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감스님이 서울에서 승가고시가 있어서 월요일은 승가대학원 휴강이었다.
단풍이 최절정을 향하여 점점 더 휘황하게 불타오르는 요즈음이야말로 휴강은 최고의 명강이다.
설악산 단풍을 보고 싶었지만 훗날을 기약하고 지리산으로 떠났다.(10월 25,26일)
아차,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단풍불이 사그라지면서 산빛은 점점 초록으로 짙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단풍을 보고는 다른 지역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니 인문학의 정수, 관계의 미학이라고 하는 ‘역지사지’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88올림픽 도로에 이어 남원에서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달려서 첫 여행지 구례 화엄사에 내렸다.
단풍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인파는 그닥 붐비지 않았다.
화엄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장엄한 목조건물 각황전과 각황전 앞 석등이다.
큰 산, 큰 절, 큰 전각, 큰 석등이 서로를 조화롭게 고양시킨다.
특히 각황전 앞 석등은 장구 모양의 고복형 석등으로 천 년의 세월에도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다.
장중하면서도 명쾌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자랑스런 석등이다.
삶이 고달플 때, 바라만 보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석등이다.
각황전 안에는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여래와 함께 모셔져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 130m 걸어가면 자그마하면서도 곱게 늙은 절집, 구층암이 있다.
구층암 가는 길은 불일암 가는 길처럼 늘씬한 이대가 양옆에서 아치형 터널을 이룬다.
구층암 요사채 툇마루 앞 기둥 중에서 두 개는 죽은 모과나무 기둥 그대로이다.
그 천연스러움과 탁월한 발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모과나무 기둥은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알 수 없다. 또 특이한 것은 이 요사채는 앞뒤가 없다.
앞뒤쪽으로 문과 마루가 달려있다. 진리의 세계는 위아래, 앞뒤가 없는 무분별의 세계임을 넌지시 말해주는 것 같다.
작은 암자임에도 법당은 천불 부처님을 빼곡히 모시고 있고
법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좌우에는 제법 굵은 모과나무 두 그루가 그림처럼 곱다.
구례 연곡사로 향했다.
유홍준씨가 “'쫄바지를 입은 미녀와 같다. 이 부도는 우리를 뇌쇄시킨다.”라고 했다던 동부도가 불현듯 보고 싶어서 였다.
연곡사에 가까이 갈수록 대형버스와 자동차와 사람들로 미어터질듯 가득하다.
주차요원이 나오더니 오늘은 연곡사 입장이 어려우니 돌아서 나가라고 한다.
하나같이 유명 등산복으로 좌악 빼입은 사람들을 보니 연곡사보다 피아골 단풍을 보러 전국에서 몰려든 단풍객들이다.
다음 주말에는 단풍축제가 있다고 한다. 아쉬움을 접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구례 운조루를 찾았다. 우리나라 3대 길지 중에 하나인 호남의 대표적인 양반집이다.
운조루가 속한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일대는 금환락지, 곧 부귀와 영화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곳이라 하지만 보수나 관리가 소홀해 쓸쓸해보인다. 기우는 석양빛 아래, 집도 꽃나무도 정원도 그곳에서 살아가시는 쇠약한 할머니도 금방 스러질 듯 애잔하다. 원래 운조루는 사랑방 서쪽 대청 2칸을 일렀는데 지금은 집 전체의 택호이다. 운조루라는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것이다.
雲無心以出岫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날기에 지친 새들도 제 둥지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운조루 앞, 19번 국도 가까이에 <전곡재>가 있다.
전곡재는 명품고택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전통한옥문화체험숙박시설로 지정된 곳이다.
별다른 기대없이 들어갔다가 어찌나 알뜰살뜰 곰살맞게 잘 꾸며놓았는지 한참을 뱅뱅이 했다.
집 앞을 구비 도는 작은 개울과 소나무와 여러 빛깔의 소국, 맨드라미, 만수국, 수국, 잣나무, 주목, 대숲, 작은 연못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정원을 어떻게 꾸며야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