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장과정
성웅과 설이는 국민 학교 동기생이다. 4학년 올라가 졸업 할 때까지 3학년 동안은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하였다. 성웅의 집도 설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 설이 집에서 왼쪽으로 나와 한 5백 미터 가다 또 왼쪽으로 돌아가면 길과 조그마한 도랑이 평행선이 되어 달려가는 길 따라가다 보면 또 왼쪽으로 조그마한 길과 연결된다. 그 길 따라 한 3 백 미터쯤 멀지 않은 곳에 한낮에도 탱자나무와 덩굴이 엉켜져 어둑한 속칭 도깨비굴이라고 부르는 좁은 길이 보인다. 그길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옆에 대문이라고는 할 것 없는 굵지 않은 나무와 철사 줄로 엮어 만든 문이 성웅의 과수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말할 것 없고 한반이 되고 나서도 3년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께 다였다. 어느 여름 날 학교를 갈려고 낮은 다리까지 왔었는데 폭우가 쏟아져 큰 물(홍수)이 되어 낮은 다리가 촐랑 촐랑 물에 잠길듯하여 장정들은 바지를 접고 건널 수 있어도 초등학생인 성웅도 설이도 건널 수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어느 여름날에는 수업 중에 꼬지래기(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 말씀이
“야들아 소나기가 저렇게 내리는 것을 보니 다리가 물에 곧 잠기겠다.”
“강 건너 사는 설이 그리고 화자 또 누구더라 빨리 가거라.”
대표나 대는 듯 설이 화자 이름을 부른다. 두 학생 외에 셋 학생도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다 끝나기도 모두 책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선생님 고맙습니다.”내일 뵙겠습니다.”꾸벅 절하고는 다섯이 책 보따리를 챙겨 냅다 뛰어 지서 아래 낮은 다리 앞 방천 둑에 다다른다. 달리기를 잘하는 성웅은 먼저 와 있다. 이미 다리는 물에 잠겨 건널 수 없어 둑에서 함께 발을 동동 구르기를 수 없이 했다. 그런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디에서 잠을 자나 걱정을 하며 뉘엿 붉게 물 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며 우산 아래서
“ 너는 우얄래(어떻게 할래)?”
설이 이렇게 얘기하면서
“나는 덕시(덕성)에 있는 우리 작은 집에 가면 되는데”
“너도 같이 갈래”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웅은
“내가 우예 그기 가노”(내가 어떻게 그 집에 가느냐?)
“너 혼자 가라 나는 여기 있다. 물이 빠지면 그때 갈게 한다.”
비가 그쳐도 물은 줄지 않고 밤늦게까지 서로 걱정했던 일이 엊그저께 같이 느껴진다.
한 반 60여 명 중 강건 사는 아이들이 대충 대 여섯 명은 되었다. 또 아침에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둘이 우산을 들고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낮은 다리 앞에 오니 강물이 불어 누른 황토물이 뱀의 형상을 하고는 집어삼킬 듯이 꾸불꾸불 몸을 빗 털며 느릿느릿 걸음으로 다리를 집어삼키고는 온갖 것을 싣고 유유히 낙동강을 향해 흐르는 것이다. 이곳은 아침에 내리는 비였지만 아마 강 상류에는 어제 밤에 폭우가 쏟아진 것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늦게 알았다.
그런 날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재빨리 돌아와 찬은 자기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설이 집에서 함께 그날 배울 과목을 공부하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면서 지는 사람은 팔을 걷어 놓고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모아 때리기도 하거나 설이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올려붙이며 이마를 셋째 손가락으로 퉁겼든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금 새롭게 묻어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넓은 과수원이 좁다며 뛰어놀며 동무로 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설은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깜깜했다. 찬은 더더욱 몰랐다. 너와 나는 친구다. 너는 빡빡 머리를 깎고 나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너는 바지를 입고 나는 치마를 입었다. 너는 서서 볼일을 보고 나는 앉아서 본다. 너는 여자고 나는 남자다. 성웅과 나는 그저 조금은 다르다. 그 이상 다른 무엇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친구로 잘 지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자 여자 이름만 다를 뿐 같이 노는 데는 하등 상관이 없으니 다른 무엇을 생각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여학생은 고무줄 노리를 하면 남자애들은 따라 다니면서 고무줄을 끊으려는 개구쟁이 남학생도 없지 않았다.
성웅은 언제나 짓궂은 친구의 행동을 따라다니며 말리려 했다. 왜냐하면 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성웅이다. 그런대 오늘은 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앞으로 쑥 내밀면서 깨금발(발 뒤 굽을 들고)을 하고 오줌을 누는데 그것도 날을 보세요. 내 오줌발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 보셔요. 하는 듯 엉덩이를 왼쪽으로 돌리며 오줌을 갈기기도 하고 또 오른쪽으로 길게 오줌발이 원을 그리며 누기도 한다. 그날따라 오줌 량도 그렇게 많은지? 또 오줌발이 높이 멀리멀리 누는지 알 수 없었다. 땅에 떨어진 오줌 줄기에 가느다란 수증기와 함께 작은 먼지를 일으키며 오줌이 웅덩이 물같이 고인다. 설은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아이코 저 종내기 하는 짓 봐라 하면서 그때부터 참 희한하다. 생각하고서는 처음으로 낮 뜨거움을 느꼈다.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저 종내기 별짓 다한다. 눈을 손으로 가리며 보는 설의 눈에 비치는 성웅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붉은빛을 띄운다. 그때부터 어쩐지 성웅이 얼굴 보기가 예전같이 않았다.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 더니 어쩐지 같이 노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런 설이를 보고 성웅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자기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설을 쫓아가면서
“야 니 와 그라노(왜 그러는 야?)”한다.
