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시인
시 정호순
시인이 뭐 특별하다고 으스대는가
시가 뭐라고 지성인의 쌀이니
지식인의 도락이니 우쭐거리며 곤댓짓 하시는가
바보상자 먹방과 놀자 프로그램에 시선을 빼앗기고
감동은 눈물 찔끔 흐르게 하는
삼류 저녁 일일드라마보다 못하고
삼각관계 기억 상실증 재벌 자식 출생의 비밀을 유발하는
불륜 주말 연속극보다 재미도 흥미도
궁금증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어느 시인은 시집을 주면
라면 냄비 받침대로 쓰인다 조소하였고
어느 평론가는 축구, 탁구, 배드민턴 같은 취미
기호식품 오락이나 다름 아니라 했는데
읽히지도 않는 시집을 먹고 싶은 것 참고
수전노처럼 아끼고 모아, 모아
어렵게 시집을 낸다 한들
잔칫날 밥 선심 쓰듯 여기저기 무료로 노나주고
없는 시간 쪼개어 쓰고 보내 준
동병상련 고마운 시벗들에게
유유상종 품앗이하듯 답례품으로 쓰이고
혹시나 읽어줄까 꽤나 알려진 시인, 평론가에게
여기저기 사방팔방 딸 시집보내듯
정성스레 포장해 보낸들
누런 겉옷 벗지도 못하고 벽 한쪽 책 탑을 쌓다가
어느 날 먼지 쓴 채로 길거리로 쫓겨나는 것을
시는 산문보다 그나마 생명이 길다고
유통기한에 기대 보지만
데릴사위 촌계관청처럼
오픈 서점 구석 자리 앉지도 못해
인터넷 가상 공간에 뻘쭘히 서 있다가
잉크가 마르기도 전 시샘 바람에
벚꽃 떨어지듯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무명 시집의 파상공격에 패잔병처럼 흩어진다
유명 시인 상 받는 자리 뒷줄에 둘러리로
자조적 웃음 물개박수 쏟아내며
언젠가는,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는 희망에
어쩔 수 없이 써놓은 시를 묶으려고
애면글면 또 들여다보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멍청이
―계간『詩하늘 110』(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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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 무명 시인
이 시는 시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무명 시인인 자아의 현실을 자조적인 어조로 뱉어냅니다. 시의 가치와 문학적 자부심 가지고 시를 쓰지만 수많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무명 시인의 똥 같은 자부심은 여지없이 뭉개지고 맙니다. 시의 현실을 냉소하고 비웃으면서도 끝내 시를 버리지 못하고 읽히지도 않는 시집을 묶으려 애쓰는 무명 시인의 모습이 가련합니다.
시인이 뭐 특별한가요. 시인 3만명도 넘는다는 시인의 풍년 시대에 연속극 드라마 같은 인기 대중문화에 밀려 정작 시는 타작한 알곡도 버리는 흉년을 맞고 있습니다. 시집을 사서 읽는 시대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품앗이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현실에서 시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도 싶었습니다.
좌절하고 분노하면서도 시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못해 쓰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비에 젖은 중얼거림처럼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다시 원고를 들여다봅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고 멍청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어쩌면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시인을 끝내 시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련한 무명 시인,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시를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을 이 시에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_정호순
첫댓글 무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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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무명 시인 한 사람
집을 내려고 25
시간
애면글면
원고를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쓰게 한 시인들과 평론가들, 창작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이름을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이재무 시인의 「삼류들」을 비롯해 정겸 시인의 「삼류가 본 삼류들 ― 이재무 시인의 「삼류들」을 읽고」, 복기완 시인의 「삼류를 폄하한 어느 시인에게」, 안주철 시인의 「삼류 인생」, 이화은 시인의 「들러리 시인에게」 등을 읽으며 얻은 생각의 실마리로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