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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 주제 :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다음은 명광미디어 유튜브 설교에 올려진 나의 설교 중,
“지성소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있는 돌비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 설교 내용에 한 분이 이의를 제기하며
반론을 하였고 이에 대해 제가 반론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다시 반론하였고 또 다시 제가 재반론한 것입니다.
읽어보시면 흥미도 있고 유익도 되고 은혜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성경과 같은 예언의 신을 읽고 믿어도
이렇게 상반된 두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누가 옳은지는 읽으시면서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대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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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 Kang]
목사님 수고가 많으신데요, 말씀중 17분:47초에서
“법궤안에는 십계명 밖에는 없다” 고 단언하셨는데
다시 살펴보시고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박진하의 답변]
위의 댓글을 남겨 주신 Rachel Kang님 안녕하세요?
박진하 목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심으로 좋은 지적을 해 주심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제가 아닌 님이 조금 더 숙고하시며
상고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님의 생각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히 9:4)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언약궤안에는 '십계 돌비' 외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금항아리가 있다고 하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중에 언약궤 안에는 '십계 돌비'만 있다고 한 것을
지적하신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을 다시 보시면,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대하5:10)고 확언 되어 있습니다.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라는 말씀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물론 화잇 선지자도 이 문제를 언급할 때, 히브리서 9장의 기록처럼,
만나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법궤 "안에"라는 표현을 했지만,
정확히 말씀 드리면 "법궤" "앞에" 혹은 "곁에" 두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민 17:7)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민17:10)고 하심으로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
혹은 "증거궤 앞으로 가저다가 거기 간직하라"고 한 것이지 "법궤 안"은 아닌 것입니다.
또한 만나 항아리도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출 16:33)고 하신 말씀에서처럼,
"여호와 앞에 두어" 즉 법궤 앞에 두어 간직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러서에서 "법궤 안"이라고 한 것은 그것들이 "법궤와 함께" 지성소에 놓여진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인 것입니다.
법궤 안에는 오직 하나님께서 친필로 기록하신 십계명 돌비만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4절에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라는
말씀에서 “그 안”이라는 원어 헬라어 “엔”(έν)은 “에” “가운데” “중에” “안에”등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영어로 보면, “함께”(with)라고 번역된 것이 마16:28과 요일5:6 등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쓴 내용은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돌비와 함께 언약궤가 있는 “거기에 있었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문장에 따라 “안”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에”로고 해석할 수 있는데
구약에 내용과 일치하려면 “안”이 아닌 “에”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지금 이 땅의 지상 성막을 "낱낱이"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와 승청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에서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형과 그림자인 지상 성막을 잠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말씀을 보시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 9:2-5)
첫 장막 곧 성소를 언급하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하 말하고 있는데,
등대와 상(진설병)만 언급하고 분향단을 빼먹고 성소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있는 것은 언약궤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함께 지상 성막 지성소에는 없는 "금향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장의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히 9:4)라는 기록을 가지고 언약궤 안에 언약의 비석들과 함께
만나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함께 들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히브리서 9장을 기록한 저자의 목적과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중점은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예수께서
성도들의 기도가 들은 향로를 드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지 지상 성소를 낱낱이 말하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상식적으로 언약궤의 크기를 보면 십계 돌비 외에 금항아리와
싹난 지팡이가 다 들어가기에는 너무도 작습니다.
언약궤의 크기가 가로 “이 규빗 반”(약 113cm) 세로와 높이가
“일 규빗 반”(약 68cm)으로 세가지가 모두 들어갈 수 없는 크기입니다.
열두 지파의 지팡이나 아론의 지팡이는 적어도 사람의 키만큼 큰 것이 보통인데
그 지팡이를 언약궤 안에 두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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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 Kang]
먼저 저의 댓글에 답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을 읽고 두서너가지 질문 겸 저의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답글을 올립니다.
