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11)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 ① 한심한 언어/ 시인 안도현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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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한심한 언어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쓴 동시 한 편을 읽어보자.
어느 어린이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동시를 쓴 아이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런 유형의 동시를 보면 화가 난다.
한숨이 절로 쏟아진다. 이 동시를 쓴 아이 때문이 아니다.
이런 동시를 쓰게 하고, 심사를 해서 상을 주고,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어른들이 한심해서다.
좀 더 과하게 말한다면 이 작품은 동시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놓았다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참새친구 멀리 이사 가도
외롭지 않은 허수아비
허허허 허수아비의 정겨운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덩실덩실
우리는 이 동시를 읽으며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아니,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물감을 과연 커다랗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물감을 강하게 ‘푹’ 찍었는데 왜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뿌리는가?
그렇게 물감을 뿌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호두나 감자도 아닌 벼이삭의 생김새를 ‘탱글탱글’로 표현하는 게 맞는가?
고추잠자리와 참새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참새를 쫓기 위해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어야 할 허수아비가 왜 웃는가?(실성을 했나?)
농부아저씨는 추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어깨춤을 추시는가?(낮술이라도 한잔 드셨나?)
제목은 「가을맞이」다. 왜 그냥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가을맞이」라고 했을까?
이 동시는 가을의 일반적인 풍경을 그저 평이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가을맞이하는 그 어떤 적극적인 자세도,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색도 없다.
‘가을’이라고 하면 맨송맨송해서 다만 무엇인가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맞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면 왠지 시적인 표현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는 으레 꾸미고 몇 글자를 덧붙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시 아닌 것을 시로 행세하게 만들고 있다.
글을 아름답게 하려고 다듬고 꾸미고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을 수사(修辭)라고 한다.
이 동시는 온전히 수사의 기술로 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쓰인 시어 중에 명사는 모두 10개다.
‘황금물감·가을들판·고추잠자리·춤사위·참새구이·이사·허수아비·웃음소리·농부아저씨·어깨춤’이 그것이다.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교롭게도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된 복합어의 형태다.
이 명사들은 가을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그 스스로 빛나는 시적 영감을 던져주지 못하고
시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포함한 부사가 ‘푹·가만가만·탱글탱글·두둥실두둥실·멀리·허허허·덩실덩실’ 등 7개이고,
색깔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로 ‘커다란·누우런·빠알간·흥겨운·정겨운’ 같은 말들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부사와 형용사를 빼고 이 동시를 한 번 읽어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들판에 뿌려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참새친구 이사 가도
허수아비
허수아비의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이렇게만 해도 작자가 형용사를 통해 대상을 간섭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
엘리엇은 일찍이 시가 ‘정서로부터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가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
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
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4. 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11)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 ① 한심한 언어/ 시인 안도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