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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壇>
(시조)
파도/최길하
‘바다’란 ‘바닥’의
둥그런 마당의 말
글 모르던 도공이
흙으로 파도를 구워
지붕에 바다를 얹고
출렁출렁 듣던 경전.
아침 바다 밀물엔
마당만한 해를 싣고
저녁 바다 낙조엔
펄펄 끓던 불가마
달밤엔 달 씻는 소리
관음보다 환했다.
뒷산 암자 노스님이
일수찍듯 탁발을 와
밀물 한 장 썰물 한 장
등짐을 지고 가서
절지붕 다 덮던 날 밤
萬波息이 되었다.
<法席>
바닥에 이르지 못하면 바다가 될 수 없다. 바다는 바닥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바닥으로 바닥으로 흘러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나비나 매미는 번데기애벌레나 굼벵이로 땅 속에 묻혀 오랜 잠을 잔다. 흉물스런 몸을 빛에 내놓지 못하고 화두를 잡고 묵언수행한다. 숙명의 숙선(宿禪)이다. 잠이 깨면 땅을 열고 나무에 기어올라 번데기를 벗고 꽃이 피듯 날개를 편다.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바다도 바닥에서 날아올라 흰구름이 된다. 바다도 영혼을 가진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바닷물 염수가 태반이다. 염수 바다에 떠 자란다. 생명의 퍼즐조각 세포도 바닷물 위에 떠 있는 형태다. 사람 몸에 염분 바닷물 성분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바다는 파도라는 주파수에 모든 생명을 싣고 싸이클링 리듬으로 윤회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옛 기와들은 문양을 새겨 지붕을 엮었다. 삼국시대 기와는 대부분 아주 성근 베보자기자국이고, 통일신라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 기와는 ‘파도문(波濤紋)‘이 많다.
세상에!,
이런 역설도 있나? 흙으로 파도를 구워 지붕을 엮다니.
물은 낮은 곳을 먼저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흐른다. 산속 옹달샘에서 발원하여 징검다리 놓인 시냇물로, 굽이굽이 강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마침내 가장 낮은 바닥인 바다에 이른다.
바닥-바다 대응이 참 잘되는 이 말은 아마 어원이 같으리라. ‘달’ 또한 바다 바닥에 8촌 쯤 될 것이다. 8촌이면 증조할아버지가 같으니 4대 재당간이다. 한마당 자손이다. 하늘에 뜬 ‘달’은 '밝은 언덕'이란 뜻이다.
대구를 ‘달구’라 하지 않던가? 단양군 적성면을 ‘열두 품달’이라고도 한다. 12개 品(마을을 괴어놓은)의 양지언덕으로 이루어진 곳이란 뜻이다. 휘영청 밝게 뜬 언덕이 '달'이다. 제천 박달재의 박달과 같은 뜻이다. '박달"은 밝은 언덕이란 뜻이다. 박달도령 전설 때문에 박달재가 아니다. 고구려 이두어다. 민족의 신다수인 박달나무도 소나무 박달나무 할 때 그 품목이 아니다. '박달=밝은 땅 언덕'의 '나무=안테나'인 것이다.
우리민족의 신화를 보면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인 박달나무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연다. 곰을 여자로 만들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 왕검을 낳는다.> 신화는 은유시다. 이 은유를 알아야 한다. '태백산(太白山) 의 백(白)은 태양 즉 천손(하느님의 아들)을 의미 한다. 백두산 소백산 모두 태양을 상징한다. 그래서 넓은 평지로 내려오지 않고 하늘과 가까운 산으로 내려온다. 그것도 신의 제단 나무 '박달나무=밝은 땅 나무안테나'로. 여기까지 모두 빛 천손이다. 땅과 결혼하여 만물을 낳아야 되는데 호랑이와 곰 중 곰을 땅의 신으로 택한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 즉 하늘 땅이 결혼하여 인간인 '단군왕검'이 태어나는 것이다. '검=제사장=무당'이다.
'무당'이 유교사회인 고려 주자학부터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폄하되었지만 가장 신성시 되는 깨끗한 영적인 사람이다. 인간세상의 대표로 하느님과 교감하는 메신저다. '박혁거세'도 세상을 밝게 열다 라는 뜻이다.