목사님께서는
“물론 화잇선지자도 이 문제를 언급 할 때 히브리서
9장의 기록처럼 만나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법궤 “안에”라는 표현을 했지만 정확히 말씀드리면
“법궤” “앞에”혹은 곁에 두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저의 질문은 목사님께서 히브리서 9장의 기록과 (법궤 안)
화잇선지자의 말씀이(법궤 안)일치한다는,
즉 법궤안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이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정확히 말씀드리면”이라는 다소 성경과 동떨어진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 어디에 근거한 “정확한 말씀”인지
저에게는 너무나 모호하게 들립니다.
앞뒤가 안맞는다는 뜻이지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라는 말씀속에 목사님께서는
두가지를 말씀하신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출애굽기 16장 33절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워
너희 대대로 간수 하라고 하신 말씀에서처럼 “여호와 앞에 두어”
즉 법궤앞에 두어 간직한 것이라고 확실이 말씀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출애굽기 16장 33절의 “여호와 앞”이 “법궤 앞”일까요?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여호와 앞”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출애굽기 16장 3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이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언 앞”에 (Before the Testimony)두어 간수하게 하니라”
그러므로 “여호와 앞”은 “증언앞”이지 “법궤 앞”이나 “밖”이
아니지요 (출애굽기 16:33과 16:34 절을 엮어야지요)
더 자세한 설명이 여기에 또 있습니다 출애굽기 25:16 절에
“너는 내가 네게 줄 증언(the testimony)을 그 궤 속에 넣을지니라”
여기에 나오는 증언은 물론 십계명이어야 되고 분명 만나 항아리도
“여호와 앞” 그리고 “증언 앞”인 법궤 안 십계명과 함께 두어
간수했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둘째는 히브리서 9장4절의 “그 안에” 라는 원어 헬라어를
언급하시면서 결론적으로 “구약의 내용(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비만 있었다는)과 일치 하려면 “안”이 아닌 “에”로
해석하는것이 맞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미 위에 언급한대로
구약의 내용도 “여호와 앞”은 “증언 앞”이지 “법궤 앞”이 아니지요.
당대 최고의 모세오경에 가장 정통한 성경학자였던 사도바울이
더더구나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대제사장론을 히브리서에
갈파 하면서 성소의 구조, 기물, 그리고 어디에 무엇이 자리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십계명과 함께 그 “안”에 무었이 있었는지를
정녕 몰랐을거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께서는 이미 답글에서 “물론 화잇 선지자도 이 문제를
언급 할 때 히브리서 9장의 기록처럼 만나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법궤 안에”라는 표현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847년 화잇선지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법궤 안”(In the ark)에는 금으로 된 만나 단지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책과 같이 접어진 두 돌비 가 들어 있었다” 초기문집 32p
백번 양보해서 헬라어의 en을 목사님의 해석을 빌려 “에”
“가운데” “중에” “안에” 등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헬라어가 아닌 화잇선지자의 영어 “In the ark”의 “in” 도
“안”이라는 해석외에 다른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할까요?
그분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로만 10만 페이지의 글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지성소 안의 법궤를 보게 되었고
그 “안”에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
그리고 두 돌비가 들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인간의 이론과 추측은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정말 저를 놀라게 한건 목사님의 마지막 문장에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통인데””상식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우리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렇게 옹호하고 마지막 남은교회의 특징으로 가지고있는
예언의 신 초기문집에 계시로 본 선지자의 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그 문장들을 읽으면서 허탈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식적으로 언약궤”의 크기를 보면 쉽게 돌비 외에
금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가 다 들어 가기에는 너무도 작습니다”
어디에서 온 상식인가요? 성경 어디에서 나온 상식인데요?
“지팡이의 크기가 보통 사람의 키만큼 큰것이 보통인데”
언약궤 안에 들어갈 수 없는것이 상식적이라고 하면서 답글을 마쳤습니다.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미 마침표가 찍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좀 부연을 해야 될것 같습니다.
