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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를 보며
나지막한 산자락
듬성듬성 하던 진달래가
사방으로 피어나고
속내를 감추지 못한
여린 꽃잎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지난날
애틋하게 남아 있는 추억들이
이제는 너무나 아득해서
기억에도 없을 것이라고
이름마저 서먹해서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꼭 그럴 것만 같았는데
산마루를 향해 번지는
분홍빛 꽃잎처럼
내 안에 갇혀 있던
그리움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이미순·시인, 경남 의령 출생)
진달래
눈을 감아라
봄날 산에서는
숨을 고르라
아련히 떠오르는
그대들의 표표한 상징들
산꽃들이 날리며
물들어 버린 산에는
아,
미치도록 점점이 뿌려지고
흩뿌린 선홍색 꽃잎들이
아스라이 따스운 피 뿌리는데
산마다
끝머리에서 혼백들이
온통 젖어 들어 물드니
눈을 감아라
(이국헌·시인, 1956-)
진달래
순이 볼 언저리
매양 돌던
배고픈 짝사랑을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다 먹어도
겨우내 주린 배는
부르지 않으리
척박한 땅의 맨살에
뿌리와 뿌리로 얽혀
육신을 부풀리는
살아 단 한번
양달진 가슴 쬐어 보지 못했던 이들의
새붉은 노여움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다 헤매도록
한세월 앓아온 내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리
(박계희·승려 시인)
초롱불 진달래
삭둑삭둑 키를 잘라낼 땐
피 한 방울 안 나던 진달래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꽃분홍 선혈을 뒤집어쓰고 있네
조금씩 가지를 쳐낼 땐
신음소리 한마디 안 내던 진달래
오늘 아침 물주다 보니
빨갛게 켜든 초롱불 속에
마디마디 아픔이 웅크린
눈물을 감추고 있네
초롱불 한 잎 한 잎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나의 등뒤에서
진달래 아픈 비명소리가
딸,딸,딸, 신발을 끄을며 따라오네
(김지향·시인, 1938-)
진달래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 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박노해·시인, 1957-)
진달래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 잎 두 잎 따먹은 진달래에 취하여
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을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시인, 1920-1981)
진달래
순이나 옥이 같은 이름으로 너는 온다
그 흔한 레이스나 귀걸이 하나 없이
겨우내 빈 그, 자리를
눈시울만 붉어 있다
어린 날 아지랑이 아른아른 돌아오면
사립문 열고 드는 흰옷 입은 이웃들이
이 봄사 편지를 들고
울 너머로 웃는다
(전연희·시조시인, 1947-)
진달래
연분홍 입술마다
웃음을 머금었다
새 봄의 기쁜 소식
온 산에 알려주니
벙그는
미소에 따라
이 산 저 산 붉어간다
설레는 가지마다
꽃다발 한 아름씩
나물 캐는 봄처녀
설레는 맘 안아주듯
온산을
붉게 태우는
그 모습이 고와라
(최우연·시인)
진달래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사랑하면 진달래처럼
사랑하면 가슴이
진달래처럼 곱게 물든다
연분홍 수줍음 머금어
마음이 순해진다.
사랑하면 의지가
진달래처럼 굳세어진다
긴긴 겨울 다 견디어내고
마침내 꽃을 피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참으로 깊이 사랑하면
꽃의 영혼
꽃의 투혼을 갖게 된다.
(정연복·시인, 1957-)
진달래
겨울 잘 지냈다
붉은 꽃
한아름 안아보아라
가슴 가득히
네 사랑이다
뜯어먹어 보아라
얼굴 파묻고
울어 보아라
꽃이다
사랑이다
피눈물이다.
(유한나·시인, 강릉 거주)
진달래 감격
보는 것이다
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감는 것이다.
(정영자·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진달래
산 가득 뒤덮듯 흘러내립니다.
지난해, 산에 묻은 시퍼런 슬픔을
봉우리마다 얼마나 찧고 찧었는지
짓붉은 피 배어 올라 사태집니다.
