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신록으로 숨이 막힌다. 깊이 숨을 쉬면서 남쪽으로 떠났다(4. 23~24).
길 위에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디작은 생명체까지도 이 우주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가 없다는 것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또 알게 된다.
行行本處 至至發處,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이고, 닿고 닿아도 처음 그 자리임을.
평소에 좋은 여행지 소개를 접하면 기사를 스크랩해둔다. 그래서 가게 된 여행지가 부산 해파랑길과 감천문화마을이다.
부산 해파랑길은 국내 최대의 트레킹코스로 총길이가 770km이란다. 출발지는 오륙도 해맞이공원이다.
기사에 나오는 대로 광안리해변 끝자락 민락동 어민활어직판장 옆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오륙도로 향했다.
택시 요금이 8,500원이다. 해맞이공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거기에도 주차장이 있음을 알았다. 허방을 짚은 것이다.
기사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 기사는 오륙도에서 광안리해변까지 8.8km를 걷는 가정 하에 광안리 해변 주차를 권한 것이고 우리는 처음부터 조금만 걷다가 감천마을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도 택시운전사의 구수한 이야기는 좋았다. 가슴 아픈 것은 부산에 생산 공장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창원이나 마산으로 다 빠져나가고 부산은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고 한다.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부터 느릿느릿 산책로를 걸었다. 매콤하면서 비릿한 유채꽃이 산책로 곳곳에 별처럼 뿌려졌고, 잔잔한 바다를 끼고 나무 데크와 오솔 숲길, 구름다리로 이어진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군사보호지역이어서 민간인 통제 구역이었기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는 1.4km남짓의 농바위 근처에서 방향을 틀어서 돌아왔다.
감천마을을 보고 다음날은 통도사 서운암 들꽃축제에 가기 위해서다.
감천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근처에서 예쁜 아줌마를 만났다. 자신의 집이 감천마을 밑에 있다면서 가기 쉬운 길과 주차장까지 일러준다. 감천마을은 유명세를 타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아줌마가 일러준 대로 아미성당에 무료로 주차했다. 성당 옆에는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천국카페가 있고 건물은 작고 소박하다. 밝고 영적인 기운이 가득한 성소이다. 아미성당 바로 옆이 감천마을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산만디까지 색색의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그리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파랑, 보라, 분홍, 녹색의 집을 보면서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지만, 배급받은 페인트가 색깔이 제각각인데다가 모자라서 알록달록한 집이 되었다. 감천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해서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팍팍한 삶에서도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지어진 주택은 배려하는 민족성을 보여준다. 또 증산교에 근거하여 세운 태극도 신도들의 집단촌이 있었던 곳이란다. 2009년부터 작가들이 들어와 담벼락과 축대에 벽화를 그리고 설치작품이 들어서면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예술과 접목하게 되었다. 지상의 작고 소박한 꽃씨가 감천마을에 날아 들어와 알록달록한 들꽃세상이 된 것이다.
러브 텔이 많다던 대연동 근처에 숙소(한스빌모텔)를 정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광안해변으로 갔다. 밤이면 광안해변은 젊은이들과 자동차로 무척 붐빈다. 낮에는 해운대, 밤에는 광안리라 했다. 7km 넘는 광안대교가 해변과 같은 방향으로 시원스레 뻗어있다. 색색의 보석을 뿌린 은하수가 광안리 앞 바다에 내려온 것 같다. 광안대교 왼쪽 고층 빌딩의 현란한 색상은 점입가경이다. 어방축제기간이어서 광안대교 중간 중간에 레이저로 예쁜 동자상을 만들면서 초록빛의 강렬한 쇼를 펼쳤다. 곳곳에 물고기등과 청사초롱, 연주단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상큼한 바닷바람이 불고, 해변과 상가마다 가득가득 터질 듯 한 젊음이들의 숨결로 나도 덩달아 취한 듯, 몸과 마음이 붕 떠는 것 같다. 이런 것이 환락의 요지경이리.
다음날, 아침을 다시 신발끈을 조였다. 미세먼지가 걷히고 쾌청한 날이다. 어제 못다 걸어본 해파랑길을 조금 더 걸어보려고 어제와 반대방향인 동생말에서 오륙도 쪽을 향해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길이 시작되자 해운대 쪽의 마린시티라 불리는 80층 고층 아파트단지와 광안대교 그리고 동백섬과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도 보인다. 경관도 어제 걸은 길보다 더욱 자연스럽고 신비하다. 해식동굴, 해녀막사, 치마바위, 농바위, 마치 공룡발자국 같은 돌개구멍, 해운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어울마당을 지나서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왔다.
국제시장을 찾았다. 대구로 치면 서문시장 같은 곳이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한 곳이 되어 버렸다. 영화 촬영지를 물었더니 꽃분이 가게를 가르쳐준다. 이름도 위치도 정겹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부산 대표 음식은 밀면, 돼지국밥, 곰장어이다. 돼지국밥과 곰장어는 먹어 본적이 없어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국제시장 근처에서 밀면을 먹었다. 밀면은 밀가루로 만든 냉면이다.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맛이 일품인데 해장으로도 그만이라고 했다. 착한 가격 5,000원이다. 국제시장 근처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을숙도를 둘러봤다.
을숙도 조각공원과 문화관을 둘러보고 습지는 넓어서 자전거로 둘러봐야한다기에 여지를 남겨두었다.
애초에 계획한 서운암은 가지 못했다. 이런 것이 삶이고 여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