재미난 것은 모든 사이비종교의 정점엔 교주가 나는 하느님 아들이다. 하느님 메신저라고 현혹한다.
북한체제를 보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백두혈통이란다. 천손 하느님 아들이란 것이다. '백(白)=태양' 그래서 '민족의 태양' '태양의 궁전'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오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거나 기와 만드는 장인을 ‘흙쟁이’ ‘점(粘)쟁이’이라 했다. 아주 밑바닥 천민이었다. 아니 民이 아니었다. 백성이 아니라 짐승 취급을 당했다. 일 부려먹는 소나 말 가축이나 같았다. 그래, 나는 괜찮다치고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식이 나 보는 앞에서 그 수모를 당해야 하나?.
이를 피해 '粘쟁이'들은 깊은 산 속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피난을 간 것이다. 자유를 찾아. 그래서 지금도 ‘사기막골’이라는 지명이 산골짝 골짝마다 산벚꽃 피듯 많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사기막골'. ‘사기막골’은 ‘보릿고개’만큼이나 막막하고 서럽고 슬퍼서 더 엘쫀한 우리말이다. 말 이전에 슬픈 삶의 서사다.
그 도공, 어느 날 문득 밑바닥에서 바다를 보지 않았을까? 바다는 파도다. 도공은 파도를 흙으로 구워 가장 높은 곳, 하느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물결의 경전을 엮어 올려놓고 염원했던 것이다.
물소리는 최고의 경전 독경소리다. 가장 낮은 곳으로 쉼없이 흘러가라. 그래서 바닥부터 채워 올라와라. 세상을 하나의 큰 바다로 만들어라. 이렇게 이르는 최고의 경전이다. 가장 밑바닥 삶, 천대받던 점쟁이가 최고의 경전을 쓴 것이다. 천하에 천민이 글을 아나, 붓이 있나, 종이가 있나? 자기의 노동언어로 가장 위대한 경전을 쓴 것이다. 흙에 구운 경전이니 타지 않는다. 다만 깨져서 씨앗 흩어지듯 흩어지지만 뜻은 깨지지않는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경전을 구하러 가던 삼장법사나 구마라즙보다 그는 더 위대했다.
가장 밑바닥에 이른 바다의 물결 파도를 건져 흙으로 굽는다. 가장 높은 곳 지붕을 엮어 올려놓고 ‘하느님 이 세상을 바다가 되게 해주십시오.‘ 모두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해주십시오. 낮은 곳부터 먼저 채우는 수평저울이 되게 해주십시오. 상선약수 이 경전의 염원을 젯상처럼 고인돌처럼 높이 고여 받들어 놓은 것이다.
사회가 뭔가? 바닥을 넓히는 일이다. 세계를 한마당으로. 이것이 ‘義’=바란스 저울의 이치다. 수학 물리 화학 경제의 복식부기 모두 등호(=)가 되어야 정답이다. 좌변과 우변이 기울지 않고 같을 때 정답이 된다. 그 저울은 바란스(균형), 평등을 이루고 마침내 평화가 된다. 그래서 법의 신도 눈은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고 의학의 신도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 바란스는 물 수평이다. 法 治 濟 사회 정치 경제 모두 물(⺡)이 앞머리에 붙어있다. 낮은 곳을 먼저 채워 등호(=) 균형 평등 평화로 나아가라는 잠언이다.
바닥이 넓이를 가지면 바다다. 바다는 바닥이 아니면 바다가 될 수도 없다. 바닥은 바다의 모음이다. 母音, 불교는 모두 소리다. 떨림과 울림이다.
목탁 염불 관음 목어 운판 법고 좌종 풍경… 왜 이렇게 소리에 매달릴까?
화엄경은 하나의 큰 圓音을 말한다. 적분이고 모든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화음이다. 법화경은 화엄을 이룬 삼라만상 먼지 하나하나 미분이 각자 독립된 생명의 악기라는 것이다. 법화경은 낱낱의 독립된 생명의 악기 떨림의 관음이고, 화엄경은 이 낱낱 악기들의 오케스트라 울림의 관음이다.
이 세상 삼라만상은 낱낱 관음 즉 소리로 인해 일어나는 象과 像 홀로그램 신기루현상이다. 떨림과 울림이 일으키는 주파수다, 만물은 주파수가 일으키는 그림자현상이다.
