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체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기류이며 아스트랄체의 다른 부분을 통해 에테르체 안에서 앞을 향해 흐르는 것을 비출 때 자아 심상이 생겨납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혜, 2023, 198)."
필자는 어제 유튜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다. 이런 프로그램은 유튜브에 굉장히 많기 때문에 가끔 보았는데, 어제 본 내용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유튜브 프로그램은 평소와 다름 없는데, 필자는 왜 다르게 느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평소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는데, 어제는 필자가 어떤 의문을 가지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또 '이 의문은 어디서 나왔을까'하고 생각해 보니, 필자가 유튜브를 보기 전에 슈타이너 책을 보았고, 그 책에서 궁금했거나 가진 의문이었다. 이 또한 무의식에 내재한 자아가 가진 의문이라서, 필자가 현실에서는 파악하지 못했던 의문이다. 그런 의문이 유튜브 출연자로 부터 해소, 이해가 된 것이다. 이런 의문이 '어떻게 생겼고', 또 '어떻게 해소가 되었을까'가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이다. 필자가 책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 의문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질문의 답이 위 제목, 문장이다. 먼저 말하면 자아 심상이다. 자아 심상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만나면서, 교차하면서 만들어진다. 즉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서로' 교차한다는 의미이다. 에테르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것도 시간 속에서 흐른다. 이렇게 흐르는 에테르체에 아스트랄체의 감정, 의도, 동기, 질문, 호기심이 에테르체 안에서 에테르체를 자극, 에테르체가 앞을 향하여 비출 때 자아 심상이 생긴다. 자아 심상이 곧 내가 가진 의문에 대한 답, 지혜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혜를 얻을려면, 나의 자아가 심상을 드러내야 하고, 또 나는 그 심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점, 에테르체가 건강하게 활동해야 한다. 에테르체가 억눌려있거나 위축되어 있으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다. 둘째, 아스트랄체가 강력하게 원해야 한다. 질문을 갖든 호기심을 갖든 아스트랄체가 강력하게 원하면 에테르체가 비추는 상을 볼 것이다. 이것이 자아 심상으로 드러나고, 이것을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아가 비추는 심상이 무의식에 내재해서 의식상태의 인간이 알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통상 무시되지만 간절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면 파악하기도 한다. 또 필자처럼 그런 상황을 만나서 파악하거나, 또 그 심상에 대한 이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란 책이나 현실의 상황도 모두 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만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만나서 파악하는 것도, 자신이 정신세계에 어느 정도 촉수를 드리우고 있어야 가능하다. 조금 비약하면 나의 자아가 이런 상황을 만나게 한다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간절하게 원하면 그런 상황으로 간다는 것,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만나도 지나칠 것이므로 중요한 것은, 다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만은 분명하게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이상이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지 분명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내가 가진 질문이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슈타이너 책을 보면서 인간이 의식을 가질려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마 무의식에서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으로 나의 자아가 이끌었을 것이고, 또 그런 상황을 경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세 번째 질문이다.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과연 필자는 의식, -아스트랄체와 에테르체의 교차-을 느꼈을까. 유튜브 출연자는 노인에 관한 모든 일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창업하여 운영하고 있는 밴처창업자였다. 이 일을 창업하게 된 이유는 창업하기 전에 잠깐 노인들에게 자원봉사를 했는데, 혼자 힘으로는 노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창업하였다고 했다. 출연자는 여러 대기업에 원서를 내서 합격했지만 가지 않았고, 자신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통해서 자아 실현을 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지금은 1000억에 가까운 회사가 되었는데, 충분히 1조 이상의 회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출연자의 생각이다. 출연자는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먼저 말하면 이런 생각이 자아 심상이다. 즉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하여서 만든 자아 심상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유튜브 내용이다. 유튜브 질문자가 회사를 경영할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인데, '그 어려움은 어떻게 해소하느냐'고 물었다. 출연자는 사람을 통해서 해소하지 않고 책을 통해서 해결한다고 하였다. 책은 주말에 보통 1-2 권은 읽는다고 말하는 순간, 출연자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출연자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한, 의식이 형성되는 순간의 느낌이었다. 이렇게 필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출연자가 그동안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출연자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 의식이 생성되었기 떄문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누구라도 정신세계에 입문해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창의적인 생각이란 크게 보아 자아 심상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창업, 나아가서 자아 실현을 한다. 둘째,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발달과정이다. 인간의 발달과정이란 정신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의 발달단계에 정신세계에 누구나 들어가야 한다. 셋째 문제는 인간의 발달단계에 오히려 정신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정신을 배제하기 때문에 이 시기 아이들은 정신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을 배제한 인류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 넷째, 현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훨씬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행히 출연자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창업도 하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출연자가 정신세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그렇게 지금까지 책을 읽을 수가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는 출연자가 정신세계 입구가 아니라 훨씬 더 깊은 곳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신세계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분명 자신하고의 싸움이다. 자신의 이상을 놓치지 않고 그 이상을 쫓아서 꾸준히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첫째, 정신세계에 입문이 가능하도록 자신의 정신기관이 성장- 발달했느냐이다. 만약 입문하지 못했다면 그 길을 먼저 찾아야 한다. 둘째는 찾았다면 옆길로 새지 말고 그 길을 꾸준히 가야 한다. 셋째, 슈타이너에 따르면 죽음이란 정신세계의 길을 육체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때 정신이 육체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생에 다시 이어서 정신세계의 길을 간다고 한다. 한 번 쯤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담으로 얼마전에 겪은 일이다. 라인댄스를 하는데 날씨가 더워서 무릎 위 20센티미터 정도(?)의 짧은 바지를 입었다. 물론 입으면서도 걱정이 되어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냥 입고 갔다. 그런데 라인댄스 교실에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여자 수강생이 상처가 되는 말을 필자에게 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의 시각이라는 것이고, 또 그 말에 상처를 받는 것은, 필자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우리가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 사람에게 필자가 마음을 주었기 떄문에 상처를 받는 것이다. 요컨대 마음을 준 정도가 상처를 받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다시 거두면 그 상처도 사라진다. 그런데 계속 상처가 되는 것은 영혼이 그 마음의 상태에 매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그 마음에서 빠져나와야 하므로, 상처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지 말거나 가지 않는 것이 답이지만, 이런 사실을 파악한다면 영혼으로 하여금 빠져나오게 내 마음을 다스리면 벗어날 수가 있다. 이런 관점이 법륜스님의 말씀, 모든 문제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문제이다라는 말씀이다.
요컨대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 그 사람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람의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므로 다만 내가 선택하면 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 간다. 결국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세계에 입문한다는 것이다. 주인이 곧 정신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교차하여 의식을 생성하는 경험을 아주 아주 많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