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묶은 돔배기
유물의 시간은 박제된 줄로만 알았다. 유리창 너머로 마주하는 과거는 대개 빛바랜 청동검의 서슬 퍼런 침묵이거나, 깨진 토기 조각이 품은 흙내 나는 단절감이었다. 경산시립박물관의 고요한 조명 아래를 거닐 때도 발걸음은 가벼운 산책자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내는 낮게 내려앉은 조명 탓에 아늑하면서도 어딘가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유리 쇼케이스 너머로는 천오백여 년 전, 이 땅을 호령하던 압독국押篤國 사람들의 흔적이 숨 쉬고 있었다.
임당 고분에서 출토되었다는 부장품들. 그 수많은 흙과 시간의 더께를 털어내고 드러난 유물 중에서 유독 내 안의 감촉을 일렁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상어 등뼈였다. 그것이 가죽 허리띠처럼 한 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랜 세월 가토加土 속에서 삭아 하얗게 탈색된 그 뼈마디를 바라보는 순간, 내 입안에서는 짭조름하고도 담백한 맛이 감돌았다. 어릴 적, 제삿날에 늘 보았던 바로 그 ‘돔배기’의 실루엣이었다.
국내의 수많은 고분 중에서 오직 이곳 경산의 임당 고분에서만 상어 뼈가 발견되었다는 해설판의 글귀를 읽으며,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토성을 쌓고 낙동강과 금호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살았던 압독국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제사상에 돔배기를 올렸던가. 그제야 박제된 유물을 더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조상의 날것 그대로의 삶이 내 안으로 밀려드는 듯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고기를 찌고 구우며 먼저 간 이들의 영혼을 달랬으리라.
제삿날이 다가올 때마다 집안에 감돌던 특유의 긴장감과 설렘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제사에 쓸 고기를 고르는 일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당신의 발걸음으로 해결했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경산 장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물전이었다.
돔배기는 참 상어인지, 간 상어인지 또는 소금 간을 얼마나 적절하게 배어들게 했느냐에 따라 맛의 깊이가 천양지판으로 갈린다. 얼핏 보기에는 다 같은 허연 고기 토막 같아 보이지만, 좋은 돔배기를 골라내는 안목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유독 그 단골 어물전 앞에서만큼은 시장의 소음을 압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제사상에 올릴 놈인데, 진짜배기로 골라 보소.”
그것은 단순한 흥정이 아니라 상인의 안목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호기로운 선언이었다.
음복飮福의 순간에 생각대로 깊은 맛이 나면, 아버지는 숭고한 의식을 무사히 마친 것처럼 만족스러운 안도의 한마디를 꼭 덧붙였다.
“그 사람, 나한테만은 여측 없지러.”
내게는 그 말이 마치 아버지와 어물전 상인 사이에만 통하는 암호처럼 들렸다.
상인은 아버지가 오면 좌판 밑에서 아껴둔 고깃덩어리를 꺼내놓았다.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단단한 상어 살점 위에 굵은 소금이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날카로운 눈매로 상어살을 살폈다.
집으로 들어온 돔배기는 어머니의 손에서 제수로 거듭났다. 어머니는 무쇠 칼로 돔배기를 네모반듯하게 썰었다. 두툼하게 썰린 고기 토막들이 무쇠솥 안에서 쪄졌다. 알싸한 냄새가 온 집안의 문틈을 타고 번져나갔다. 이윽고 다 쪄진 돔배기를 꺼내고, 간장을 살짝 찍어 간을 볼 때의 엄숙함이 뒤를 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요리의 과정이 아니었다. 대대로 이어져 온 맛의 법도를 확인하는 제의祭儀와도 같았다.
정지문 사이로 등불 빛과 희뿌연 연기가 새어 나왔다. 푹 끓여낸 고기 냄새와 놋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가마솥을 씻어낸 탁한 ‘꾸정물’을 양동이에 받아 나르는 소리까지, 그 모든 행위가 제사의 과정이었다.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은 비단 돔배기를 먹는 입맛뿐만이 아니었다. 언어와 생활 습관은 혈액보다 더 진하게 대를 이어 전해졌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투박하기만 한 사투리를 썼다.
