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 편히 쉬거라
4월 25일 새벽 4시40여분에 故 손정민(22)씨 실종 당일 " 한강에 들어가는 남성을 봤다 "고 증언한 목격자가 있다.
" 그날 새벽까지 술을 함께 마신 친구 A씨의 휴대폰에서 혈흔(血痕)이 발견되지 않았다 "고 경찰이 6월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도 발표를 한다.
그날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 A씨와 단 둘이서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신다. 여간히 가깝고 친하지 않으면 그토록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헤매지는 않았을 것도 같다. 친구는 만취된 상태로 잠에 빠지고 정민이는 스스로 한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일까.
그 나이 그 시절에는 누구나 술독에 몇번씩은 빠져서 방황하며 허우적 거림의 추억들이 있을 거다. 술이 술을 부르고 이성(理性)은 마비 상태로 젖어들기도 한다. ALCOHOL로 달구어질대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식히기 위해 차가운 물속을 선택한 것인가. 뇌(腦)의 통제 억제 기능도 상실된 상태이다.
반세기 넘도록 주탁(酒卓)을 두드렸던 노객에게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느낌이다. 이와 같은 임상실험 자료도 아마 전무(全無)한 것이 아닌가. 훤히 동이 틀 때까지 둘이 술을 마실 정도면 막역지간(莫逆之間))인 친구일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특수한 원한이 없다면 절친의 우정을 깨고 허물어 버린다는 것도 이해불가한 사실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둔한 두뇌를 가진 노객으로서는 상상의 나래를 접을 수 밖에 없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드메에 있을까. 오직 도 아니면 모 스스로 결단하여 행동에 옮긴 그 자(者)와 만물을 창조하여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조물주만이 익히 알고 있으리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둔한 두뇌를 가진 노객으로서는 상상의 나래를 접을 수 밖에 없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드메에 있을까. 오직 도 아니면 모 스스로 결단하여 행동에 옮긴 그 자(者)와 만물을 창조하여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조물주만이 익히 알고 있으리라.
유족측에서는 같이 술을 마신 친구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모양새이다. 용의(容疑)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당사자측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자들을 고발할 것이라고도 한다.
의대생인 스물두살의 청년 아들이 졸지에 사망을 했으니 유족의 마음은 어떠할까. 더구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앞날이 창창(蒼蒼)하고 선망(羨望)의 대상인 의사(醫師)가 되기를 학수고대도 하였을 터이다. 가내(家內)의 희망이며 보물이며 기둥이었을 것이다.
오늘 6월 5일(토)도 이 노객(老客)은 언제나처럼 아침에 한강가로 접어든다. 매일 왕복 10여KM 거리를 13,000보 전후를 두시간 남짓 걷곤한다. 일종의 중독증상이나 다름이 없다. 비가오나 눈이 내리고 태풍이 불어도 일상은 바뀜이 없다.
영동대로를 내려서는 순간에 마음은 어느새 반포대교가 있는 한강공원으로 발길은 향하고 있다. 가끔은 열살도 안된 쌍둥이 손녀 손자와 자전거를 타고 즐기던 코스이기도 하다.
정민이의 마지막 장소가 어디일까. 잠시 명복이라도 빌고 싶은 심정이다. 반포대교에서 상류방향으로 300여 미터 정도에 수상택시승강장 근처이다. 고인(故人)을 위한 추모(追慕) 장소가 있다. 수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간 발길의 흔적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한 달이 지나도록 확실한 사망 원인도 밝혀진 것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길인지 아니면 친구을 포함하여 타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인지 한 마디로 안타깝고 애닳은 사연들이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달라는 하소연과 명복을 빌어주는 절절한 목소리들이다. 제3자인 시민들의 이토록 애끓는 심정은 모두가 같은 한 마음이리라.
시커먼 먹구름이 온누리를 뒤덮는다 해도 " 번 ~ 쩍 "하는 천둥번개가 어둠속을 환히 비쳐줄 것이다.
잠시 역사의 뒤안길에 숨긴다 해도 진실은 언제나 밝혀질 것이며 정답은 오롯이 하나가 아닌가.
" 손자 같은 정민아 ! 미안하다 먼 그곳에서라도 편히 쉬거라 !
2021년 6월5일 무 무 최 정 남 "라고 추억의 공책에 한 마디 남긴다.
" 의과대학 6년 졸업하고 의사국시에 합격해야 의사가 된다. 수련의 인턴 1년 전공의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전문의(專門醫)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의사다운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대학원과 박사과정을 거쳐 학위를 취득하려면 약 5년여의 세월이 필요할 게다. 그리고 해외연수 2년 정도도 어쩌면 필수코스가 아닌가. 군의관 3년도 빼놓을 수 없는 의무이다.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있는 전문의사가 되려면 최소한 20여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내 아들과 며느리가 겪어온 과정을 옆에서 바라본 애비로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길고도 험난한 시간을 접고 머나 먼 그 곳으로 떠난 의대생 정민이가 아닌가. 무엇이 그리 급해서 무슨 까닭이 있기에 어떤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도전하는 과정에서 시련과 절망의 연속이 따른다. 성공과 실패는 삶의 필연적으로 예기치 않게 부딫치는 과정이렸다. 거침이 없던 젊은 청년의 죽음은 하나의 미완성의 작품으로 승화시킴은 어떨까. 인간들에게는 언젠가는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연의 법칙이며 순리이다.
거기에도 의사국가 시험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갈고 닦아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국시의 출제위원이 되어 앞으로 올라오는 후배들을 돈독히 보살피고 가르쳐 주리라 믿는다. 이승에서 못 다 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마음껏 발산하면 어떨까. " 이처럼 무망한 헛발질로 머리는 멍하고 가슴은 내려 앉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발길을 돌리는 순간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인다.
2021년 6월 5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