. 그 민족 특유의 정서에 이와 같은 홍익인간의 이념, '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다음 백과 사전)'는 정신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렵다. 대부분 그 지역 자연환경과 관련된 정신,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물론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가진 민족도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의 이념같은 정신은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담으로 우리는 이런 우리민족의 정신을 잊지말고 계승해야 한다. -교육으로-
그런데 왜 K 음악이 우리 민족의 정신을 전달하는가? 그 이유는 음악의 속성에 있다. 조각, 조소는 정신이 내재되어있어서 그 작품을 이해해야 정신이 전달되지만, 음악은 정신 그 자체로 듣는 순간 정신이 전달된다. 구체적으로 음악의 리듬은 듣는 사람의 에테르체에, 음악의 정서는 듣는 사람의 아스트랄체에, 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다시 듣는 사람의 자아에 전달된다.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자아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이다. 정신의 핵심 구성요소이므로 음악을 듣는 순간, 정신 그 자체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이 다른 예술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듣는 사람이 음악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음악은, 이와 같이 듣는 사람의 정신을 움직이므로, 내가 어떤 음악을 계속 들으면, 그 음악의 정서, 정신이 나의 정신을 변화시킨다. ASMR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음악의 속성이 정신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정신을 내가 표현해야 전달된다는 것이다. 정신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으로 말하면, 그런 정신을 내가 가지면 된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을 어떻게 가지느냐로 오히려 질문을 하게 된다. 필자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라인댄스 옹영상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라인댄스 동영상은 수강생들이 따라할 수있게 노래에 맞는 안무를 잘 추는 몇 사람을 찍은 동영상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노래의 정서를 춤에서 비교적 드러내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이 사람은 노래에 맞는 정서를 표현한다고 너무 오버(?)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거부감을 들게 하였다. 왜 어떤 사람은 노래의 정서를 비교적 잘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을 줄까?
음악의 정서는 곧 음악의 정신이다. 정신은 바깥에서 주입한다고 정신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정신은 내가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여져 받아들여지고, 또 표현도 마찬가지로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여서 전달된다. 즉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는 것, 그것이 곧 정신이다. 만약 나의 정신과학적요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신, 음악의 정서는 표현도, 전달도 되지 않는다. 여기가 정신이 전달되는 것과 전달되지 않는 지점이다. 요컨대 정신은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는 것이므로 정신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정신을 배우는 것이 옛날 공부였다. 다음은 그 일화이다. 한 남자가 공부를 배울려고 유명한 스승을 찾아갔다. 그런데 스승이 공부는 안 가르쳐주고 밥하고, 빨래하고, 나무를 하는 등 일만 시키는 것이었다. 그래도 참고 언젠가는 공부를 가르쳐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어느 덧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래도 계속 일만 시키자, 참지 못한 남자는 스승에게 물었다. '왜 공부는 안 가르쳐주고 일만 시키느냐고, 스승이 답하기를 '내가 매일 매일 가르쳐 줬잖아'. '지금도 가르쳐 주고 있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신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런 일화가 생긴 것이다.
음악의 정서를 비교적 잘 표현한 사람은 그 사람의 정신 과학적요소가 비교적 잘 움직인 사람이고, 반면 거부감을 느끼게 한 사람은 자신의 정신 과학적 요소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모든 동작을 바깥에서 요구하는대로 따라 하지만, 그 동작이 자신의 정신을 통해서 창조되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정신과학적 요소가 잠을 자면 바깥에서 따라하는 동작이 창조되어 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보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이다. 필자가 조금 오버하면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춤을 추는 허수아비를 보면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커녕 오히려 하찮다는 생각이 든다. 동작을 크게 작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가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느냐, 아니냐의 지점이다. 자신의 정신이 움직여서 동작이 창조되면 정신이 전달되어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핵심은 자신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안되는 이유는 현 인류가 선택한 사고방식에 있다.
현 인류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채택해서 인간의 정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교육에서도 배제된다. 요컨대 현재 많은 사람들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발달단계에 있는 아이들이다. 인간의 발달단계란 정신이 발달하는 단계라는 의미인데, 정신을 배제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정신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이 망가진다고 봐야 한다. 정신이 망가진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나아가 정신을 전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뉴턴은 물리법칙만 고려했다. 괴테는 에테르적 힘의 세계(형성력)로 사고를 확장했다. 괴테의 연구에는 생명계 법칙이 담겨있다. 슈타이너는 색채가 영혼 내용의 표현이라는 차원으로 까지 올라갔다. 그는 시공을 넘어 영혼과 정신의 창조적 힘이 지배하는 그 세계를 꿰뚫어 보았다(오드리 맥앨런의 도움 수업 이해, 2021, 143)." 분명한 것은 영혼과 정신의 창조적 힘이 지배하는 그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넘어가는 길을 슈타이너가 제시했다. 하지만 인류는 뉴턴의 물리법칙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넘어갔다.
자본주의 시대란 인간을 자본으로 바꾸어서 보는 시각이다. 모든 부분에서 자본이 인간을 대치했다. 현재 인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슈타이너의 세계는 커녕 괴테시대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창조적인 세계, 영혼과 정신의 세계로 넘어갈 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가지 못하니 안타까운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는 동안 정신이 온전히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 아이들이 자신의 정신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이 제 기능을 해야 정신이 망가진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요즘 청년들에게 돈 주고, 입영 여비주고, 집도 주고 하는데, 해봐야 이미 망가진 정신으로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이 온전하게 성장- 발달하는 교육을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