고개를 까딱이며 저 가시나가 내가 싫어졌나 하면서 울상을 한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고 무어라 그러면 새침해지기도 하고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멀어지는 어쩌면 자기를 싫어한다.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잠자리 두 마리가 꽁무니를 물고 아래위로 포개져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찬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설은 잠자리 두 마리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아는 눈치다. 그런 관경을 보고 성웅은 긴 막대기를 들고 죽으라고 잠자리 뒤를 쫓아온 과수원을 돌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니 아이가 어떻게 날개를 가진 잠자리를 따를 수가 있을까? 하는 짓이 가당찮다. 생각하는지? 아니면 한심하다 생각하는지? 설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잠자리는 날 잡아 보세요. 하는 듯 여기저기로 나라 다닌다. 설은 이제는 별말도 아닌 말에 신경질을 부린다. 전에 같으면 여사로 들리는 말인데도 설이 발끈한다.
설이 성웅이가 한 무언가 말에 화가 났는지 앙칼진 목소리로 확 뱉는다.
“니 그 칼라 카면(그렇게 하려면) 니거 집에 갓 부라(가벼려라).”하면서
흔히들 성난 아이들 발걸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팔을 앞뒤로 세차게 흔들며 폴딱 폴딱 뛰는 걸음 거리로 방문을 열고 획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확 닫는 것이다. 성웅도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설이가 이제는 자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성웅도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가시나 니 가라 카면 못갈 가 봐(가라고 하면 가지 못 할 가봐)”
하면서 홱 돌아서며
“니 그 카면 (그렇게 말 하면) 내 머 겁낼까 봐(것 같은가)?”하면서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이성에 눈뜨는 시기가 늦기 마련인가보다. 설이는 성웅의 그 오줌 누는 것을 보고서는 확실히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오다
“니 그 칼라 카면(그렇게 하려면) 니거 (너희) 집에 갓 뿌라.(가벼려라). 하며
방문을 열고 획 방 안으로 들어간 그날부터는 보고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싸우지 않았는데도 싸운 사람처럼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둘을 보고 너 거 둘 붙어 다니더니 왜 싸웠나? 알나리깔나리 하고 놀려대면서 요즘은 통같이 붙어 다니지 않느냐? 하며 묻는 것이다. 그러면 둘은 똑같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싸우기는요 하면서 얼버무려 버린다.
둘은 서로 보고도 못 본체하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는 완전히 싸운 사람처럼 되었다. 자연히 그러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심보가 발동한 것이다. 누가 물으면 둘은 싸우기는요 안 싸웠습니다. 하면서 돌아서 자기 갈 길을 갔다. 둘은 그렇게 지내면서 자그마치 세월이 흘러갔다.
매일 같이 오든 성웅이 오지 않자 설이 어머니가 설이에게
“야야! 너 도깨비 집 가하고 싸웠나 요새 (요즈음) 가 (그 아이) 통 안 오데?”
그러한 어머니 물음에
“싸우기는요 안 싸웠습니다.
“그 종내기(머슴아) 내 싫다면 다른 아하고 안 노는교(애 하고 놉니다).”
“묻지 마이소 이젠 그 종내기(사내아이)꼴 보기도 실 싫습니다.”
하고서는 입을 삐죽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세월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이어 졌다. 설은 대구에 있는 세칭 일류고등학교에 1차에 합격하였다. 집에서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다. 성웅은 1차 시험에 떨어지고 2차에 합격하였다. 성웅은 고모부가 직물공장에 다니시며 고모가 살림을 도우려 몇 명의 하숙생을 받고 계셨다. 고모 집이 학교와 가까워 자연히 고모집의 하숙생이 되었다. 성웅의 아버지는 안 그래도 여동생이 사는 꼴이 말이 아님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속담과 같이 도우고 싶어나 자신의 재력으로는 터무니없는 일 마음 졸여 오던 중에 아들이 대구에서 학교 다녀야하니 안 그래도 어쩔까 생각 중에 동생을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자식을 동생에게 맞기고 한 달 생활비를 주면서 얼마간 더 얹어 보탬을 주어야하겠다 생각하니 이런 안성맞춤이 어디 있느냐 생각한다. 설은 집에서 통학을 하다 보니 방학 때가 아니고서는 만날 기회조차도 없을 뿐만 아니라 둘 다 도회란 큰 도시에 또 중학교란 새로운 환경에 접하다 보니 설이도 성웅도 서로 지난날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첫댓글 60여 년 전 그때가 아물아물 떠오르네요,
순이도 자야도 다가고 나 혼자 남았군요.
읽어주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