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절
윤회라는 관리가 있었다.
재능은 많은데,
늘 과한 술이 흠이다.
세종이 윤회를 불러
앞으로 하루에
술 석잔만
마시라는 어명을 내린다.
명을 받는 윤회는
세잔을 마셔도
아직 무엇인가 부족하다.
어느 날
술이 건하게 취한
윤회를 불러 나무란다.
어찌 어명을 어기는가를 물으니
여명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술 석잔 마시고
취한 것을 보고도
거짓말 한다고 나무라니,
성상께서는
잔 크기를
말씀 하신 적이 없기에
양동이를 한 잔으로
하루에 세 잔만 마셨다고 하니
세종이 웃으면서
다시는 술 마시는 것에 간섭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빌딩을 옮기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간다.
새로운 곳에 올 신입을
교육시키는데,
하루 만에 그만 둔다고 한다.
만나서 왜 그런지
설명을 듣고
돌아와보니,
아직
새로운 빌딩에
매니저들이 한번도 출근 안 하고
전에 있던 곳에서만
만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사람에게는 질량에 법칙이 존재한다.
먹방을 보면
야리야리한 아가씨가
어마어마한 음식을 먹어도
문제가 안 생긴다.
소화를 해 내기 때문이다.
윤회를 보면서
세종은
저 사람은 많은 술을 마셔도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용이 쌓인 일이다.
오늘 나를 보면서
평소에 내가 한 행동들이 바른것이고,
배울것이 있다면
저 산 꼭데기에다 두어도 찿아온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자리를 펴도
배울것이 없다면,
올 수가 없다.
황금을 쌓아두면
가지러 온다.
황금이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면,
유산이 없어도
찾아 올 것이고,
가르친 것이 없다면,
유산만 가져가고,
더 이상 나올것이 없다면
독거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다 보고
다 배우고
전설의 고향으로
드라마로 보여준 일이다.
왜 그런지 원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것만 보이면
절대 사회를 알 수가 없다.
나무만 보질말고
숲도 보라 하면서
왜 그런지
원리를 모르면
어느 고승에 하소연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일 뿐이다.
모른다고 한다면,
후배들이 연구 할 것인데,
고승이 한 말이라고
무엇이 있는가 하고 연구가 없다.
보고 들은 것은
왜 그런지 연구하는 일이다.
이해가 되면,
스스로 이치를 깨우친다.
깨치고 나서 연구하는 일이다.
그것을 산에서는
수행이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지식인들이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생활 도를 수행하는 일이다.
지식인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환경을 공부하는 일이다.
깨치고 서로 나누어 융합을 하는 일이다.
산 공부가 끝나면,
중생 공부를 해야 하는데,
사회를 모르면
내가 배운 산 공부 이야기만 한다.
중생이 어려우면,
시주 할 사람도 없고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로 배우고 가춘 것을
나누어 보는 일이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4년4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