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18)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2/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yunmunmjoo/ 이승하시인 제목 시 어떻게 쓸 것인가?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2
유종인은 1996년 《문예중앙》에 시로 등단한 이후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다시 등단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시인입니다.
시조를 쓰다가 한계를 느껴 시를 쓴 경우는 있지만 시를 쓰다 시조를 겸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지요.
정일근 시인도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다시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유 시인은 요즈음 시조 쓰기에 흥이 오르셨는지,
5편의 작품이 전부 시조입니다.
수천 년을 비추면서 그대는 내려왔지
청맹과니, 먼 빛으로 딴전 피듯 살아왔다지
그리운 얼굴빛으로 성난 역사(歷史)를 비췄다지
한 목숨 다하도록 참선(參禪)의 길 하나 찾듯
문둥이 남사당패도 분첩단장(粉貼丹粧)을 공들인 뒤
어두운 시간의 장터 끝으로 먼지처럼 사라졌다지
비 끝에 바람이 불고 능수버들 휘날리는 날
그대 찾던 님의 무덤은 들판처럼 평평해지고
찬 이슬 맞은 얼굴엔 민달팽이가 흘러갔다
천년도 잠깐 비춘 듯 아득해진 눈빛으로
소리도 눈으로 보고 빛조차 귀로 들으면
청동빛 님의 목소리가 푸른 녹으로 슬어 있다.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을 보다〉 전문
평시조 4수가 모여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청동기 시대의 구리거울 다뉴세문경을 시의 소재로 취했습니다.
일단 구리거울의 의인화가 무척 신선하게 여겨집니다.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그리운 얼굴빛과 청동빛 목소리를 지닌 이로 성화(聖化)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1백년 안쪽이지만 기나긴 시간 구리거울은 살아있었습니다.
“천년도 잠깐 비춘 듯 아득해진 눈빛”을 지닌 구리거울의 목소리가 “푸른 녹으로 슬어 있다”는
표현은 대단히 감각적입니다.
‘님’이 수천 년의 세월 “성난 역사”를 비춰오는 동안 푸르게 녹이 슬었다는 것이지요.
아쉬운 것은 내용이나 형식이 모두 지나치게 고색창연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지금은 조지훈이 〈古風衣裳〉을 발표한
1939년이 아니라 2003년입니다.
아무리 다뉴세문경을 갖고 시를 쓰더라도 현대인의 정신세계를
자극시킬 형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오늘날의 독자 가운데 문둥이 남사당패의 분첩단장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의 수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시조가 너무 예스러우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풍장(風葬)〉은 훨씬 현대적입니다.
3편의 시를 모아 쓴 일종의 연작시인데 제1편에는 대관령 황태덕장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퀭한 눈알의 황태들이 눈을 맞고 있지요.
눈이 얼마나 내렸는지 교통이 두절되고 소나무 가지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찢겨질 정도인데도
뱃속을 드러낸 채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황태들.
제2편에는 어촌 사람들, 즉 하교길의 조막손과 손등에 저승꽃이 피어 있는 노파가 등장합니다.
풍장의 대상이 황태에서 노파로 전이되는 것이지요.
얼었다 녹았다 하는 황태처럼 우리 인간의 삶도 그런 순환논리로 보고자 한 시인의 인식이 돋보입니다.
문제는 제3편입니다.
시장통 하수구로 생선 피가 흘러간 자국
하얗게 불은 밥풀에 눈독 들이는 시궁쥐,
쥐 눈에 들린 하늘이 노을빛으로 번져간다.
이빨을 앙다물며 숨결이 잦아들 때쯤
배꽃이 피기 전에 어머니는 손을 놓았지.
쥐뿔이 솟은 뒤에도 닳려 가는 목숨의 살(煞)!
자, 제3편의 무대는 시장통입니다.
아마도 화자의 어머니는 시장의 장사치로 생선을 팔던 분이었던가 봅니다.
어머니가 배꽃이 피기 전 숨을 거둔 것까지는 알겠는데 마지막 행은 뜻 파악이 잘 안 됩니다.
여기서 ‘쥐뿔’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말에 ‘쥐뿔나다’, ‘쥐뿔같다’, ‘쥐뿔도 모르다’, ‘쥐뿔도 없다’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와 관련이 있을까요?
