仲尼鳳賦
金富軾
仲尼는 乃人倫之傑이요 鳳鳥則羽族之王이라
何其名之稍異나 含厥德以相將이라
愼行藏於用捨之閒하니 如知出處하고
正禮樂於陵遲之後하니 似有文章이라
중니(仲尼: 공자의 字)는 인간의 걸출이요, 鳳은 조류의 왕이라.
이름은 약간 다르지만, 지닌 그 덕은 서로 비슷하다.
봉황이 用捨之閒에 行藏을 삼가니, 그 출처를 아는 듯.
쇠퇴한 뒤에 예악을 바로잡았으니, 봉황의 文彩를 가진 듯하네.
*하(何): 해당하다. 걸다.
*출처(出處): 세상에 쓰일 수 있을 때에는 나가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들어와서 사는 것을 말한다.
夫子는 志在春秋하고 道屈季孟이라
如非仁智之物이면 孰肖中和之性가
夫子께서는 春秋에 뜻을 두었고,
道는 季氏와 孟氏에게 버림받았네.
만약 봉황이 어질고 슬기로운 동물이 아니면,
어떻게 그 中和의 성품을 닮을 것인가?
*춘추(春秋): 공자가 노(魯)나라 사(史)에 의거(依據)하여 지은 경(經). 필법(筆法)이 엄정(嚴正)하여 공자 자신도, “후세에 나를 알아줄 것도 그 《춘추》며, 나를 죄 줄것도 그 《춘추》이다.”고 술회(述懷)했다 한다.
*계맹(季孟): 노(魯)나라를 집권한 두 대부(大夫)인데, 제경공(齊景公)이 공자를 대접하며 말하기를, “계씨와 같이는 못하겠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서 대접하리라.” 하였다. 《논어》 미자(微子). 계씨는 상경(上卿), 맹씨는 하경(下卿)이니, 두 벼슬의 중간으로 대우하겠다는 뜻인데, 공자는 그들에게 용납되지 못하여 본국을 떠났다.
相彼鳳矣컨대 有一時瑞世之稱이니
此良人은 何오 作百世爲師之聖이라
于以其文炳也는 吾道貫之라
揚德毛而出類하고 掀禮翼而聘時라
저 봉을 보건대, 一時 세상을 상서롭게 함으로 칭송되는데.
이 어진 분(仲尼)은 어떤가! 百世의 스승인 성인이 되셨도다.
아 그 文이 찬란함은 도를 하나로 꿰었기 때문이다.
털같이 따뜻한 덕을 發揚하여 同類에 뛰어나고,
예의 날개를 떨치어 세상을 구원했네.
*오도관지(吾道貫之):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노라[吾道一以貫之].”고 공자가 말하였다. 이치로 天下萬事의 이치를 통일한다는 뜻이다.
金相玉振之嘉聲은 八音逸響이요
河目龜文之偉表는 五彩雄姿라
斯乃祖述憲章하며 東西南北이라
蹌蹌乎仁義之藪하고 翽翽乎詩書之域이라
금이 쟁쟁, 옥이 댕그랑하는 아름다운 소리는
八音의 뛰어난 메아리요,
반듯하고 긴 눈에 거북 무늬의 위대한 모습은
五彩를 갖춘 의젓한 자세이다.
이러하니 堯舜을 계승하여 받들고 文武를 본받아,
동서남북으로 천하를 주유하며,
仁義의 숲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詩書의 세계에 활개치며 날았네.
*금상옥진지가성(金相玉振之嘉聲): 맹자가 공자의 성덕(聖德)을 음악에 비하여 찬양한 말이다. 《맹자》에 “음악은 금소리[鍾]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옥소리[磬]로 수합한다[金聲而玉振之也].” 하였다.
*팔음(八音): 여덟 악기(樂器)의 소리. 쇠[金 종(鍾)], 돌[石 경(磬)], 흙[土 훈(塤)], 가죽[革 북], 실[絲 금슬(琴瑟)], 나무[枳 어(敔)], 박[瓠 생(笙)], 대[竹 관(管)] 등이다. 八音이 조화되면 봉이 온다고 한다.
*하목(河目): 공자의 얼굴을 묘사하여, 《가어(家語)》에 “하목융상(河目隆顙)”이라 했는데, 주에, “하목(河目)은 반듯한 눈”이라 했다.
