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도벽증을 가진 어린이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이기주의를 발달시키고 그것이 예를 들어서 어린이가 새 단어를 하나 배우고 나서 혀를 차는 식으로 나타납니다(특수 교육학 강의, 2008, 207)."
위 문장은 슈타이너(1861. 2- 1925. 3)가 생애 한번, 그것도 말년(1924, 6월)에 이루어진 툭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강의에서 한 말이다. 필자가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에는 퍽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혀를 차는 정도와 이기주의를 발달시키는 일이 도벽이라는 엄청난 일에 비해 매우 사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실제로 도벽을 가진 아이를 만나서 가르쳐보니, 그 아이는 이런 징후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다.
도벽증은 이갈이가 끝날 무렵 부터 서서히 도벽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 전에 도벽을 가진 아이를 발견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만약 이런 징후를 관찰하는 안목이 있다면, 아이들이 어릴 때 도벽증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병이다. 어릴 때 발견하면 도벽증도 층분히 치료된다고 슈타이너가 주장하였고, 필자 역시 가능하다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아이가 이런 징후를 보이면 이기주의가 왜 문제인지, 혀를 차는 이유의 문제점을 알려주고 양육자(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도벽증은 자연스럽게 치료가 된다.
필자가 만난 도벽증 아이는 남자아이로, 5학년 때 만나서 6학년을 지나 졸업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슈타이너 공부를 한지 얼마(6년 정도)되지 않아서 슈타이너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다소 그렇지만 지식으로 이해하는 정도, 정신은 지식으로 이해하면 전달되지 않는다. 경험해야 그것이 전달되어 치료가 된다. 이것이 정신의 속성이다.
당시 슈타이너가 주장한 도벽증의 원인은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슈타이너의 처방은 도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아이가 듣고 이 이야기에 공감한다면, 서서히 치료가 된다고 하였다. 당시 필자는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도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아스트랄체의 발달과의 관계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도벽과 같은 엄청난 일이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과연 치료가 될까'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스트랄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니 이제 이해가 된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다. 도벽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하면, 아스트랄체, 감정체가 발달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 물건과 나의 물건에대한 감각(느낌, 감정)이 발달하는 것이다. 아이가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아스트랄체가 다른 사람의 물건에 대한 감정이 없기 때문인데, 이 감정이 아스트랄체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의 감정이 발달하면 도벽이 치료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자신에게 이런 '이해'가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역시 아스트랄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어릴 때 아이의 주위에서 돌봐주어야 한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이고, 영혼은 아스트랄체의 감정에 따라서 다만 기능할 뿐이다.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다른 사람 물건에 대한 감각이 없고, 그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면, 영혼은 의지를 발현한다. 이것이 도벽증이다. 그러므로 이갈이 전에 이런 징후를 보이면 아스트랄체를 발달시켜야 한다. 요컨대 다른 사람 물건에 대한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왜 징후가 보이면 해야 하는가 하면은 징후가 보이고 한 참 후에 도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징후가 나타나는 시기는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아이의 자아가 모든 대상에 대해서 자신과 하나인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은 모든 대상에 대해서 자아가 공감하므로, 아이가 그 상황(주위의 모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5학년 때 아이를 만났으므로, 이런 징후에서도 시간이 많이 지났고 도벽 증세도 보인 시점이다. 그래서 당시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아이의 도벽을 아는 상황이었다. 필자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이는 수업 중에도 가끔 혀를 찼고 이기적인 면도 보였다. 아이는 자신이 생각할 때 터무니 없다거나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혀를 찼다.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이므로 통상 정신연령이 낮은 경우에 보인다고 생각이 된다.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듯 당시 아이는 또래 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보다 낮은 학년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또 이기적인 면은 무엇을 할 때 아이는 먼저 나서서 하지 않았다. 자신이 책임을 다하는 일에 대해서도 감각이 없었다. 예컨대 청소를 할때도 자신의 책임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돋보이는 행동, 옷을 멋지게 입는 일은 아주 좋아했다. 가끔 멋지게 차려입고 필자 교실을 방문 한적도 있었다. 이것이 허영심인데, 이런 허영심이 정신의 발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신의 내부에 관심을 가져야 정신이 발달하는데, 허영심으로 인해서 자신의 내부에 관심을 가지기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수업 시간 증에 도벽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려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아이의 도벽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측은하게 생각해서 사랑으로 돌봐주었다. 그래서 그런 듯 아이가 필자를 좋아해서 잘 따랐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만약 지금이라면 좀더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도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아이가 공감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과거에는 아스트랄체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궁금할 것이다. '어떻게 아스트랄체를 이해하게 되었을까'가 질문이다. 슈타이너의 책을 읽으면 슈타이너의 정신세계를 따라가는듯 하다. 일반적으로 간접경험이라고 하는데, 정신세계도 같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터무니없는데 자꾸 읽다보면 책 내용이 이해되고, 책 내용과 같은 정신세계를 만나면 그것을 알아본다. 짐작하기에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정신세계를 만나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다음은 그예다.