빛을 스펙트럼으로 뽑으면 빨주노초파남보에 색깔마다 에너지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굴절율이 다르다. 주파수가 색=물질 에너지의 진폭과 진폭의 속도 시공이 한테 어우러진 力學이다. 이게 에너지고 우주원리다. 이것이 무늬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色=물질을 규정하는 현대과학이다.
빛=에너지가 물질=色을 잠깐 비치고 사라지는 현상이 우리가 집착하는 물질이다. 무지개를 잡으러 갔다가 잡아오던가? 비누방울이 풍선처럼 아이 손에 잡히면 좋겠지만 잡히면 곧바로 꺼지고만다. 물질이 이 현상이다.
‘침대는 과학이다’ 이처럼 불교가 소리에 매달리는 것은 소리가 만물의 뿌리라는 과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색즉시공의 과학이다. 모든 물질은 진동한다. 즉 에너지의 형태로 흘러가는 x-y좌표 2차함수 궤도다.현상이다, 비쳤다 꺼지는 현상이다. 色=물질은 잠깐 비치는 것의 영상이다.
원자의 적분인 분자 물질 물체가 그렇다. 그리고 이들 만물의 진동(에너지)은 서로 울린다(공명). 주파수를 가진다. 물질 즉 色이란 에너지의 진동으로 나타나는 그림자 현상이다. 그래서 색은 변한다. 씨(광자 빛)는 변하지 않는데 빛에서 나온 色의 씨앗 玄(현무도는 씨앗을 말함 오행에 물이고 방위로 겨울인 북쪽)은 조화 변주된다. 빛에서 무지개의 색이 나타나는 스펙트럼현상이다. 스펙트럼 색은 白光 흰빛으로 환원된다.
고정된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我相’이 없는 에너지의 흐름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이 기화하면 공기도 되고 구름도 되고 눈비도 된다.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는 현상인 것이다. 피타고라스정리처럼 정리하면 '색즉시공'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바로 떨림과 울림이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이를 응용한 것이 주파수 전자산업이다.
MRI(자기공명) X-Ray. r-Ray 모두 관음 즉 세포 뼈조각의 진동 주파수로 몸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것이다. 엑스레이를 예로 들어보자. 뼈가 부러지면 진동이 다르기 때문에 부러진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동=에너지=주파수는 무늬 형태를 현상화 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觀世音菩薩인 것이다.
그래서 관세움보살은 세상 모든 소리를 듣는다 하는 것이다. 아니 본다고 하는 것이다. 소리가 곧 물질 영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리를 본다 觀音인 것이다. 뼈가 부러져 주파수가 다르니 부러진 영상이 나타난 것이니 주파수=소리=에너지=영상 이렇게 되는 것이다. 텔레비젼 영상도 주파수 떨림이 만드는 영상이고 휴대폰도 떨림 주파수가 말을 구성하고 영상도 구성하는 것이다.
수월관음도는 그래서 모두 소리의 진동을 주제로 한 악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수월관음도는 오케스트라다. 법화경=묘법연화경의 주제어다. 경전을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으로 설법한 그림챠트다.
불교가 모두 소리의 마당을 이루려는 것은, 소리의 바다를 이루려는 것은, 하나의 圓音 세계인 호흡과 맥박의 律 때문이다. 삼라만상과 생명은 한 호흡이다. 바이오리듬 노래 춤 시가 다 같은 律이다. 내재율 외형율 율동 춤 모두 같은 것이다. “法律”이란 단어도 법=만물, 율=리듬 즉 법율이란 '만물의 리듬 '이란 뜻이다. 이 자연의 질서를 따르자는것이 법이고 법율 질서다. 카드섹션인 것이다.