*구문(龜文): 봉(鳳)의 모양이 앞은 기린(麒麟), 뒤는 사슴, 뱀의 머리에 고기 꼬리, 용의 무늬에 거북의 등[龍文龜背] 오색이 있다. 《설문(說文)》
*헌장(憲章): 效法. 《禮記·中庸》:“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宋蘇軾《集英殿春宴敎坊詞·敎坊致語》:“憲章六聖之典謨, 斟酌百王之禮樂.
*창창(蹌蹌): 너울너울 춤추다.
過宋伐樹에 應嫌栖息之危요
在齊聞韶는 若表來儀之德이니
則知非形之似요 惟智所宜로다
송나라를 지날 적 나무를 베었을 때에,
봉이 응당 깃들기에 위태로움을 탄식했을 것이요.
제나라에서 韶를 들었음은
소를 아뢸 때에 (봉황이) 와서 노닐던 덕을 나타냄과 같으니,
이제 알겠다. 형상이 같음이 아니라 오직 지혜가 합당하기 때문.
*과송벌수(過宋伐樹): 공자가 조(曺)를 떠나 송(宋)을 지날 때 제자들과 더불어 큰 나무 아래서 예(禮)를 익혔더니, 송의 사마(司馬)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고자 그 나무를 찍고 뽑았다.
*문소(聞韶_: 韶는 순임금의 음악.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를 듣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르겠다고 하며 말하되, “음악이 이에 이를 줄을 몰랐노라.” 하였다. 《서경》에, “순(舜)이 소(韶)의 음악을 아뢰니, 봉황새가 와서 노닐었다.” 하였다.
*래의지덕(來儀之德): 《서경》에, “소를 아홉 번 이루매 봉황이 와서 노닐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
游於藝而不遊於霧하며 至於邦而不至於歧라
受饒瓦甂은 乃是不貪之食이요
興儒縫掖하니 那云何德之衰오
盖進退誾如하고 屈舒鴧彼라
藝에 놀되 안개엔 놀지 않으며,
제후의 나라에 이르렀으되 歧山엔 이르지 못하였다.
옹기솥에 밥을 받았음은 음식을 탐내지 않았음이요.
봉액 옷으로 유도를 일으켰으니,
왜 덕이 쇠한고”라, 어찌 이를 것인가?
대개 진퇴가 화열하고, 날개를 접고 펴며 휙 날도다.
*游於藝: 공자의 말에, “인(仁)에 의지하고 예에 놀라[依於仁 游於藝].” 하였다. 《논어》
*수요와변(受饒瓦甂): 공자가 진채(陳菜)에서 포위를 당하여 7일 동안을 굶다가 와증(瓦甑)의 밥을 받아 먹었다.
*봉액(縫掖): 유자(儒者)가 입는, 겨드랑만 꿰매어 옆이 넓게 터진 옷.
*하덕지쇠(何德之衰): “초(楚)의 접여(接輿)가 노래하면서 공자 앞을 지나며 말하되, 봉이여, 봉이여, 왜 덕이 쇠한고[鳳兮鳳兮 何德之衰].” 하였다. 《논어》
程公傾盖兮여 諒以不似요
伯鯉趍庭兮여 堪云有子라
樂稱堯舜은 歸好生惡殺之時요
無道桓文은 遠毁卵覆巢之里라
정공이 일산을 기울였음은 진실로 (常人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고,
백이가 뜰 앞에 趨蹌했으니, 과연 자식을 두었다 이를 만하다.
요순 일컫기를 즐겼음은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때로 돌아감이요,
제 환공ㆍ진 문공을 말씀하지 않았음은
알을 깨치고 둥지를 뒤엎는 마음을 멀리함이로다.
*정공경개(程公傾盖): 《가어(家語)》에 “공자가 정자(程子)와 길에서 만나 일산을 기울이고 말씀하였다[孔子遇程子於途 傾蓋而語].” 하였다. * 程子: 춘추시대의 賢人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
*추창(趨蹌): 예도(禮度)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감.