첫 번째, 현장에서 근무를 할때 동료인데 남자였다. 그냥 느낌으로 도벽증이 느껴졌다. 그 남자에게서 어두운 그림자가 구름과 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증명할 수가 없으므로 물론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돈을 벌고자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는 이야기를 동료로 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로 인해서 돈이 오히려 그 남자를 떠난다는 생각, 그 그림자가 걷혀야 돈이 벌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벽으로 다른 사람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일종의 돈을 버는 일인데, 오히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니 아이러니하다. 신기했지만 말은 하지 않고 짐작만 했다. 물론 그 남자는 굉장히 유능했고, 윗사람의 신임도 두터운 남자였다.
이것이 아스트랄체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스트랄체는 원래 구름과 같이 그 사람 주위를 감싸는데, 발달하지 않으면 이 구름이 두리뭉실하고 정돈되지 않은 모양을 띈다. 반면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 정돈되고 밝고 환한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어제 필자는 주말농장으로 상황버섯을 사러갔다. 주인이 상황버섯을 펼쳐놓고 설명을 하다가, 다른 상황버섯을 가지러 바로 옆에 문 하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들어가서는 주인이 그 문을 꼭 닫는 것이 아닌가. 문을 열어놓아야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을 볼수가 있을 듯 한데, 책상 위에는 상황버섯이 그대로 펼져져 있고, 주인은 없으므로 필자가 상황버섯 몇개를 집어서 가방에 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필자는 펼져진 상황버섯 근처에서 오히려 떨어져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 번도 아니고, 세번 정도 더 주인이 자리를 비웠지만, 그때마다 필자는 상황버섯 근처에서 벗어나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주인은 손님이 상황버섯을 몰래 가지고 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자리를 비울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인의 아스트랄체가 파악되었다. 주인의 아스트랄체는 농장을 운영하므로 자연친화적이어서 그런지 도벽의 에너지는 없었다. 하지만 농장을 하면서 덥고 힘든 감정이 아스트랄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스트랄체에 짜증, 불만과 같은 감정이 쌓여있으면 영혼이 기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영혼이 자신의 일을 할려면 즐겁고 편안해야 한다. 만약 주인이 농장을 운영하는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려면 자신의 아스트랄체에 짜증과 같은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아스트랄체의 중요함이다. 아스트랄체는 몸안과 밖을 헤엄(?), 드나드는데, 이 촉수가 발달하는 정도에 따라서 영혼이 상상, 영감, 직관을 가져온다. 보통은 아스트랄체가 몸안에 촉수를 드리우고 밖을 향하여 촉수를 드리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은 밖을 향하여 촉수를 드리운다고 한다. "자신의 아스트랄 촉수를 얼마나 뻗칠 수 있느냐에 따라 인간의 다른 영적기관들이 개발됩니다. <......> 상상력은 이마에 있는 2개의 차크라, 영감력은 후두에 있는 16개의 차크라, 직관력은 심장 근처의 12개의 차크라이다. 이 세가지 감각들은 물질적 감각보다 고차의 아스트랄감각입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혜, 2023, 67)." 누구라도 평소 상상력, 영감력, 그리고 직관력을 갖고 싶어한다면,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발달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어떻게 발달시키는가'가 질문이다. 아스트랄체가 감정체이므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영혼이 감정에 매몰되므로 쉽지는 않다. 처음에는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보듯이 보아야 한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감정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로 그러면서 영혼이 하는 일을 파악해서 좋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을 피해주는 일 등등이다. 네 번째로 이와 같은 일들은 결국 성인들의 말씀인 '오계'나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아스트랄체가 정돈되고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서 영혼이 혼란에서 벗어난다. 결과 영혼이 상상, 영감, 직관을 가져오는 것이다.
결론은 정신이 물질의 이면이고, 우리가 물질을 얻고 싶다면 정신의 이런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현재의 아스트랄체는 이제(?)까지 자신이 만든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감정에 놀아나지 않고 오계를 지킨다면 아스트랄체는 변화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업의 방향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주대로, 팔자대로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사주대로, 팔자대로 살지말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