왜 그럴까? 어디서 이 리듬 律이 내 몸으로 건너 왔을까? 또 어디로 가려고 흔들고 흔들리는 것일까? 삼라만상은 모두 ‘빅뱅’에서 파생된 한 별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빅벵 때 만들어진 만물의 씨앗 주기율표 1호1번인 수소(H₂)라는 한 원소의 파생상품이다. 그래서 한 그물(네트)로 공명하고 그 공명은 하나의 사회 우주원음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게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의 사회 네트워크를 향해 나가는 원초적 동력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현관에 들어서서 저 끝을 바라보면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있다. 5m다. 가까이 가면 소름이 오싹 돋는다. 碑를 받치고 있는 이수(거북의 변형)의 무시무시함, 룡이 비천하는 것 같은 먹물 든 화강암의 碑身. 비신 위에 구름조각. 최고의 조각예술이다. 그런데 이 碑가 우리 고장 제천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지에 있던 國師원랑선사비다. 운수행각을 했다해야하나 출세를 했다해야 하나. 비가 너무 아름다워 탐하는 사람이 많았다.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도화살 때문이다. 아름답게 만든 석공이 문제(?)였다. 아름다우니 탐하는 사람이 많아 일제 때부터 고향 떠나 구름처럼 떠돌다 지금은 국박에 마스코트로 서있다. 하마터면 일본으로 갈 뻔 했다. 도화살이 역마살이 되는것이다.
1000년 세월이 넘은 碑다. 그런데 이 비문에 “성색(聲色)이란 단어가 있다. 나는 이 단어를 읽다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의역하면 현대과학이 말하는 "물질(色)은 소리(에너지)의 현상으로 일어나는 그림자라"라는 뜻이다.
주자의 性理학(만물의 이치, 서양의 物理학+ 철학을 넣어 설명)에도 聲音과 樂은 하늘이 뿌리고 陽이다. 운동하려는 뜻이 있다. 樂과 대칭인 禮는 질서다. 예는 땅의 이치로 사람이 그 질서를 따르게 제정한 것이다고 말한다. 사람이 제정한 질서라고 하나 땅의 이치를 차용한 것. 禮樂의 陰陽이론에도 떨림과 울림 천간과 지지가 두 축임을 말하고 있다. 樂은 천지와 더불어 和하는 자유고, 禮는 악의 자유가 방종에 흐를까 질서로 제동을 걸고 매듭(節)=節度를 지어주는 것이다.
옛날 선비가 대나무 밭을 지나가다 변을 보려고 갓을 벗어 대나무에 올려놓았다. 일을 보고 일어났더니 갓이 없어졌다. 바람에 날려갔나? 찾다가 하늘을 보니 그 사이 대나무가 쑥 자라서 허공에 갓이 걸려있더라는 것이다. 대나무 같이 뻗어나가는 것이 樂이다. 유행가 퍼지듯. 자유의 기운이다. 즐거우면 춤과 노래가 저절로 일어나듯이 악은 자연히 발현되는 자유와 평화의 에너지다. 신명이다. 그런데 이 악은 브레이크가 없어 방종으로 변한다. 그래서 소리꾼 춤꾼을 기생 한량 취급했다. 나갈수록 방종이 되고 쉽게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대나무는 매디(節)가 있는 것이다. 거침없이 나가려는 것을 잡아주어야 한다. 제동장치 브레이크가 있어야 안전한 것이다. 이것이 ‘禮’=예절, 序=질서다. 이것이 천지자연에서 인과 연한 예악론이다.
자유 속의 和와 규칙 속에 질서가 상호 보완하는 것이다. 주자의 성리학은 樂이 和의 수단이고 도=자연=하늘의 뿌리임을 말한다. 악은 잘못하면 브레이크가 없어 방종으로 흐른다고 경계를 했다. 그래서 樂에 "잠깐!" 하고 禮로 질서를 세운 것이다. "술은 3잔이다" 이러는 것이다.
자양영당에 류인석 장군의 당숙 성제 류증교선생이 쓰던 '8현금'이 있다. 이 8현금을 타며 ‘현가궤범(絃歌軌範) 樂論을 썼다. “세간에는 음란한 소리에 뛰어나 한갓 목구멍을 떠는 기교를 부리고 농현의 사이에 귀를 매혹시켜 방탕하게 하는 가객이 있는데 이는 바른 악이 아니다”고 악을 경계했다. 지금은 바이브레이션 비트음악이 생명인데 유교사회에서는 농음을 방탕한 ’娼婦가‘로 본 것이다. 그래서 선비는 가야금보다 거문고를 택했다. 시냇물 여울소리 목청 떠는 소리보다 배음 복음인 강물소리 파도소리로 마음 속 심금을 조율하고자 했다.
