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는 성소수자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퀴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퀴어(queer)’는 원래 ‘이상한, 기묘한’이란 뜻으로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비하하고 모욕할 때 쓰던 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포괄하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레즈비언’인데, 여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이 표현은 여성들의 공동체였던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당시 남성들의 동성애는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여성들의 동성애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겼던 것도 결국 남성중심적 문화가 만들어낸 인식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은 ‘레즈비언 생애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인터뷰를 엮은 것이다. 20대에서 60대까지 모두 10명의 대상자들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가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인터뷰어인 저자 역시 레즈비언이기에, 인터뷰 대상자들이 자신의 삶을 보다 적극적을 토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일종의 ‘구술 생애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니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어는 마지막에 10년 혹은 20년 후에 다시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고, 대상자들이 기꺼이 응하겠다는 답변을 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령에 따라 동성애자들에게 가졌던 사회적 편견들이 분명하게 인식되었던 것 같다. 예컨대 60대의 대상자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적지 않은 방황을 했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그로 인해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서 진솔한 어조로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진술하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성애자 인권’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 비로소 단체를 형성해서 조금씩 활동을 넓혀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사회 일각에서는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개인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를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은 가운데,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편견어린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최근에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를 제정하는데, 그 반대의 명분으로 개신교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앞세우고 있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편견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혹은 굳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과거 레즈비언을 포함한 동성애를 ‘독특한 성적 취향’의 ‘병적인 것’으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개인의 ‘성적 정체성’이 무엇이든 그대로 존중하자는 것이 하나의 추세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 하겠다. 하지만 각자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외형만큼이나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취향이 다르다. ‘성 정체성’ 역시 그러한 취향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그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