이것이 저의 댓글의 동기였으니까요,
위의 글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어도 괜찮고요
저는 목사님께서 “성소 정결 개혁”이라는 매우 색다른 주제로
말씀을 시작 하실때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마지막 남은 백성들에게 참되고
곧은 기별을 주실까 하는 매우 큰 기대와 희망으로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두번째 날 설교에서 지성소 법궤안에
두 돌비외에 아무것도 없더라는 솔로몬 성전 예식만을 강조하고
지금 우리에게 절체절명으로 필요한 기별이 빠지는 것을 듣고
그 심정으로 그 댓글을 달았습니다.
어느분의 댓글처럼 “어디건방지게 이런식으로 글을쓰나” 라는
매우 불손한 동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을 위하여
준비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해 주시도록
남겨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이 일을 하도록 남겨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남겨놓은 이일을 하는자들이 남은자들이 아닐까요?-
괄호안은 제 개인의 생각임)
그것은 개인이 할 일이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것을 할 수 없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하자” 고후 7:1
폭식은 이 시대의 편만한 죄이다.
색욕은 남녀들을 노예로 삼으며 그들의 지력을 흐리게 하고
그들의 도덕적 민감도를 마비시켜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하고
고상한 진리들이 이해 되지 못하게 한다.
저열한 성질이 남녀들을 지배하여 왔다” 교회증언 1권 502p
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에서 당신의 백성을 정화 시키는
주님의 방법이 바로 건겅개혁이라고
Letter 48 1902 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시대 마지막 백성들에게 남겨놓으신
건강개혁의 올바른 기별을 전하려면 반드시 성소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고 특별히 “지성소 법궤 안”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댓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두 문장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토록
그 “법궤 안”에 관하여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 개혁에 관한
가장 큰 축복의 빛(The great blessing of light)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서 요구하시는 요구들을 순종 할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소유인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없이 설 수 있게
하시는 것을 보았다” 교회증언 1권 505
“먹고 마시는 우리의 습관은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당신의 강력한 진리의 검으로 세상에서 분리시킨
그 무리 가운데 속해 있는지 보여 준다” 6T 372
아무쪼록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양육하시는 목사님께 다니엘에게
주셨던 특별한 지혜와 깨달음이 충만한 목회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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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다시 답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께서 어디에, 무엇에 근거한 '정확한 말씀'이냐고 물으셔서
다시 한번 '명확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 해 드립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대하 5: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 말씀,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에 무슨 전치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가요?
해석이 필요한 문장인가요?
아니면 이 성경 말씀 외에 그 무슨 사람의 말을 넣고 싶으신가요?
더 말씀 드리는 것은 님과 괜한 공론이 될까하여 이만 그치겠습니다.
님께서 그렇게 믿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성전 정결 개혁'에 대한 말씀은 이제 겨우 "서론" 중,
두번째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아직 서론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전 정결 개혁 시리즈' 본론 주제 중 한가지가 님이 언급하신
'거룩한 섭생' 즉 먹고 마시는 문제로
건강 개혁에 대한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 드리면, 마지막 때 남은 자손들이 건강 개혁을
해야 하는 문제가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가 법궤 안에든,
법궤 앞에든 전혀 상관없이 중요한 문제임은 확실합니다.
"안"에 있으면 매우 중요하고 "앞"에 있으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성소 그것도 하나님의 십계가 들어 있는
언약궤 안과 앞은 모두 다 중요한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들로 늦은비를 받을 자들은,
거룩한 안식일 개혁, 품성 개혁, 삶의 방식 개혁,
음란을 피함으로 몸된 성전 개혁 등 다향한 주제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 모든 주제들을 대충 마치려면
거의 2021년 1분기가 다 소요될 듯 싶습니다.
너무 앞서가지 마시고 인내로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늦은비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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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한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지요.
Michael Kang
님께서 화잇 선지자가 쓴 초기문집의 글을 근거로
법궤 안에는 십계 돌비 외에 만나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고 주장하셨는바, 초기문집에서 화잇 여사의 기록은
화잇이 계시 가운데 하늘 성소의 모습을 본 것임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그 내용을 모두 이곳에 올려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한 천사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재빨리
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도성 안에 성전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리로 들어갔다.