(김하인·시인이며 소설가, 1962-)
진달래꽃
적들이
뛰어내린 자리
그 벼랑 위에서
피 묻은 손수건을 흔들어대며
또 다른 적들이
제 혼을 불사르고 있다
(고명·시인, 전남 광주 출생)
진달래
조숙했나 보다. 이 계집
계곡에는 아직도
겨울이 웅크리고 있는데
잎이나 피워 그 알몸 가리기도 전에
붉은 꽃잎 내밀어 화사하구나
싸늘한 가시바람 억세게 버틴
가냘픈 가지들의 이 꽃덤불
꽃덩어리 꽃등불
에덴의 이브도 잎새 하나야 있었는데
유혹할 사내도 없는 이 천부적 화냥기는
제 알몸 열기로 불태우는구나
아직도 파란 겨울 하늘이 남아 있는 걸
진달래야 진달래야 진달래야 진달래야
(이길원·시인, 1944-)
진달래 꽃빛
진달래 만발한 산천에 취하여, 종일 뛰노는
아이들을 살피다가 문득 깨닫겠다, 왜 이 나라의
무구한 아이들은 그 두 불과 팔다리는 물론
발바닥까지 아름다운 진달래 꽃빛인가를.
(박희진·시인, 1931-)
진달래꽃처럼
사람아, 이 사람아
숫처녀 부끄럼 같은 봄이 왔네
서늘했던 겨울의 잔영은 흐릿하고
천지 사방에 눈부신 꽃불이 붙었네
향기만 고와 봄꽃이려나
지들끼리 속삭여대지만 온 누리에
퍼뜨려져 있네, 그 온화한 숨결
사람아, 이 무심한 사람아
두 팔 힘껏 벌려
저 푸르른 계절을 품어 안으세
나도
이제 그만
부끄런 생애를 말끔히 벗으려네
사람아, 눈물겹게 소중한 사람아
이 계절마저 다 이울기 전에
우리 서로
흐드러지게 어울려 보세
대책 없이 바람 든
저 철부지 진달래꽃처럼
한 번 오지게
사랑해 보세
(장세희·시인)
진달래꽃
입술은 타고
몸은 떨리고
땀에 혼곤히 젖은 이마,
기다림도 지치면
병이 되는가,
몸살 앓는 봄밤은 길기만 하다.
기진타가 문득 정신이 들면
먼 산 계곡의 눈 녹는 소리,
스무 살 처녀는 귀가 여린데
어지러워라
눈부신 이 아침의 봄멀미.
밤새 地熱에 들뜬 山은
지천으로
열꽃을 피우고 있다.
진달래.
(오세영·시인, 1942-)
4월의 진달래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백우선·시인, 전남 광양 출생)
진달래꽃 피다
겨울그림자 걷힌
마음에
진달래꽃 피다.
소소리바람 불어와도
봄은 오듯이
갓바위 부처님
얼굴 닮은
진달래꽃 피다.
(김용수·시인, 완도 출생)
* 소소리바람: 이른봄의 맵고 스산한 바람
진달래꽃
지고 또 지고 그래도 남은 슬픔이 다 지지 못한 그날에
당신이 처음 약속하셨듯이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산이거나 강이거나 죽음이거나 속삭임이거나
우리들의 부끄러움이 널린 땅이면
그 어디에고 당신의 뜨거운 숨결이 타올랐습니다.
(곽재구·시인, 1954-)
진달래꽃 피는 거
진달래 저리 꽃피는 거
그거 봄비 때문 아니다
보고픔이 저도 모르게
삐어져 나오는 것이다
소쩍새 저리 우는 거
그거 어둠 탓이 아니다
그리움이 저도 모르게
울음 토해내는 것이다
내 마음 이리 쓸쓸한 거
누가 시키는 거 아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저 혼자 그러는 것이다
(강인호·시인)
진달래꽃 따라
솔바람 풀어놓은
산등성이에 이르면
바윗돌 감아 도는
분홍빛 여울목
눈길 따라
사르르-
번져 가는 그리움
시린 가슴 녹이며
추억의 무늬로 핀다
이 산자락 타고 가면
그리운 이 만날 수 있을까
온 누리
그리운 얼굴로 다가와
피는 꽃이여
산길 따라
내 마음도
연분홍 물결이고 싶다
(오경옥·시인)
진달래·
꽃이 피기는 아직 멀어도
꽃이 피기는 아직 더뎌도
이 땅은
한번씩 묵은 분노 토하는
서슬찬 거부의 붉은 생채기
아프게 아프게 내뱉는
그런 날 꼭 있습니다
민둥산에 황토산에 있습니다.
