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39)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 ④ 문장의 빛깔과 무늬/ 시인, 우석대 문창과 교수 안도현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simpleton36/ 그74. <검은 빛깔 하얀 빛깔>
④ 문장의 빛깔과 무늬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고 한다.
시의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나타난다.
80년대 이후 우리 시에 대폭 도입된 ‘양행걸침’ 형태는 시의 형식과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을 선도한 것은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이다.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아버지는 저리
화가 나실까 아버지는 목이 말았다 물을
따라 드렸다 아버지, 뭐 그런 걸 가지고
자꾸 그러세요 엄마가 말했다 얘, 내버려
둬라 본디 그런 양반인데 뭐 아버지는
돌아누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 당겼다
―「꽃피는 아버지」 부분
진술과 대화가 행을 걸쳐 뒤섞여 있다.
만약에 얌전하게 행을 나누고 소설처럼 대화 부분에 큰따옴표를 붙인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 시가 자아내는 긴장미와 박진감은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의 한 부분을 문장으로
옮겨다 놓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양행걸침 기법은 한국시의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소극적인 현실 대응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행갈이의 변화가 한국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 파급력은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1989)에 와서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어느 푸른 저녁」 부분
장석남의 다음 시는 시행의 배치가 언어의 빛깔을 어떻게 채색하는지 잘 보여주는 시다.
마당에
녹음(綠陰)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 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장석남, 「마당에 배를 매다」 부분
저녁별을 ‘몇 포기’라고 표현한 것은 앙증맞도록 아름답다.
깊은 밤이 아니고 저녁 무렵이므로 그 별은 징검다리 ‘끝에’ 간당간당하게 걸려 있는 듯 보일 테고,
개수가 많지 않고 ‘몇’일 뿐이므로 연필 깎는 소리처럼 희미하게 ‘떠서’ 세상을 가물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시행을 건너갈 때마다 조심스러워하는 언어의 빛깔이 마치 어린아이의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는 듯하다.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풍경과 문채(文彩)가 성공적으로 어울려 시행 배치의 미묘함을 일깨워주는 시다.
오랫동안 시작 활동을 멈추었다가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세 시인이 있다.
서정춘, 위선환, 신현정이 그들이다. 이 시인들의 시가 왜 좋은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행과 연부터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문채가 다르다.
오랜 시간 장인으로서의 내공이 개성적인 형식을 낳았다.
허드레
허드레
빨랫줄을
높이 들어올리는
가을 하늘
늦비
올까
말까
가을걷이
들판을
도르래
도르래 소리로
날아오른 기러기떼
허드레
빨랫줄에
빨래를 걷어가는
분주한 저물녘
먼
어머니
―서정춘, 「기러기」 전문
이 시는 한자어 하나 없고, 종결어미와 마침표도 없고, 시행의 몸매는 가을 들녘의 깡마른 수숫대 같다.
행의 배치는 박목월이나 박용래를 연상시키고, 대구의 기법은 한시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서정춘의 연금술은 엄경희의 말대로 “자기 체험의 본질적 형해(形骸)가 드러날 때까지 깎고
또 깎는” 내용과 더불어 한 행에 2어절 이상을 배치하지 않는
형식의 절제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처음 낙타를 타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 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버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신정현, 「바보사막」 전문
사막이라는 극지로의 여행은 상상의 여행이다. 하지만 시인은 사막을 간다는 것,
난생처음 낙타를 타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설렌다.
그러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낙타를 죽이고 굳기름을 꺼내먹는다는 상상에 이르게 되는데,
이 난데없는 부분을 읽으며 우리는 묘한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이유가 뭘까? 현실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옹졸한 우리의 처지를
이 시가 호기롭게 혁파하고 있기 때문이고,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칼을 높이 쳐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륙적 상상력 가까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현정의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이 이 시도 한 행을 한 연으로 처리하는 대담한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행에서 행으로 넘어가는 속도를 절반으로 늦추면서 독자에게 은근히 행간을 채워 읽을 것을 주문한다.
시가 마련한 공간 속으로 독자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니라
놀이터를 마련해 놓고 마음껏 놀아 보라는 식이다.
기러기 몇 마리가 한 줄로 날아서 임진강을 내려왔다
기러기들의 아랫배가 강바닥에 스치고 닿았다 강바닥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놀 들고 전신이 물들자 여자는 말없이 누워주었다
훌훌 벗더니 제 몸 위로 강을 끌어올리고는 얇다랗게 말갛게 유리판같이 얼었다
여자는 가린 것 없이 들여다보였지만
어떡할까,
나는
망설이다 말았다
내가 다 벗고, 맨살로, 놀빛 비낀 겨울강의 살얼음판 위에 엎드릴 것인가
강이 녹고 여자도 녹아서 흠뻑 젖을 무렵 햇살 환한 날 다시 찾아가서,
무겁고 울퉁불퉁한 내 몸을 보여주고
한 번 더 누워주겠느냐고 물어보려 한다
―위선환, 「해동기」 전문
강의 결빙과 해동의 시간을 한 사람의 여자에 비유해 묘사하고 있는 시다.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할 때는 행의 길이를 산문처럼 길게 늘이고,
화자의 심리를 그릴 때는 아주 짧은 시행을 선택하고 있다.
행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는 경우라 하겠다.
<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7.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39)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 ④ 문장의 빛깔과 무늬/ 시인, 우석대 문창과 교수 안도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