한 문을 통과하니 첫번째 휘장이 있었고
그 휘장이 걷어 올려지자 나는 성소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분향단과 일곱 금촛대와 진설병이 놓여 있는 떡상이 있었다.
성소의 영광을 본 후에 예수께서 두번째 휘장을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지성소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법궤를 보았는데
그 윗부분과 가장자리는 순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 법궤 양쪽에는 사랑스럽게 보이는
그룹이 날개를 위로 펼치고 서 있었다.
그 천사들 사이에는 금향로가 있었고 천사들이 서 있는 법궤 위는
지극히 밝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곳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보좌처럼 보였다.
성도들의 기도가 예수님께 올라왔을 때 향로에서 향연이 피어 올랐다.
예수께서는 법궤곁에 서셔서 그들의 기도를 향연과 같이
그의 아버지께로 올려 보내고 계셨다.
법궤 안에는 금으로 된 만나 단지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책과 같이 접어진 두 돌비가 들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돌비를 펴셨고 나는 그 위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을 보았다.
한쪽 돌비에 있는 네 계명이,
다른 쪽 돌비에는 여섯 계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첫째번 돌비에 있는 네 개의 계명이
다른 쪽의 여섯 계명보다 유난히 밝게 빛났다.
그리고 네 계명 중에서도 안식일 계명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기념하기
위하여 구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거룩한 계명은 찬란하게 빛났으며 영광의 후광이
그 주위에 가득해 있었다.”(초기, 32-33)
만약 Michael Kang님의 주장처럼,
초기문집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성경의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대하 5:10)는 말씀을
뒤집을 말씀으로 주장하시려면,
화잇이 본 그 하늘 지성소에서의 십계 돌비 언급에서처럼
첫째 돌비가 둘째 돌비(사람에 대한 6계명)보다 더 밝게 빛났고
거기에 더하여 첫돌비 하나님께 대한 네 계명 중 넷째 계명
곧 안식일 계명이 가장 밝게 빛났다고 했기 때문에
지상 성소의 법궤 안의 돌비도 그렇다고 하셔야 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놓여지게 됩니다.
정말 지상 성소 언약궤 안의 돌비의 계명 중 넷째 계명이
가장 찬란히 빛을 냈을까요?
화잇 여사가 초기에 본 계시 중 하늘 도성에 이끌려가서 보게 된
하늘 성소에서의 장면들을 문자 그래도 적용하여
성경의 명확한 기록을 뒤집으려고 한다면
재림교회의 성경 해석은 그야말로 중구난방 산으로
가게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화잇 선지자의 다른 기록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지팡이들을 성막 안 “증거궤 앞에” 두었다.
어느 지팡이든 간에 꽃이 피는 것이
여호와께서 그 지파를 사제직에 택하신 증거가 될 것이다.
이튿날 “레위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민 17장 참조).
이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준 후에 후대를 위한 증거로서
성막 안에 놓아 두었다. ”(부조, 403)
아론의 지팡이는 애시당초부터 "증거궤 앞에" 둔 것이었고,
싹이 난 후에도 "성막 안" 곧 앞서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거기에" (법궤가 있는 지성소 거기에) 둔 것입니다.
여기 어느 책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로 올려 드립니다.
이 책의 내용처럼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성경적으로 명확해 보입니다.
“3. 지상 성소는 두 성소의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성소가 하늘 성소의 모형인
“신령한 봉사의 절차”를 좇아서 있었다(9:1).
그리고 그 예표는 전체로서 성박의 두 구분 혹은 부분이 있었다.
그 첫 부분은 촛대와 떡상과 진설병이 있는
성소라고 부르는 거룩한 곳이 있었다(9:2).
그 다음에 건너편에 지성소라고 부르는 성밖이 있었다(9:3).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곳이었다.
이 침범할 수 없는 부분은
위엄 있는 하나님의 율법, 언약의 비석들이 있는 언약궤가 있었다(9:4).
또한 금향단과 만나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다.
