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출
김 금 철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병희씨는 결혼을 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외출을 했다. 그리고 오후 늦게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매일이다시피 외출을 했다.
정섭은 아침을 먹고나면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 소설을 습작했다. 휠체어에 앉고부터 문학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한 공부인데 습작을 하면 할수록 또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소설에 푹 빠져들고만 것이다.
그는 한참 습작을 하다말고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느새 12시가 지나고 1시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줄을 까맣게 모른 것이다. 그는 두손을 허공으로 올리고 기지개를 켜고는 휠체어 바퀴를 굴리어 서재를 나왔다. 병희씨가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가 인기척에 번쩍 잠을 깼다.
“점심때가 된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는 황망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별로 크지않은 아파트에 두 식구가 살고 있어서 그녀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비록 그가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해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혼자서 살아온 습관대로 그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일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그가 서재로 들어가고나면 그녀는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뒤적거리다가 끄덕끄덕 졸기가 일쑤였다.
“오후에는 당신 외출 좀해요.재미있는 영화라도 한 편 보고.”
그가 식탁 앞에서 밥을 먹으며 말했다. 그는 중매로 병희씨와 결혼을 했다. 병희씨는 남편과 성격 차이로 이혼한 30대 중반의 여자였다.
“당신 놔두고 나 혼자서 어떻게 외출을 해요 ?”
“내 걱정은 말아요. 당신이 늦지 않게 돌아와 저녁만 맛있게 지어주면 나는 만족해요.”
그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말했다.
“나 혼자는 외출 안해요. 당신과 함께라면 몰라도.”
그녀가 가볍게 눈을 흘기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병희씨가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외출을 했다가 오후 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이다시피 그녀는 외출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났다.
“나하고 이야기 좀 합시다.”
하루는 병희씨가 외출을 했다가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 정섭이 말했다.
“미안해요. 좀 늦었어요.”
그녀가 황망히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그는 멍하니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그녀에게 남자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가 저렇게 허둥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서로의 감정이 악화되기 전에 헤어지는게 좋은 일일 것 같았다.
“당신에게 남자가 생긴 모양인데, 우리 여기서 그만 헤여지는게 어떻겠소 ?”
그날밤, 저녁을 먹고 나서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요 ? 그런건 없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전 절대로 당신과 헤어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매일 무슨 일로 나가는 거요 ?”
“그거야, 뭐 ······.”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짐작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남자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매일이다시피 외출을 할 리가 없었다.
“매일 누굴 만나러 가는거요 ?”
“·····.”
“괜찮아요. 솔직히 말해줘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가 누구와 만나든지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녀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봉사협회에 나갔어요.”
“봉사협회 ?”
그녀의 뜻밖의 말에 그가 다시 물었다.
“당신이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서재로 들어가고 나면 전 너무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당신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휠체어에 앉은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 주려고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전혀 내 도움없이 혼자서 생활을 했어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어요.
그래서 할 일없이 시내를 배회했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장애인 봉사협회에서 회원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곳을 찾아갔어요. 봉사요원 아주머니들과 산동네에 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집에 찾아가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해주었어요. 매일 노인들의 집에 찾아가 일을 해주는 일이 힘은 들었지만 보람을 느꼈어요.집에 오면 잠도 잘 오고 ······.”
“그랬군요.”
“그런데 한 번은 홀로 사는 8순의 할아버지 집에 가서 목욕 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했어요. 3개월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랫도리는 전혀 씻지를 못했데요. 하지만 봉사요원 아주머니들은 선뜻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팬티를 벗기지 못하고 주저했어요. 그래서 제가 두 눈 찔끔 감고 할아버지 팬티를 벗겼어요.”
“잘했어요, 잘했어요.”
그녀의 말에 그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중얼거렸다. 병희씨가 난생 처음본 할아버지의 팬티를 벗겼다고 하는데도 왠지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끝}
첫댓글 무더운 여름을 이기게 하는 글 감사드립니다. 몸 건강하시길 빕니다.
고운 마음씨를 갖은신 모든 분들 행복하시길 빕니다. 제 마음도 흐뭇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목욕을 돌봐준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들은 그래도 감출려하시고 부끄러워 하시드라고요~ 나이만 드셨지 여전히 여자라로 남아있던데...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군요. 더불어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생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청량제 같은 것이겠지요. 김금철님 무더위에 건강 조심 하시고 늘 건안, 건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