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강좌 / 시의 인문학>
■ 초보시인 맨땅에 헤딩하기
_ 가짜 시와 진짜 시
시 짓기를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방법을 알고 내 것으로 체득하면 의외로 쉽게 쓸 수 있다. 특히 디카시를 쓸 때도 시 짓기의 본질과 방법을 조금만 공부해도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작품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난다. 디카시도 문자시처럼 작품성이 생명이다. 여기에는 현장성이 있어야 하고 사진에도 확실한 메시지가 있어서 서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합쳐졌을 때 의미가 더욱 살아나도록 해야 좋은 디카시가 될 수 있다. 이것도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기초적인 방법을 알기만 하면 사진시가 아닌 제대로 된 디카시를 쓸 수 있다.
초창기 디카시는 사진의 품질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 그렇게 쓰면 디카시 잘못 배운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다시 말하지만 디카시는 사진이 함의하는 뜻과 품질도 언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11월 30일 마감된 [2024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디카시 부문)]에 응모된 80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예심을 하고 있는데, 디카시와 사진시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의외로 많음을 보고 놀랬다. 다행스럽게 좋은 작품도 더러 눈에 띄기도 하지만 디카시를 바로 배우고 바로 쓸 수 있는 아카데미가 많아져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디카시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오늘은 시 짓기의 원리와 기본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한다. 이것은 디카시의 언술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시 짓기에서 전문적인 시 공부를 한 사람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시는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정이다. 서정성의 진실은 그 사람의 삶에서 우러나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이나 기술로 쓴 시다. '시 공부'라는 것도 사실 기술, 즉 시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는 정도에 그칠 때가 많다. 그러나 시를 좀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시를 담는 형식보다도 형식에 담기는 정서적 공감과 여운이 핵심 알맹이다.
이 강좌에서도 시를 담는 형식 정도는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그것은 대단한 학문이나 전문 강사의 명성에서 얻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시 공부는 시를 쓰려면 사람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배우는 바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저기 백날 기웃거려도 사람공부 제대로 하지 않고, 시 짓는 기술로만 쓴 시는 어쩌면 가짜 시다. "시를 배우더니 사람이 되어간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된다. "시를 좀 쓴다는 칭찬을 듣더니 많이 건방졌다"라는 평가를 듣는다면 시 공부를 왜 하느냐 말이다. 그런 인성으로 쓴 시는 오히려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시 공부는 겸손을 배우는 일이고 삼라만상과 어울리는 자리에 들어선 사람이다.
요즘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보통 단체로 가는 해외여행은 관광을 가는 것이다.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관광객은 눈으로 보는 구경꾼이라면, 여행객은 마음으로 발견하는 사람이다. 발견은 사람의 철학과 관계된다. 철학이 결여 된 여행은 소비적 유흥이다. 시의 초보자는 관광하듯 시를 쓴다. 우리는 여행하듯 시를 써보자는 이야기다. 시인은 세상을 여행하며 감춰진 비밀을 발견해 내는 탐험가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비밀이라는 것도, 대단한 무엇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 어리숙하게 변장하고 보일락말락 숨어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방법만 알면 우리의 시 짓기는 휘파람을 불 수 있다.
오늘은 그 방법 몇 가지를 공유해 보려고 하니 집중해서 내용을 읽어야 이해 될 수도 있다.
첫 번째는, 속칭 '궁뎅이로 보는 방법'이다. 좀 오래 앉아서 생각하면서 깊이 있게 보란 말이다. 그러면 보일 때가 반드시 온다. 온갖 시적 대상에 비밀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인에 의해 말해지기 위해서다. 보이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비밀이 많다. 그것을 찾는 연습이 시 공부다.
두 번째는, 규범적 언어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비틀어서 하고 다른 사람이 말했던 것과 다르게 하면 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매끈한 유리잔을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이고, 그것을 비틀고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도 정서적이거나 효용성이 공감되면 그 사람은 예술가이자 새롭게 작품을 만든 것이다.
세 번째는, 멀리 보지 말자는 것이다. 나와 제일 가까운데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자. 내가 밥을 먹는 숟가락에 비밀이 숨어있을 수 있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단추나 단추 구멍에도 숨어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거나 마음에서 떠오른 형상에서 무엇이든지 끄집어내면 된다. 가까운 것에서도 못 찾아내면 멀리서는 더 못 찾는다.
네 번째는, 끄집어낸 그것에 생략과 비약과 함축이라는 세 가지를 반죽하여 튼튼한 구조물로 양생시켜야 한다. 즉, 보편적인 것을 특수하게 만들어보는 방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철학적 사고의 집 짓기"다. 구질구질한 일체의 사족(蛇足)을 정리하고 담백한 형식, 즉 구조물이 뜻하는 주제가 짐작되도록 담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주변 정리가 필요하다. 그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자. 상황이 짐작되도록 해 놓기만 하면 된다. 의미를 보여주면서 진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살짝 숨겨놓는다. 위의 내용과 겹치는 것 같아도 이런 형태가 시 짓기가 추구하는 핵심 방법이자 시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남김없이 설명한 글은 시가 아니다. 요즘 산문도 그렇게는 쓰지 않는다.
여섯 번째는,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글인가를 다시 점검해 보자.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공감되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사로잡게 된다. 그것이 잘 안 되면 재미있게라도 쓰려는 노력을 하자. 개그맨은 자기는 웃지 않으면서 남을 웃기는 것처럼, 자기의 글에 도취되어 울고 불고 감정을 드러내면 실패한 시다.
이 강좌를 통하여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듯 읽으면 무슨 소린지도 알지 못한다. 그동안 올려놨던 강의를 몇 번만 정독해도 시 짓기의 기초방법은 다 있다. 내 것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오지랖에 싸줘도 모른다. 물론 이 강의가 수준 높은 내용은 아니다. 이곳은 학문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시 짓기의 현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방법을 나누는 곳이다.
나는, 쉬운 것도 어렵게하고 최대한 지식을 뽐내며 말하는 교수들의 강의 형태가 시를 더욱 어렵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느 유명한 학자의 시 짓기 강의를 몇 년 들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학문으로서는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저런 강의가 우리의 시를 죽이는 역할을 하겠구나”라고 혼자 생각한 일이 있다. 건방진 생각이지만, 대중이 향유하지 못하는 시는 ‘전문가들의 리그’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문적 전문가를 키워내는 일도 해야 되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하고, 국민 누구나 즐기고 향유 하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시 짓기 공부를 해보자는 것인데, 사실 이것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무망한 일이다. 그래도 이 강의는 지난 10여 년간 480강을 넘게 이어져 오면서 더러는 보람찬 일도 많이 경험하게 되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첫댓글 울림이 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디카시를 공부하는 초보, 감사히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디카시 라는 생활문학을 처음 접하면서 시인들의 전유물인양
좁아져만 있는 집합체를 보며 참 소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좀 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의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좋은 강의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