‘닳려 가다’와 ‘목숨의 살(煞)’도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황태의 풍장을 결국 어머니의 삶과 죽음으로 연결시키고자 한 것 같습니다만
너무 모호하게 처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을 열고 눈빛 가득 한 하늘을 담는 날은
억만 년 세월마저 바람 한 줄로 스쳐지고
눈 시린 겨울빛으로 새떼들이 날아간다
그대 올 듯이 길들이 비어질 때
빈 방에 한 장 햇살을 녹차 향기로 달래놓고
들창엔 인기척을 내듯 젖은 눈이 스치는 듯
악몽 같은 길을 풀어 허공으로 드리운 나무들
이제야 섭섭한 정(情)들 낙엽으로 떨구고 나면
새로이 옷이 그립구나, 하얀 뜻이 입고 싶구나
새삼 날빛이 어두워 기억 쪽에 그늘이 지고
문설주에 이마를 대고 울 듯이 글썽여 보면
먼길을 그대 오는가 맨발에 닿는 차운 입술
서로를 물고 뜯는 야합(野合)의 목소리도
묵은 때 씻겨 덥는 저 눈발의 회오(悔悟) 속에
천년의 수의(囚衣)를 걸친 사랑들을 그려본다
―〈대설부(大雪賦)〉 전문
〈대설부〉는 제목도 그렇지만 시어의 선택, 시의 전개 방식, 세부적인 표현 등이 다 구태의연합니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표현이 속출합니다.
형식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정공법을 고수한 탓이 아닐까요?
시의 마지막 3행은 바로 그 앞가지의 흐름과 맞지가 않습니다.
“서로를 물고 뜯는 야합의 목소리”가 왜 갑자기 나오는 것인지, 시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눈발을 ‘회오’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고,
“천년의 수의(囚衣)를 걸친 사랑들을 그려본다”는 참 뜬금없이 튀어나온 행이라고 여겨집니다.
시조라는 형식을 지키려다 보니 문맥이 잘 안 통하는 행을 작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풍경 묘사를 관념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소감입니다.
낡은 베니어판을 무심결에 들춰내면
자벌레는 도망가고 몸을 마는 쥐며느리들,
어둠에 뿌리를 박으려 애를 쓰는 녹슨 못들
못 끝에 서린 녹물이 새삼스레 붉어지면
녹슨 못도 꽃인가봐, 봉오리만 잔뜩 부풀린
면벽(面壁)의 세월을 뚫고 아픈 눈을 뜨려는 듯
밑으로 겹겹을 뚫고 무슨 말을 하고팠을까
모두를 하늘 높이 머릴 드는 꽃밭에서
짓붉은 허욕의 머리를 내려치는 우레에 산다
흔들리고 허둥대는 한나절 꽃을 죽여
매맞는 슬픔마저 근성(根性)처럼 서려두고
박히면, 죽을 때가지 피 흘리는 숨은 꽃들!
―〈숨은 꽃〉 전문
못의 존재 의의 찾기 내지 의미 부여는 이제는 낡디낡은 것인데
유종인 시인은 〈숨은 꽃〉을 통해 다시금 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새로운 요소가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나무에 박혀서 녹이 슨 못을 숨은 꽃으로 본 인식의 전환 덕분입니다.
제1연에서 “어둠에 뿌리를 박으려 애를 쓰는 녹슨 못들”을 드러내고자
자벌레와 쥐며느리를 등장시킨 것이 참신하게 여겨집니다.
마지막 연의 돌출도 무척 참신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유종인 시조에는 ‘시간’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리거나 버티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인입니다.
못은 면벽의 세월을 뚫고 아픈 눈을 뜨려 하지만 짓붉은 허욕의 머리를 내리치는 우레에 살고,
매맞는 슬픔마저 근성처럼 서려둘 줄 압니다.
그리하여 한번 박히면 죽을 때까지 피를 흘리는 숨은 꽃의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이 시가 하나의 은유나 상징이 되면 더 좋았을 텐데,
‘숨은 꽃’이 못의 의미 전달에 그치고 만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물음표를 주워들고
묻네
길에서 품었던 모든 호기심의 연애여,
땅 속을
하늘에 걸려고
갈고리가 된
흙의 천사여!
―〈지렁이〉 전문
〈지렁이〉는 생략이 심해서 시가 전반적으로 허술해지고 말았습니다.
소설도 짜임새가 있으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듯이
시로 꽉 자인 구성이 시의 맛을 살리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독자에게 뭘 들려주고자 쓴 시인지 알 수가 없군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 ‘이승하 교수의 시쓰기 수업, 시(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승하, 도서출판 kim, 2017)’에서 옮겨 적음. (2022. 4.2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18)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2/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