불교 유교 물리 화학 음악 수학이 다 소리(떨림과 울림)가 이 세상 ‘으뜸음자리’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네트워크 통합해서 생각할 줄을 모른다. 이게 3차원 4차원이다. 시인 ‘이상’이 烏瞰圖라는 시를 1930년대에 신문에 연재하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3차원 나가 4차원 세계였던 것이다. 시는 어려워 몰라도 오감도(烏瞰圖)라는 제목에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直指’인 것이다. 오감도나 직지 모두 제목이 참 임펙트하다. 새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3차원입체 ‘조감도’라 하는데 이상은 새 중에도 영원을 보는 새 까마귀로 바꾸어 조감도를 '오감도'라 한 것이다. 사람은 날개가 없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니 평면 2차원만 본다. 새는 공중에서 보니 입체 즉 3차원을 본다. 새는 눈이 20.0까지 본다. 그 중 까마귀는 영혼까지 보니 4차원 블랙홀까지 보는 것이다. 이상 시인이 오감도라는 시를 쓴 것은 시인은 4차원 세계 영혼을 보고자 해야한다는 뜻도 담겨있을 것이다. 上詩는 까마귀가 보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소리 중에 가장 큰 화음 으뜸음자리 화엄경은 “파도”였다. 그래서 글 모르는 도공은 “直指”했던 것이다. 틀림없이 글을 모르는 도공이었을 것이다. 문자에 끄달리면 ‘直指’를 못한다. 글 모르는 도공이었으니 “파도! 바로 저것이다.” 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노동언어인 흙판에 파도를 새겨 불에 구웠다. 뒷산 老스님이 탁발하러 내려오실 때면 곡식은 없고 썰물 밀물 기와 한 장씩 시주를 했다. 스님은 그 파도를 지고가 법당지붕을 덮었다. 바람이 불면 솔잎쓸리는 소리가 쏴아쏴아 파도소리 같다. 산이 바다가 된 것이다. 지붕에 파도를 얹은 건 ‘하느님 전 상서’를 올린 것이다. 염원이었던 것이다. 평등 평화의 세상을 염원했던 것이다.
북한산이 뒷동산이라 1주일에 한두 번씩은 등산을 한다. 발부리에 차여 저만치 나뒹구는 것이 있어 보니 깨진 ‘파도문’ 와편이었다. 북한산 능선은 산성이 대들보처럼 등마루를 이룬다. 초소 자리가 여기저기 있어 깨진 기와장이 많다.
북한산에는 원효봉이 있고 조그마한 원효암이 있다. 약수가 있어 원효대사가 둥지를 틀었을까? 이곳에서 파도문 와편이 내 발을 걸었다. 바닥에 떨어져 송곳니를 감추고 있던 덫, 하필 나를 걸고넘어지다니, 내 처지도 바닥이니 주파수가 같았나? 그래, 우리 파도라 하지 말고 바다라 하자. 만파식(萬波息)의 바다.
“아바타:물의 길”이 바다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14일부터 전국 개봉 한다니 꼭 한 번 봐야겠다.
<시조작법 한마디>
☆ 사물의 이면 뒷면을 볼 것
☆ 서사 인간사 정한과 대비를 이루면 감정을 울리고 공명 함
☆ 대비 비유는 멀고 엉뚱할 수록 극적이다. 나만 이미지가 겹쳐져야 됨
☆ 누구나 소재는 같다. 바위를 누구는 곰이라 하겠나.
그 소재에서 어떤 주제로 환유하는 내공이 필요하다.
잘 쓰고 못 쓰고 이전에 생각의 깊이를 먼저 길러야 한다. 그래서 다사량(多思量)이다.
첫댓글 와우~~~
참 오랫만에 야단법석을 '물의 길'로 '오감'을 열어주심에 감동하며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파도문 기와 조각이 선생님 발을 걸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제 발에 걸렸으면 "에이~C" 하고 그냥 지나쳤겠지요.ㅎ
오귀한 공부를 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당신카톡 보았네
앞으로 자주접하고 좋은공부 부탁하네.
고맙습니다
시작법이
그리 쉽지 않네요
선생님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