(류종호·시인, 1961-)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시인, 1902-1934)
진달래꽃
감추려 애써도
자꾸자꾸 망울지는
이 붉은 그리움
아직은 쌀쌀한 당신인데도
그 앞에 자꾸만
부푸는 가슴
오늘은
당신 앞에서
붉고 붉은 빛으로
피는 사랑을
감출 수가 없네요
(손상근·시인)
진달래
그대 이 봄 다 지도록
오지 않는 이
기다리다 못내 기다리다
그대 오실 길 끝에 서서
눈시울 붉게 물들이며
뚝뚝 떨군 눈물꽃
그 수줍음 붉던 사랑
(박남준·시인, 1957-)
진달래
새벽 안개 가르며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가
그댈 닮아
수줍어 고백도 못하고
웃기만 하는
분홍빛 사랑이 있습니다
그저
지나치는 눈길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꽃잎 떨며
몸서리치는,
봄이면
해소병처럼 도지는
열꽃 같은 사랑
(최원정·시인, 1958-)
* 해소병: 천식
진달래
봄바람이
치맛자락 살랑거리며
임을 찾아 이 산 저 산
옷깃 스친 자리마다
그리움의 한(恨)
붉게 물들어
바쁜 길손
눈길 잡고
임 소식 물어오네
(권선환·시인, 1966-)
진달래·
물안개 머리 풀어
떠도는 물에
살짝 비친
연분홍 고운 꽃송이
만지면 스러질 듯
가녀린 꽃잎
하늘 향해
살며시 미소짓는데
그리움 찾아 나선
종달새 울음
마른 가지
흔들어 홍조를 띠네.
(손정모·시인, 1955-)
먼 산 진달래
속 깊은 그리움일수록
간절합니다
봄날 먼 산 진달래
보고 와서는
먼 데 있어 자주 만날 수 없는
벗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내게 와서
봄꽃이 되는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작은 그리움으로 흘러가
봄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려
그만그만한 그리움으로
꽃동산 이루면 참 좋겠습니다
(김시천·시인, 1956-)
진달래가 핍니다
진달래가 핍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진달래가 핍니다.
파도로 해일로 진달래가 핍니다.
갈 것은 가고 사람만 남아
오천 년 역사로 핍니다.
역사의 멀고도 먼 어둠,
그 어둠의 거칠고도 험한 뿌리,
그 위로 돋아나는 어린 꽃잎들,
고향으로의 긴 행진,
막혔던 행진을 다시 합니다.
이 세상 정말 죽은 것들은 없습니다.
절망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죽은 씨앗들은 다시 일어나
삶의 거친 물살로 피어납니다.
진달래가 핍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갈 수 없는 곳까지
멀리 멀리 피어납니다.
(윤석성·시인, 1948-)
한반도에 진달래꽃 피었습니까?
겨우내
찬바람 속에
웅크리고
봄 기다린 꽃
진달래
반도는 엄동설한일지라도
밑바닥 삶의 애환에
아직 따뜻한
옛 봄기운 남아 있어
활짝 피려고
꿈꾸는 화려한 꽃
이 산 저 산
팔도에 두루 자리잡고
경계선 지우는
분홍빛
봄꽃
꽃 봉우리 맺혔습니까
한반도에 진달래꽃 피었습니까?
