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나무 상처의 꽃무늬
정호순
듣지도 않는 노래 이제 그만 부를래요
차창에 봄비 내리듯
흐린 기억은 지울래요
넘어져 생긴 상처는
생의 꽃무늬이듯
가끔은 아주 아플 때가 있을 거예요
지문은 해독 못 해도
손가락은 멀쩡해요
궁핍하다 곤궁하다
궁색 떨 건 없어요
당신에게 빌린 언어 어차피 다 못 갚아요
가슴에 콕 박힌 화살촉
아린 사랑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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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 화살나무 상처의 꽃무늬
이 시는 사랑과 기억, 상처와 결핍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내면을 노래한다. 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과 그 아픔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담았다. 듣지도 않는 노래’는 응답 없는 사랑의 고백이자, 읽히지도 않는 시를 쓰는 나의 창작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노래하고 시를 쓰지만, 세상은 귀 기울여 주거나 읽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차창에 내리는 봄비처럼 흐릿해진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잊겠다는 다짐 속에서도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 오래 붙들고 싶은 구절은 ‘넘어져 생긴 상처는 / 생의 꽃무늬이듯’이다. 상처는 살아가다 넘어졌다는 흔적이자,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증거다. 고통은 때로 지워야 할 흉터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생을 이루는 고유한 무늬가 된다. 상처가 꽃무늬라는 것은 아픔 자체가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여전히 아프지만, 그 아픔마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지문은 해독 못 해도 / 손가락은 멀쩡해요’라는 구절에는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존재의 존엄까지 잃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궁핍하고 곤궁한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부족함은 삶의 형편일 뿐, 한 사람의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사랑은 갚을 수 없는 빚이 되고, 가슴에 박힌 화살촉이 된다. ‘당신에게 빌린 언어’는 타인에게서 건네받은 말과 감정, 그로 인해 비로소 표현할 수 있었던 마음의 빚을 떠올리게 한다. 빌린 언어를 끝내 다 갚지 못하듯, 한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도 마음대로 돌려놓을 수 없다. 가슴에 박힌 화살촉은 아프지만, 그 아픔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랑은 떠난 뒤에도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때로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문다.
상처를 지운다고 지나온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가 남긴 무늬를 외면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아픔이 되살아나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는 것. 상처는 삶을 망가뜨린 흔적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언하는 무늬이기도 하다. 읽히지 않는 시를 쓰고, 응답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끝내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상처마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지워지지 않는 사랑과 창작의 흔적을 돌아보며, 아픔까지도 자신의 생을 이루는 무늬로 받아들이겠다는 내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_정호순
첫댓글 화살나무 상처의 꽃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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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대한 회의 때문에 안 쓰려고 했던 기억...
회의와 다짐이 함께 사는 날들입니다.
@김영철 한참 시가 안 올 때는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면
포기했을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