*백리추정(伯鯉趍庭): 공자가 일찍이 혼자 서 있는데, 이(鯉)가 허리를 굽혀 절하고 뜰앞을 지나가니 공자가 불러서, “시(詩)와 예(禮)를 배우라.” 하였다. 《論語.季氏13》 *陳亢 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아 對曰 未也라 嘗獨立에 鯉趨而過庭이러니 曰 學詩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不學詩면 無以言이라하야시늘 鯉退而學詩호라 他日에 又獨立이어시늘 鯉趨而過庭이러니 曰 學禮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不學禮면 無以立이라하야시늘 鯉退而學禮호라 聞斯二者호라 陳亢 退而喜曰 問一得三하니 聞詩聞禮하고 又聞君子之遠其子也라
*무도환문(無道桓文): 제환공ㆍ진문공은 모두 패도(覇道)의 군후(君侯)였으므로, 왕도를 주장하는 공자가 그들을 들어 말하지 않았다. 《맹자》
於戲라 巖巖德義와 皓皓威儀로다
高尼山之岐嶷이나 非丹穴之捿遅라
衰周之七十諸候ㅣ 鴟梟竟笑로되
闕里之三千子弟는 鳥雀相隨로다
아아, 높디높은 그 덕의요 깨끗하고 깨끗한 그 威儀로다.
이산의 우뚝함보다 더욱 높건만, 단혈에 머물러 있지 못했네.
쇠한 주나라의 70 제후들 솔개 올빼미처럼 끝내 봉을 비웃었으되,
闕里의 3천 제자들은 새와 참새들처럼 따랐도다.
*이산(尼山) :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어머니 안씨(顔氏)와 함께 이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으므로 이름을 구(丘)라 하고, 자를 중니(仲尼)라 했다.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 산동성(山東省)곡부현(曲阜縣) 동남쪽에 있다.
*기억(岐嶷): 어릴 때부터 지덕(智德)이 뛰어남.
*단혈(丹穴) : 단사(丹砂)를 내는 산의 구멍. 단혈이 있는 산을 단산(丹山)이라 하며, 그곳에 봉황이 깃들인다.
*궐리(闕里): 공자가 살던 마을.
小儒靑氈이나 早傳鏤管하여
未夢少年攻章勾之彫篆하여
壯齒好典謨而吟諷하니
鑽仰遺風하여 㪍㪍深期於附鳳이로다 <東文選 卷之1>
보잘것없는 선비로 靑氈을 물려받고, 일찍이 루관을 전해 받았으나,
소년 시절엔 문장이 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다가,
나이 들어 경전을 좋아해서 諷詠하니,
유풍을 우러르고 탐구하여
벌떡 일어나 봉에 붙어 따르기를 기약하네.
*청전(靑氈): 여러 대(代)를 전하는 물건, 여러 대째 글로 업을 삼은 데 비유한 것이다. 진(晉)의 왕헌지(王獻之)가 밤에 서재에 누워있는데 도적들이 방안에 들어와 물건들을 거의 다 가져가는지라, 헌지가 천천히 말하되, “푸른 전만은 우리 집의 구물(舊物)이니 두고 가게.” 하였다. 《진서(晉書)》 왕헌지전(王獻之傳).
*루관(鏤管): 雕花的筆管. 南朝梁元帝有《謝東宮賜白牙鏤管筆啓》. 亦借指筆. 晉王羲之《筆經》:“有人以綠沈桼竹管及鏤管見遺, 用之多年.” 唐羅隱《寄酬鄴王羅令公》詩之四:“只見篇章矜鏤管, 不知勳業柱靑冥.”
*未夢少年攻章勾之彫篆: 기소유(紀少瑜)가 일찍이 꿈에 육수(陸倕)에게 푸르게 아로새긴 붓 한 묶음을 받았더니, 그때부터 필력(筆力)을 얻어 문장이 되었다. 《남사(南史)》 권72
*전모(典謀): 《서경》에 요전(堯典)ㆍ대우모(大禹謨) 등의 편이 있다. 여기서는 일반의 경전(經傳)을 말한 것이다.
*찬앙(鑽仰): 성인의 도와 덕을 우러르고 학문 등을 깊이 탐구함.
*부봉(附鳳): 봉과 용(龍)을 성철(聖哲) 또는 영주(英主)에 비유하여, 제자가 성철(聖哲)로 인하여 이름을 전하거나, 신하가 영주(英主)를 좇아 공업을 세움을, “용을 휘어잡아 따르고, 봉에 붙어 따른다[攀龍鱗 附鳳翼].” 한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