(함영숙·재미 시인)
진달래
삼월의 마지막 날
으스름 저녁
꽃샘추위
아직도 매서운데
야트막해도 곳곳에
바위들이 카펫처럼 깔린
투박한 길을 따라
아차산에 올랐다
산의 여기저기
몇 그루씩 무리 지어
어느 틈에 만발한
진달래꽃은
저 먼 옛날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이
환생한 것인가
진분홍
그 고운 빛깔로
봄의 도래를 알리는
저 핏빛 아우성
(정연복·시인, 1957-)
아, 진달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네
마음속에 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
내 살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네
내 살아 너를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숨막히는 슬픔이었네
파도치는 내 마음
감춘다는 건 다 말장난
아, 진달래
(홍수희·시인)
진달래꽃
아리어라.
바람 끝에 바람으로
먼 하늘빛 그리움에
목이 타다
산자락 휘어잡고 文身을 새기듯
무더기 무더기 붉은 가슴
털어놓고 있는
춘삼월 진달래꽃.
긴 세월 앓고 앓던
뉘의 가슴
타는 눈물이런가.
大地는 온통
생명의 촉수 높은 부활로 출렁이고
회춘하는 봄은
사랑처럼 아름다운
환희로 다가온다.
(박송죽·시인, 1939-)
진달래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진달래
신작로
잘려나간
산자락에
그네에
매달린
아기처럼
피어 있는
진달래
초연(超然)한
연분홍
색깔 너머로
무거운
하늘을 이고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
내 님
모습 같이
피어 있다
(김근이·어부 시인)
진달래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삼각산을 오르다가
나목(裸木)들의 더미 속
가녀린 여인의 몸 같은
진달래 한 그루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수줍은 새악시 볼 같은
연분홍 고운 빛 그 꽃들은
속삭이듯 말했지
봄이다!
너의 그 가냘픈 몸뚱이 하나로
온 산에 봄을 알리는
작은 너의 생명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생명이여
말없이
여림의 강함이여!
(정연복·시인, 1957-)
4월의 진달래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목필균·시인)
진달래와 어머니
진달래 숲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배고프던 옛날에 진달래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달래 한 송이를 맛보시면서
앞산 진달래를 꺾어 와 부엌 벽 틈마다 꽂아두면,
컴컴하던 부엌이 환했다고 하신다.
진달래 맛이 옛맛 그대로라고 하신다.
얼핏 어머니의 눈빛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계셨다.
처녀 적 땋아 내린 긴 머리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빨간 풍선처럼 이 산 저 산을 마구 떠다니시는 듯했다.
(어머니, 너무 멀리 가지 마셔요.)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산에 피는 꽃이나 사람꽃이나 사람 홀리긴
매한가지라시며,
춘천을 오갈 때는 기차를 타라고 하신다.
일주일에 내가 이틀씩 다니는 경춘가도의
꽃길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이 제겐 詩로 들리네요
하니깐, 진달래 숲길에서 어머닌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설태수·시인, 1954-)
진달래 능선에서
진달래 한 송이 지게에 달고
꽃 같은 마음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던
아버지 그 말씀......
아버지 생전에
지게발통 작대기 장단에
한을 노래 삼아 콧노래 부르시더니
저승 가시는 길에
가난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배움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허리 굽은 능선에 빨갛게
꽃으로 서 계시는 당신
오늘도
진달래 불타는 산 허리춤에
꽃가슴 활짝 열고 계시군요
생시처럼
아버지!
당신 계시는 음택(陰宅)
진달래 타는 불꽃에
가슴이 아려
꽃잎에 이슬이 내립니다
(이계윤·시인)
진달래와 아이들
지금은 없어진 이 땅의 보릿고개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았다는.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위로 연명했죠.
허기진 아이들은 산에 들에 만발한
진달래 따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데요.
어제 숲 속의 샘터로 가는데,
두 아이가 진달래 꽃가지를
흙을 파고 정성껏 심는 것을 보았어요.
물론 그들이 꺾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서 버린 걸 말예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 진달래는 내 가슴속에도 심어졌다는 것을.
(박희진·시인,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