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눈 속에 잠이 들고
밤새워 바람이 불었다
나는 전등을 켜고
머리맡의 묵은 잡지를 뒤적였다
옛친구들의 얼굴을 보기가
두렵고 부끄러웠다
미닫이에 달빛이 와 어른거리면
이발소집 시계가 두 번을 쳤다
아내가 묻힌 무덤 위에 달이 밝고
멀리서 짐승이 울었다
나는 다시 전등을 끄고
홍은동 그 가파른 골목길을 생각했다
(신경림, '고향에 와서' 전문)
아내의 기일이었을까?
화자는 오랫만에 고향에 와서 아내의 무덤을 찾았던 것 같다.
눈이 내려 아내의 무덤은 흰 눈에 덮히고, 화자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연스레 묵은 잡지를 뒤적여 보지만,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고생을 시키며 살았던 생각을 하니, 고향의 옛친구들 보기도 두렵고 부끄러웠으리라.
화자가 머물고 있는 곳 가까이에 아마도 이발소가 있는 듯히다,
사위가 조용한 시골에서 이웃 이발소집의 시계에서 두시를 알리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아내가 묻힌 무덤 위에도 달빛이 비출 것을 생각하며, 화자는 늦게라도 눈을 붙이고자 자리에 누웠다.
화자가 잠자리에서 생각했던 '홍은동 그 가파른 골목질'은 아마도 아내와 신혼 생활을 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가파른 골목길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오랫동안 호강시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