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30)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② 제목을 붙이는 방식/ 시인 안도현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Daum카페 http://cafe.daum.net/sangjupoet/ 시창작강의 - (10) 시 창작과정 - 필자(공광규)의 창작 경험 1/ 시인 공광규
② 제목을 붙이는 방식
김춘수는 시인이 제목을 붙이는 방식에 따라 시인의 태도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를 쓸 때 제목을 붙이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는 미리 제목을 정해 두는 것,
둘째는 시를 완성한 뒤에 제목을 다는 것,
셋째는 처음부터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답게 시의 의미와 내용을 중시하는 휴머니스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한다.
“제목이 정해져야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내용에 결백한 나머지 시의 기능의 중요한 면들을 돌보지 않는 일”이
있다며 시의 형식에 따라 내용이나 제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목을 처음부터 붙이든 나중에 붙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심하는 그 과정이 창작자에게는 중요할 뿐이다.
제목이 시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그렇다.
제목을 고치거나 바꾸는 사이에 시는 진화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간다.
그것은 제목이 시의 내용과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 있어서다.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이윤학, 「짝사랑」 부분,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문학과지성사, 2008, 16쪽)
생선가게의 비린내 나는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조금은 으스스한 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칼이 도마를 공격하는 주체이고 도마가 칼의 공격을 받는 객체이면 풍경은 살벌해진다.
시인은 그 섬뜩한 풍경이 싫었나?
상처투성이의 도마를 풍경의 주체로 내세워 도마가 칼을 물고 있다고 쓴다.
여기에서 따뜻한 주객전도가 이루어진다.
도마가 칼을 받아주고 있다고, 칼에게 모든 것을 맞춘다고,
도마가 스스로 나이테를 잘게 끊어버린다고 쓴다.
그러나 칼을 받아준다고 해서 도마의 상처가 완전하게 아무는 것은 아니다.
「짝사랑」이라는 제목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감춰야 하는,
입에 칼을 무는 아픔도 인내하는 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목을 이렇게 붙여야 한다는 시인들의 조언도 적지 않다.
시의 내용이 추상적일 때는 구체적인 제목으로,
구체적일 때는 추상적인 제목을 붙여주면 좋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지엽은 “제목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시의 격조와 긴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방법’과 ‘술어를 생략하거나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감탄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적 호기심이나 관능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선정적인 제목을 다루는 경우’도 예를 든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럴 때는 ‘무제(無題)’가 기다리고 있다.
대구(大邱) 근교(近郊)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박재삼, 「무제(無題)」 전문, 『千年의 바람』(민음사, 1975)
사실 나는 평소에 시든 그림이든 제목 앞에 ‘무제’라는 제목을 턱, 갖다 붙이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목이 없다니! 그건 자기 작품에 대해 창작자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무제’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제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제’를 제목으로 내건 작품치고 제대로 된 작품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대체로 예술가연하는 허위의식의 발동이거나, 작품의 미숙성을 눈가림하거나,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할 때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이는 제목이 ‘무제’를 제목으로 단 시나 그림일 터이다.
특히 비구상 계열의 그림이 이런 제목을 붙이고 화랑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린다.
나의 이런 편견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도록 만든 시가 박재삼의 「무제(無題)」다.
나는 습작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자취와 하숙 생활 대부분은 공교롭게도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부근에서 이루어졌다.
라면을 끓이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보면 몸살인 듯 열이 오른 기차가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곤 하였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는 어린 유학생에게 기차소리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음으로 들렸다.
어쩌면 그 무렵 기차가 한 차례 지나간 뒤에 남은 쓸쓸한 적막감이
나로 하여금 시를 끼적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적 화자는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라고
애교 섞인 엄살을 피웠을까!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6. 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30)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② 제목을 붙이는 방식/ 시인 안도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