그리고 특히 공의와 자비, 율법과 은혜가 섞인
그 궤를 덮은 시은 죄가 있었다.
그 준비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였다.”(책 제목 : 운명)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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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가한 글 *
성경은 궤 속에 증거판 외에 다른 것을 넣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궤속에는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 돌비만 있음을 확인해 줍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출 25:21)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출 40:20)
반면에 성경은 명확하게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언약궤 속이 아닌 ‘언약궤 앞’에 두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민 17:10)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출 16:33)
엘렌 지 화잇 선지자도 법궤 안에는 증거판 돌비만 두었음을 강조합니다.
“시내산에서 반포된 십계명은 두 돌비에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기록되어 법궤안에 거룩하게 보관되었다.”(부조, 364)
“지성소에는 값진 목재로 제조하고 그 안팎을 금으로 싼 법궤가있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비가들어 있었다.”(쟁투, 412)
“지금은 법궤안에 있으나 그 큰 날에 내놓여질 돌비들위에
하나님께서 손으로 쓰신 율법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이 진리들을 나의 심령에 아로새겨 놓으셨다. ”(문선, 357)
“모세는 지상의 법궤 안에 두 돌비를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돌비를 증거판이라고도 하며 법궤는 증거궤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십계명 안에 하나님의 증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살아, 154)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 그 자신을 대표하는 율법
즉, 십계명을 넣어 두는 거룩한 궤이었다.
이 법궤는이스라엘의 영광이요 능력으로 생각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표시가 밤낮으로
그 법궤위에 머물러 있었다”(살아, 183)
“그 거룩한 법궤속에는 아버지의 율법이 있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사 번개와 뇌성 가운데서
친히 말씀하시고 친히 손가락으로 석판에 기록하신 그 율법이다.
그 계명 중에 하나라도 폐지된 것이 없고
일점일획이라도 변개된 것이 없다”(살아, 379)
화잇 선지자가 유일하게 법궤안에 십계 돌비 외에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는 것처럼 쓴 것은
초기문집의 글인데 초기문집의 글은 지상 성막에서의
지성소와 언약궤와 성물들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하늘 도성에서 계시 가운데 본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만약 화잇 선지자의 유일한 초기문집의 글을 근거로
지상성소에서도 법궤 안에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화잇이 그와 함께 언급한 것처럼,
지상 성막 지성소의 법궤 안에서도 안식일 계명이 다른 계명에
비해 찬란히 빛났다고 주장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서기 96년경에 계시 가운데 본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촛대 사이를 걸어 다니셨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지상 성소의 촛대도 사람이 걸어 다닐만큼
하나씩 분리된 거대한 촛대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화잇 선지자가 “나는 한 천사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재빨리 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도성 안에 성전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리로 들어갔다.
한 문을 통과하니 첫번째 휘장이 있었고 그 휘장이 걷어 올려지자
나는 성소로 들어갔다. ”(초기, 32)라고 시작한 그 계시 내용을
지상 성막과 동일하게 설명하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입니다.
엘렌 지 화잇 선지자는 초기문집에서 본 하늘 도성 안에 있는
법궤와 성물들 외에 예언의 신 그 어디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위에 인용한 것처럼, 법궤 안에는
유일하게 십계 돌비 증거판만 있었음을 기록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아울러 히브리서 9장의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히 9:4)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언약궤안에는 '십계 돌비' 외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금항아리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같은 히브리서 9장의 같은 문장에 나타난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히 9:3-4)라는 말씀에서처럼,
지상 성막 지성소에서도 “금향로”가 있었다고 주장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화잇 선지자도 하늘 도성에 있는 하늘 지성소에서의 모습을
계시 가운데 보고 기록했었으며, 히브리서 기자 역시
지상 성막이 아닌 하늘 지성소와 대제사장 예수님에
초점을 두고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들을 위해 나타나시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기도의 향기를 올려 보내는 우리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기도향이 담긴 금향로를 흔드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 사역을 강조하고자
쓴 글임을 감안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