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술 권하는 사회(현진건) 줄거리
바느질을 하던 아내는 바늘에 찔려 화를 낸다. 새벽 한 시가 되었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7, 8년 전 남편이 중학을 마치고 결혼하였고, 결혼하자 곧 남편은 동경으로 가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같이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괴로워도 남편이 돌아오면 공부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깨비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어서 무엇이든지 다 얻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비단 옷 입고 금지환 낀 친척들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경멸하였다.
그러나 긴 세월 홀로 어려움을 참고 기다린 아내에게 남편은 여러 달이 지나도 돈벌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에 있는 돈만 쓰고 걸핏하면 화만 냈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과 다른 점이 없었다. 단지 다르다면 남들은 돈벌이를 하는데, 그의 남편은 도리어 집안 돈을 쓰며 어디인지 분주히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든지 밤새 글을 썼다. 때때로 한 숨을 쉬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찼으며 몸은 나날이 축이 났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흐느껴 우는 남편을 볼 수 있었고 두어 달 후에는 술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오늘밤에도 그런 남편을 기다리다 바늘에 찔린 것이다. 별 환상을 다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남편이 문을 열라는 것 같아 뛰어 나가 보았더니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였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행랑할멈이 부르는 소리에 나가 보니 남편은 만취가 되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남편은 행랑할멈의 도움을 거절하며 간신히 방에 들어와 옷도 벗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쓰러진다. 아내는 남편의 옷을 벗기어 자리에 뉘려 하나 옷이 잘 벗겨지지 않자 짜증을 내며 남편에게 이토록 술을 권한 사람들을 탓한다. 남편은 쓸쓸하게 웃으면, 현 사회가 유위유망( 有爲有望)한 나의 머리를 마비 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하므로 이것 저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니,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도 하이칼라도 아니고 현 조선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란 딴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리집 이름이어니 생각한다. 조선에 있어도 아니 다니면 그만이라는 아내의말에 남편은 사회를 설명하며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다. 또 그런 사회에서 자신이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노릇을 못해 주정꾼 노릇을 하느냐고 화를 낸다. 남편은 아내의 무지에 답답하다고 하며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아내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듯이 “가 버렸구만, 가 버렸어.” 하며 밤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 고!” 하며 절망적인 어조로 말한다.
핵심 정리
▷갈래 단편 소설
▷배경 1920년대 서울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특징 사실주의적 경향
▷주제 일제 강점기의 부조리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이해 받지 못하는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
구 성
▷발단 바느질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전개 과거에 대한 회상과 초조한 심정의 아내
▷위기 만취되어 돌아온 남편
▷절정 술을 먹는 이유에 대한 남편의 변명과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아내
▷결말 집을 나가 버리는 남편
등장 인물
▷남편 경제적으로 몹시 무능한 지식인. 일제 강점기의 사회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에게서도 이해 받지 못해 심한 갈등과 방황을 겪는 인물
▷아내 결혼 후 7~8년 간이나 늘 혼자서 가난을 참고 견디지만, 무지로 인해 지식인인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평범한 아내
이해와 감상
현진건의 데뷔작은 1920년에 발표된 ‘희생화’이지만, 그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다음 해에 발표한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를 통해서였다. ‘빈처’에서 남편이 ‘나’는 공부를 하러 중국, 일본으로 갔다가 방랑의 세월만 보낸 후 귀국한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인 남편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작가 현진건은 상해 호강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다음 이 소설들을 지었는데, 작가의 직접적 체험이 짙게 배어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 고!” 하는 아내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말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나가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아내의 절망과 지적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지식인 남편은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한 아내를 이해시키는데도 실패하고 사회에도 적응해 나가지 못한다. 남편은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그 같은 부조리를 만드는 실질적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울분을 터뜨리거나 쉽게 좌절하고 마는 소극적이고 자조적인 식민지 지식인의 전형이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고민과 고통을 말에 ‘사회’를 요리집 이름으로 연상해 내는 무지한 여인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아내의 무지가 남편에게 또 한차례 술을 권하는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아내의 행동과 심리묘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남편 역시 아내의 시선으로만 보여지고 있다. 때문에, 남편의 사회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성면에서는 지식인 남편과 무지한 아내의 대립을 통해, 지식인 남편의 고뇌를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 것은 시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편의 모습은 당대 지식인의 모습이며, 조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빈처’가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그 고뇌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적인 것이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투시하려고 하는 작가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