압독국 사람들도 부엌을 ‘정지’라 불렀을 것이다. 여인들은 아침이면 정지문을 열고 들어가 무쇠솥에 불을 지피고, 쌀을 안치며 하루를 시작했을 터다. 음식을 만들다 간이 맞지 않으면 항아리에서 꺼낸, 검고 깊은 간장인‘지렁’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마당 한구석에는 화장실인‘정낭’이 있었다. 아이들은 밤이면 귀신이 나온다며 정낭의 근처에도 못 갔다. 비가 내려 마당 웅덩이에 고인 탁한 물을 보며 ‘꾸정물 튀니 조심해라!’하고 소리치던 어른들의 목소리는, 고분 속 사람들의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정체성은 거창한 이념이나 국가의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숨 쉬고, 주변의 사물을 느끼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방식들을 통해 형성되고 전해진다. 내가 경상도 억양을 쓰고, 돔배기의 쿰쿰한 맛에서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 세포 하나하나에 그들의 삶의 방식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도 지방의 제사상에는 돔배기 외에도 특유의 음식들이 오른다. 통째로 삶아낸 문어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거칠게 썰어낸 쇠고기 산적 같은 것들이다. 내륙 지방에서 귀하디귀한 문어를 제상에 올리기 위해 조상들은 동해안에서부터 수십 리 길을 서둘러 걸어 고기를 날랐을 것이다. 상하지 않게 하려고 소금에 절이고, 가마솥에 삶았다. 조상에게 최고의 것을 대접하려 했던 그 마음의 궤적이 지금의 제삿날 풍경과 어찌 그리 닮아있는지.
현대의 우리는 마트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유기농 식자재를 사고, 전 세계의 이국적인 요리를 터치 몇 번으로 배달해 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식탁이 화려해져도, 우리 몸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결국 조상들이 먹어온 내림 음식들이다. 명절마다 고속도로의 극심한 정체를 뚫고 고향으로 향하는 현대인들의 회귀 본능 역시 이어져 온 ‘핏줄의 이끌림’이자, 자신들의 시작점을 확인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갈망이 아닌지.
영남대학교 정문 바로 맞은편, 나지막한 언덕처럼 솟아 있는 압독국 고분군 앞을 대학 시절의 나는 매일 지나쳤다. 그러나 그 고분군은 늘 내 삶의 언저리에 공기처럼 존재했다.
당시의 청춘이란 얼마나 오만하고 눈이 멀었던가.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거리, 혹은 해가 저물면 동기들과 어울려 대폿집에서 싸구려 막걸리를 마시며 미래를 꿈꿨다. 그 웃음소리 가득한 임당동 거리에서 고분군은 그저 낡고 고리타분한 옛 무덤들일 뿐이었다. 가끔 그 고분군을 바라볼 때면 기껏 삼국시대 때 신라에 복속되어 사라진 망국의 자취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 무덤 속에 잠든 이들이 흘린 눈물과 땀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꼭꼭 씹어 삼켰을 음식의 잔해가 바로 지금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원형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막연했다.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인류라고 생각했던 청춘 시절의 미망. 노년이 다 되어 박물관의 상어 등뼈 유물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나는 깨어났다.
시간은 단절된 토막이 아니라, 돔배기를 꿴 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하나의 사슬이었다. 그들이 남긴 뼈마디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울림이 순식간에 내 온몸의 혈관을 관통했다. 피의 흐름도, 거친 말씨도, 돔배기를 좋아하는 독특한 음식 습관까지도. 그 오랜 시간의 필터를 거쳐 고스란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고분군 앞에 섰다.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을 받은 고분들은 마치 대지가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지긋이 세운듯했다. 그 부드러운 곡선들이 이제는 거대한 거인이 누워 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의 시작이 바로 여기다.’ 고분이 보낸 나지막한 전령傳令.
고분군에서 광활한 임당 뜰을 바라봤다. 압독국 군사들이 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성벽을 쌓기 위해 돌을 나르던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유리창 속에 누워 있던 돔배기 유물을 통해 그 화려했으나 슬픈 몰락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생생한 맥박이다. 저 먼 고대의 시간이 내 유년의 풍경 위로 사뿐히 겹쳤다. 아버지가 장터에서 터뜨리던 호기로운 목소리, 어머니가 정지에서 피워 올리던 매캐한 연기, 임당 고분 차가운 흙 속에 잠들어 있던 유물. 이 모든 것은 결국 ‘돔배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꿰어진 세월의 묵주이자 마디들이었다.
돔배기 뼈는 내가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나침판이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으나 한순간도 끊어진 적 없던 조상들을 향하고 있었다. 내 등뼈를 타고 흐르는 피 역시 거기서 연유된 것이었다. 내 뒤를 이을 다음 세대도 내가 먹은 음식과 내가 뱉은 말들의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또 다른 천 년의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