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상상적 인식, 영감적 인식, 직관적 인식의 세계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인류진화의 궁극적 목표인 그 정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인간, 혼 , 영에 관한 지혜, 2023, 26)."
우리는 상상, 영감, 직관을 공부를 많이 해서 얻는 것이라고 믿거나, 또는 천성으로 타고난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슈타이너는 인간의 정신기관이 발달, 진화를 해서 상상적 인식, 영감적 인식, 직관적 인식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궁금하다. 물론 답은 나와 있다. 당연히 정신기관의 발달이다. 다만 우리가 정신기관을 보지 못하기 떄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필자는 셋 중에서 직관이 가장 잘 떠 오르고 이어서 상상이다. 영감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짐작하기에 필자의 정신기관이 필자의 습관으로 인해 다르게 발달한 때문이다. 그래서 영감 정신기관을 발달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필자의 습관, 정신이 움직이는 그 회로,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직관이 떠오르는 상황을 포착했다. 물론 떠오르는 그 당신에는 직관인줄 알지 못했다. '아! 직관이 이렇게 오는구나'를 여담으로 말하고자 한다.
필자는 몸이 안 좋으면 가끔 맹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으러 간다. 그런데 어느 날 자주 받던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는데, 순간 '이제 다른 안마사에게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는 생각, 아니면 '다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주 순간적이어서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드러내면 그런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잊고 일상생활을 하였다.
얼마 지나 다시 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는데, 평소와 다르게 필자의 몸에 안마사의 몸이 어느 순간 밀착되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깨닫는 순간, 필자가 몸을 움직여서 안마사의 몸에서 급히 뗐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고 안마를 다 받고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분명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만은 확실했다. 며칠 시간이 지난 후에 안마원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안마를 받다보면 아주 가끔 몸이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불쾌한 감정이 전혀 들지는 않는다. 몸이 밀착되어서 불쾌함을 느낀다면, 그건 성추행이다. 그래서 성추행의 범위가 상대방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성추행의 정의가 바뀐 것이다.
다음은 그 다음의 상황이고, 짐작이다. 그 안마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하였을 것이고, 그 곳에서 안마를 그만 두겠다고 한 모양이다. 안마원 입장에서는 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던 사람이 있는데, 갑자기 그만 두면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 물론 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던 사람도 날벼락이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필자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으면 될 일인데 '왜 그랬을까'. 하지만 분명 불쾌한 감정을 느꼈으므로 말을 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안마사도 오래 안마를 했기 때문에 작정하고 하지는 않은 듯도 하므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해가 되었다. 지난 번 떠오른 생각이 직관이었음을, 그리고 직관은 그렇게 떠오른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첫째, 직관은 상속의 자아가 아니라 본래 자아가 한 생각, 심상이다. 이를 필자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아스트랄체가 필자의 자아에 조금이나마 연결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내부로 향해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관을 파악할려면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발달시켜서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외부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요컨대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외부로 향하는 정도에 따라 자신의 직관을 파악한다. 물론 슈타이너의 주장이다.
둘째, 직관이 상속 자아가 아니라 본래 자아가 한 생각이므로 분명 이유가 있고, 따라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즉 미래에 일어날 일을 자신의 자아가 알려주는 경우이다. 하지만 직관(정신)이 보이지않기 때문에 본래 자아의 말을 잘못 파악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관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단 필자의 직관은 앞으로 일이 벌어지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것보다 여기에서 하는 선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자신에게 달렸고, 그 생각이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기 떄문이다. 물론 이것 또한 정신의 속성이다.
여담으로 법륜스님께서는 이런 정신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다만 그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자신은 여여해야 한다. 즉 벌어진 일은 다만 그 일일뿐이므로, 그 일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결정되므로, 그 선택을 자신이 행복하게 할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렇게 일이 벌어져도 그 일이 필자에게 또는 다른 누구에게도 꼭 나쁜 결과만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어떻게 관점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느냐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모든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마도 한 사람에게 계속받는 것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이 더 낫기도 한다. 물론 그 시간은 각각 다르므로 자신에게 마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나를 위해서는 오히려 기회일 수가 있다. 둘째, 안마원 입장에서 보면, 있는 사람에게 나가라는 말은 못하는데, 스스로 나갔기 때문에 선택지가 오히려 넓어진다. 다른 사람을 찾을 경우에 더 나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셋째, 필자가 다른 안마사에게 받아야 하는데 계속 그 안마원에서 받고 싶을 경우 그 시간이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살수가 있다는 것이다. 되풀이 하지만 역시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달라지므로 그 일에 매몰되어서 힘들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신의 속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다르지, 그 드러내는 의미는 거의 같다. 그 의미를 알아서 더 나은 선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신이 발달하고 같은 상황에서 뱅뱅 맴을 돌지 않는다. 여기에서 핵심은 누구나 맴을 돌고 싶지 않지만 돈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중요한 문장이 있다. "물질에 빠지게 되는 사람은 동일한 외형적 삶을 영원히 반복합니다(천체의 음악 인간의 신, 2021, 191)."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훌륭한 지도자)들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정신을 발달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아스트랄체 촉수의 발달이다. 아스트랄체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로 영혼의 바탕이며 감정체이다. 나의 아스트랄체의 감정이 나의 영혼의 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그 감정에 따라서 나의 영혼이 움직인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을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움직이게 할려면, 나는 나의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음은 그 예이다. 안마원에서는 필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인듯 다음부터는 여자 안마사에게만 받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는데, 순간 그 일들에서 필자의 영혼이 놓여났다. 그러니 마치 그 일이 다른 사람일처럼 환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모든 일들, 자아의 직관이 파악되었고, 그 모든 일들이 환하게 파악이 된 것이다. '아!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매몰되면 영혼이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는구나'.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일로 보는 것은 어렵다. 이렇듯 정신은 반복, 또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조금씩 발달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 이런 생각들이 무의식에서 끊임없이 늘 올라오므로, 즉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올라오므로 자신의 무의식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 그 일을 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하는 감정은 태어나서 세 살까지 거의 형성이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절대적인 보살핌과 사랑을 받아야 무의식의 정서가 부정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무의식에 어떤 정서가 깔려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 가만히 집중하면 어떤 감정이 끊임없이 올라오는데, 올라오는 감정이 긍정적이면 만족, 미소를 짓고, 반면 부정적이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해 주면, 차츰 아주 조금 감정이 바뀐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대부분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은 긍정적으로 자신의 무의식이 형성되어 있고, 반면 부정적이면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와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열의를 가지고 하므로, 부모님에 대해서는 감사의 마음만을 가져야 할 듯하다. 이것이 아스트랄체이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서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발달시킬 수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고개를 젓던지 해서 얼른 차단하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신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