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016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은 김금희의 단편 소설집.
책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손목아래까지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두 팔 높이 치켜들어 얼굴을 가린 여자. 이 여자는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 양희일 수도 있고,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조중균씨의 세계를 이해하는 화자 혜란일 수도, <세실리아>의 영혼이 자유로운 세실리아일 수도, <고기>에 나오는 그녀, 몰락해가는 중산층 여자일 수도 <보통의 시절>에 나오는 심상한 하루를 형제들과 같이 보내며 헛헛하게 웃어넘기는 나 일수도 있다.
우리 일상의 찌질하고, 소심하며, 멀쩡한데도 제 목소리를 힘주어 말하지 못하는 소시민적인 근성에 대한 경계 혹은 고발을 이 작가, 김금희는 낱낱이 파헤치며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인물들을 보면서 순간순간 내 얼굴이 핫핫하게 타오르기도 하고,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들 때문일 것이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주인공 필용이 인사이동의 위기의 순간을 버티기 위해 회사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종로의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십대 추억의 장소에서 필용은 맞은편 건물에 걸린 세로로 길게 씌어진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부조리극 현수막을 보고 과 후배였고 어느날 불쑥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양희를 떠올린다.
'양희는 그날그날 주머니에 있는 돈을 필용 손에 쥐여주면서 가능한 걸로요, 하고는 이층으로 사라졌다. 양희의 목소리는 허스키한 저음이라서 하는 말마다 공허가 은은히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는 아주 듣기 힘든 것이었다. 필용은 처음 그렇게 자기 손에 쥐어진 천원, 이천원을 생경하게, 알 수 없는 감정의 흔들림까지 느끼며 바라보곤 했다. 그때까지 필용이 만났던 여자애들 중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도 뭔가를 숨기려 들지도 않는 사람은 없었다. 양희는 어느 모로 보나 필용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지만 양희의 손이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지폐를 꺼내 필용의 손으로 옮겨오던 그 순간이 필용에게 의미심장했던 것은 분명했다. 웬만해선 남에게 자판기 커피도 사주지 않는 필용이 자기 돈을 보태 세트 메뉴 두개를 가져가곤 했으니까. 그런다고 양희가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았으니 참으로 대가 없는 선의였다.'
필용은 영업팀에서 시설관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사람들을 상대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시설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되도록 회사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조차 꺼린다. 양희가 썼을 연극을 보기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필용은 그곳에서 양희를 만날 수 있을까? 양희를 만나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양희야, 너 훌륭한 작가가 됐구나, 꿈을 이뤘구나, 사랑했니 등등 오랜 시간 먼지가 덮이고 계절이 바뀌도록 하지 못했던 말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이런 여운의 글이 단편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백문이 불여일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어느 유명한 평론가의 말처럼 김금희의 행보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는 그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첫댓글 저도 김금희 소설 참말로 좋았어요.
저도 이책 찜했어요^^
아~ 아직 찜도 안 했는데.... 저도 찜하고 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