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3)
# 남매귀신
엄마가 죽고 새엄마와 함께 살게된
분이와 만득이 남매
아버지가 붓 팔러 나가면
새엄마의 온갖 학대가 이어지는데…...
엄마가 죽고 나서 새엄마가 들어왔다.
일곱살 분이와 아홉살 만득이 남매는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표독스러운 새엄마는 두어달 남짓, 분이와 만득이 남매를
부드럽게 대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회초리를 들기 시작했다.
부엌아궁이의 불씨를 꺼뜨렸다고 부지깽이로 분이의
등줄기를 후려쳐 등에 맺힌 피가 적삼을 적셨다.
만득이가 여동생의 등에 된장을 발라주며
눈물을 줄줄 흘리자 분이는
“오빠 괜찮아 울지마”
라며 오빠를 달랬다.
만득이는 아버지가 없으면 머슴이다.
아버지가 뒤 처마 밑에 가득 쌓아놓은 장작을
계모의 친정아버지가 다 지고 가고, 만득이 보고
“나무 해오라”
명한다.
동네 젊은이들이 나무하러 산에 갈 때 지게를 질질 끌며
따라가면 젊은이들이 먼저 나무 한짐을 해서 만득이
지게를 채워줬다.
앞산 멀리 엄마의 무덤을 보며 만득이는 눈물을 쏟았다.
남매의 아버지는 붓 외장꾼이다.
사냥꾼 집에 가서 여우꼬리·족제비털을,
가야산 자락에서 조릿대를 사다가 집에서 다듬고
아교풀을 끓여 붓을 만든다.
정성들여 만든 붓 봇짐을 둘러메고 이 장 저 장을 다니다가
어떤 때는 한양까지 올라갔다 올 때도 있다.
집에서 붓 만드는 게 열흘이면 붓봇짐을 메고 떠돌아
다니는 건 스무날이다.
붓장수는 집만 나서면 계모 밑에 두고 온 남매 걱정이다.
그러나 새마누라가 심성이 좋아 제 배에서 난 자식처럼
잘 보살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했다.
“분이야 이리 와서 세수해야지, 여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았다.”
분이가 나가면 계모는 팔을 걷어붙이고 손수 분이의
얼굴을 씻겨주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붓장수가 집에 있을 땐 이렇게 분이를 감싸
남편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다.
한번은 만득의 무릎이 까진 것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나무하러 갔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어요.”
그때 계모가 웃으며
“나무는 무슨 나무야, 불쏘시개가 없어
뒤꼍의 낙엽 좀 긁어오라 했더니 장난치다 넘어져놓고.”
붓장수가 집을 나서자마자 계모는 남매에게
회초리 타작을 한다.
“너희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본때를 보여주지.”
밥을 굶기고, 한겨울에 발가벗겨 마당에 꿇어앉히고,
한여름엔 기둥에 묶어둬 모기들이 온몸을 뜯도록 한다.
삼년이 흘러 분이는 열살이 되고 만득이는 열두살이 되었다.
분이는 눈이 초롱초롱해졌고 만득이는 억세졌다.
계모는 여전히 남매를 학대해도 착한 두 남매는 계모를
엄마라 부르며 깎듯이 대했다.
어느 장날,
계모가 장에 갔을 때 두 남매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았다.
만득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한테 모든 걸 털어놓자.”
“오빠 그건 안돼.
새엄마의 매타작이 겁나는 게 아니라 아버지 가슴이 찢어져.”
만득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만 토했다.
그날 저녁 계모는 장에서 돌아와 수저를 놓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계모가 잠결에 추워서 눈을 떴다가
“으악!”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만득귀신이다.”
“나는 분이귀신.”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얼굴이 새하얀 만득이와 분이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계모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계모가 손으로 볼을 꼬집어보려
하니 두 손은 물론 발목도 묶여 있다.
“네 이년! 회초리 맛을 한번 봐라.”
분이귀신이 싸리회초리로 계모의 오동통한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만득귀신은 부지깽이로 등짝을 내리치자 속적삼이 피에 젖었다.
“사사 살려 주세요.”
고함도 못 치고 계모는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다가 기절했다.
남매 귀신은 기절한 계모의 묶은 팔·다리를 풀고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밖으로 나와 뒤꼍 우물에서 입가에 바른
고추장과 얼굴에 바른 밀가루를 씻어냈다.
이튿날 아침,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분이가 인사를 하자 계모는 고개를 숙이고 식은 땀을 흘렸다.
다음 날부터 새벽에 아궁이불씨를 살리는 것은 계모
차지가 돼 분이는 늦잠을 자고, 만득이도
“물 한그릇 떠다주세요”
계모를 시켜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