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 전영애 서울대 교수(독문과)가 지은 여백서원 기사가 나왔다.
“그냥 불쑥 오면 된다. 정갈한 서원 안에서 책을 볼 수도 있고, 벽난로에 불을 때도 된다. 마음 맞는 사람과 문학을 이야기해도 되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아도 된다. 잠이 오면 침낭을 꺼내 자면되고 아침엔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 물론 숙박비도 없고 예약도 필요 없다.”
기사를 보고 여백서원과 안주인을 만나고 싶어 여주로 여행을 정했다.
기사에는 상세한 주소가 나오지 않아서 여주 시청에 문의하였다. 몇 사람을 거쳐 드디어 정확한 지번을 알았다.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 논밭 한쪽에 숨은 듯 수줍게 서있다. 햇볕을 함초롬히 받은 서원은 정갈하면서 고아한 맛을 풍기는 양반집 한옥같다.
철대문은 닫혀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기척이 없다.
오늘따라 주인이 외출한 걸까? 차고에 자동차가 있는 걸로 보아 그런 것 같지 않다. 기사가 나간 후에 벌떼처럼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다가 지쳐서 문을 닫아건 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난들 그렇지 않을까? 신문이나 T.V에 한 번 나오기만 해도 낮이건 밤이건 불쑥 찾아드는 손님들이 무에 그리 반가울까?
이해는 되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인근 목아박물관을 찾았다. 목아박물관은 설립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인 박찬수 관장이 전통 목조각을 보존과 계승 ‧ 발전시키기 위하여 1989년 개관하였고 1992년 문화관광부 제28호로 등록된 전문사립박물관이다. 직지사 설법전의 불상과 목조각 탱화, 법상도 박찬수님의 작품이다. 또 목아木芽란 호는 직지사 조실 녹원 스님이 내려준 호라고 한다. 한 인간의 각고의 노력이 얼마나 큰 세상을 열 수 있는지 새삼 감탄스럽다.
영릉英陵 ․ 영릉寧陵을 찾았다.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의 왕릉 42기가 훼손되지 않고 제자리에 보존되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틈틈이 능을 보았으나 오늘에야 능의 구조와 능에 쓰이는 용어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동봉이실합장릉이다.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광壙이 있는 무덤이다. 능 앞에 직사형의 돌이 두 개가 있어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최초의 합장릉이래, 그래서 능침 앞에 상석이 두 개가 있어.”
나중에 책을 보니 능침 앞에 놓은 직사각형의 돌은 혼유석魂遊石이라고 부른다. 일반 묘는 상석이라 해서 여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지만, 능제사는 정자각 안에서 지내고 능의 혼백은 봉분 앞 혼유석에 나와 제사 광경을 지켜본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능에 사용하는 용어를 익혔다.
○ 예감瘞坎----제례 끝난 후 음식을 치우면서 축문을 태우는 석함
○ 참도參道----왕릉을 참배할 수 있도록 홍살문에서 왕릉 앞의 정자각에 이르는 길
○ 정자각丁字閣---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 집
○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이나 절 안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
그 외 능침, 수라간, 곡장, 난간석, 병풍석, 수복방, 금천교, 홍살문 등을 확인했다.
영릉英陵은 천하의 명당자리답게 넓은 터에 호방하고 당당하게 위치해있다. 이 능의 덕분으로 조선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지관들은 말한다.
영릉寧陵은 영릉英陵의 오른쪽, 좁고 깊숙한 골 안에 들어와 있어 호젓하고 조용한 동원상하릉이다. 위쪽은 효종의 능이고 아래쪽은 인선왕후릉이다. 특이한 점은 금천교가 홍살문 안쪽에 있고, 잘 보존된 보물 제1532호인 재실과 수령 300년인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있다.
키낮은 회양목이 저렇게 늘씬한 수형으로 자랐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한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온통 검은 색이다. 이렇게 온통 검은색으로 내부를 장식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그다지 싸지도 않은 숙박비를 지불했는데도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몹시 추웠다. 따끈한 구들방을 그리워하며 밤새 오들오들 떨었다.
다음 날, 일찌감치 신륵사로 향했다.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들어가니 신륵사 정문이 아닌 옆구리로 통하는 샛문이 나온다. 샛문이 열려있기에 그리로 살며시 들어가니 바로 강월헌이다. 차갑고 무거운 안개가 여강을 휘덮어서 강물은 보이지 않았다. 강월헌 옆에는 여강을 배경으로 색색의 소원지가 새끼줄에 길게 꽂혀있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소원이 아니라 발원을 하라고 했지만 늘 소원부터 떠오른다. 소원은 한결같다.
자식이 건강하고 환히 밝아지라는 것이다.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의우 孟無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부백이 효를 묻자,공자께서 대답하였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논어의 수많은 명구절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부모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으면 곧 효라고 한 성현의 말씀이 비할데 없이 깊다.
강월헌과 그 옆의 소박한 삼층석탑, 늘씬하고 우아한 7층의 전탑과 바로 뒤의 대장각비는 신륵사를 아름답고 유장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모두가 옛사람의 진심과 체취가 느껴진다.
아담한 극락보전을 거쳐 나옹선사를 모신 보제존자 석종부도와 석등과 석종비를 보러 갔다. 신륵사에 몇 번을 다녀왔지만 안개 낀 차가운 겨울에 보는 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얕게 백설이 깔린 묘역을 둘러싼 용틀임하는 소나무가 마치 신장들의 군무같다.
온갖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한 석등과 푸른 이끼가 내려앉은 장중하면서 고풍스럽고 소박한 석종형 부도가 대비를 이룬다.
켜켜로 쌓인 태고의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없는 소리...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첫댓글 목아 박물관 신륵사. 예전에 함께 했던 시간이 새록새록..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