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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란 단순하게 문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문학사의 성격은 매우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를 따진다면, 문학사는 하나의 역사‧문화 공동체가 시간을 따라서 이룩한 문학 현상의 여러 실적을 총괄해서 종적으로 정리한 형식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문학 현상의 여러 실적’이란 바로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이 중심이 되고, 그러한 작품들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일관된 체제로 서술하는 역사가 바로 문학사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사는 문학과 역사를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과에서는 문학사를 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만 한다. 문학이 하나의 학문 체계로 정립된 근대 이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국문학사’가 서술되어 출간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현재의 상황에서, 많은 학자들이 더 이상 ‘문학사’는 쓰기가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문학사’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시도한 기획의 산물이라고 평가된다. 이 책의 서문은 ‘누가 문학사/쓰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서술되고 있다. 새로운 문학사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쓰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이 책에서는 ‘말하자면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는 것’이고, ‘안 쓰는 것’이 ‘쓰는 것’보다 어떤 윤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 같은 특이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대체로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문학사’를 쓰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욕구가 어느 때부터인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혹자는 그것을 방대한 자료와 연구 실적을 반영하여 출간한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의 영향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전체 5권의 체제로, 모두 4차례에 걸쳐 개정판을 펴낸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그 자체가 완결된 하나의 ‘문학사’로 평가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저작을 뛰어넘는 문학사가 출현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국문학계의 견해이고, 때문에 국문학 연구자들의 문학사에 대한 시도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러므로 이제는 문학사를 써도 좋을 시간’이라고 논하면서, 그것을 위해서 이러한 기획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점검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 14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 기획은 전체 3장으로 나뉘어 기존의 문학사를 점검하고 평가하며, 새로운 문학사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문학사에 대한 전망은 역시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다소 추상적인 제안 수준에 멈추어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기존의 문학사에 대한 꼼꼼한 검토와 함께, 그동안의 문학사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독자들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이 책의 1장은 ‘민족/문학사를 둘러싼 쟁점들’이란 제목으로, 모두 4명의 필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출간된 문학사로부터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에 이르기까지 주요 저작들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족문학’과 ‘한국문학’의 개념에 대한 정립을 시도하고, 새로운 시대의 문학사 쓰기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문학사는 결국 근대의 산물이기에, 문학을 인간 정신의 표현 형식 중 하나로 인식하고 민족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사고하는 것에서 성립한다는 전제에 대해서도 반성적 고찰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장은 ‘복수의 문학사, 그 지향과 양상’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5명의 연구자들의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그동안의 문학사가 주로 ‘남성‧엘리트‧문학 정전‧국어 중심주의’라는 관점에 지배되어 왔기에, 이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발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장에서는 젠더(gender)의 관점에서 문학사를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한문학을 포함한 문학사에서의 여성문학사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른바 하위주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서발턴’의 관점에서의 문학사 서술이나, 분단 이후 공고화된 남북한의 이질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통일 담론과 남북한 문학사의 소통 방안에 대한 고민도 이들의 글 속에 담겨있다.
마지막 3장에서는 ‘문학사 서술의 경과‧과제‧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5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의 문학사에서 고전문학사와 현대문학사가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가를 살피고, 국문학에서 ‘구비문학’의 개념과 위상을 점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20세기 전반 서구와 일본 문학 작품의 번역을 통해서 근대 소설사의 전개 과정을 살피고 있으며, 문학 교육의 관점에서 문학사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제시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의 문학사에 대한 점검과 새로운 문학사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책의 제목을 <문학사를 다시 생각한다>로 정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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