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19)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3/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yunmunmjoo/ 이승하시인 제목 시 어떻게 쓸 것인가?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3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한 조은길의 시 5편을 읽었습니다.
그중 짧은 〈외길〉이란 시가 퍽 흥미롭습니다.
드넓은 모래펄에
몸뚱이가 집이고 옷이고 언어인
바지락조개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배가 부른 한가한 시간이면
망태를 메고 호미를 든 사람들이
몰려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아이는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다
교회 종이 울리는데 개가 짖는다
교회 종은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다
―〈개 짖는 마을〉 전문
〈개 짖는 마을〉은 글쎄요, 말장난의 차원이 아닙니까?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시적 인식의 확산을 꾀하고 있지만
내적 필연성이나 시적 진정성을 무시한 채 전개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를 봅니다.
안개는 고양이걸음으로 불쑥 나타나서 순식간에 둑을 뭉개주었다. 늘 둑 너머가 그리웠던 호수는 그때마다 벗은 들판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입니다. 안개도 호수도 다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안개가 둑을 뭉갤 리도 없고, 호수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할 리도 없으므로 퍽 참신한 상상력이라 여겨집니다.
시의 중심은 그 다음 문장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얼굴 붉은 태양에게 목덜미를 질질 끌려 되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호수의 가출 아무것도 모르는 물새들은 팅팅 불은 호수의 젖가슴에 주둥이를 박고 날개가 자란다
사실 이 부분에 별다른 내용이 담겨 있거나 특별한 암시를 해놓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에둘러서 말한 것은 아닐까요?
바로 이어지는 “지난밤 안개에 여자가 빠져죽었다”에 이르러서 저는 기형도의 〈안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표절의 혐의는 전혀 없습니다. 분위기가 얼추 비슷한 것이지요.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벗은 신발 속에 긴 유서처럼 온몸에 안개의 지문이 그어져 있던 여자 날이 흐리자 호숫가 둑 쪽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물새들이 투덜투덜 호수를 따라 자리를 옮긴다 저 새들에게 호수는 벗어나고 싶은 감옥인지도 모른다 날개는 수만 리 하늘 길을 회전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형량 같은 것 안개 속에서 안개에게 길을 묻는다 어떻게 저 둑을 넘을까
안개는 길을 찾는 데 방해가 될 뿐인데 안개에게 길을 묻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컬한 상황입니다.
도대체 이 시에서 안개란 무엇일까요? 그냥 자연현상으로서의 안개일까요,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안개일까요?
온몸에 안개의 지문이 그어져 있던 여자의 등장도 그렇고,
안개 속에서 안개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표현들이 마치 뿌연 안개 같습니다.
이 시에서 선명히 이해되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관념적인 시가 아님에도 구체적인 실상이 그려져 있지 않아 시인과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애매함(ambiguity)이 현대시의 한 속성이기는 하지만 이유 없는 애매함은 시를 영 답답한 대상으로 만듭니다.
특히 이 시는 시인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그리고자, 혹은 전달하고자 이 시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숫가의 안개가 여자의 자살을 유도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이 시를 쓴 것은 아닐 테지요.
좋은 평 못 해드려 미안합니다.
< ‘이승하 교수의 시쓰기 수업, 시(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승하, 도서출판 kim, 2017)’에서 옮겨 적음. (2022. 4.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19)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② 우리 시대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4-3/ 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이승하|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