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46) 시 합평의 실제 1 - ① 김종겸의 ‘산토끼는 왜 집으로 갔는가’/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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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종겸의 ‘산토끼는 왜 집으로 갔는가’
< 원작 >
산토끼는 왜 집으로 갔는가/ 김종겸
산이 강에 잠겨 있더니
산토끼의 가쁜 숨소리가 뽀글뽀글 올라오네
씹어대던 싸리나무 속살, 그 순둥이는 버들개지에 걸려 연처럼 나부끼고
한 쌍의 청둥오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나도 허우적거리는데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는 상수리나무 잎새를 베고 잠을 자던 피라미가 깜짝 놀라 가장자리로 떠미네
상수리와 도토리는 물에 떠내려가고
산토끼는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산에 오르는데
물결치는 중턱 어디쯤 중택이는 바위틈에서 모래무지와 부산하게 산란을 준비하고
실한 노간주나무 코뚜레가 나를 끌고 봉우리로 처 오르네
아직 산정엔 까슬까슬한 바람이 얼굴 비비며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고 등짝을 툭 치는데
허기진 배는 깜짝 놀라 강둑에서 자맥질하네
산과 강을 오가며 젖은 몸 말렸다 하기를 몇 번 산토끼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 작품에서 산토끼는 나의 꿈이고, 이상이고, 현실이다.
< 합평작>
산토끼는 왜 집으로 갔는가/ 김종겸
산이 강에 잠겨 있더니
산토끼의 가쁜 숨소리가 뽀글뽀글 올라오네
싸리나무 속살 같은 순둥이는
버들개지에 걸려 연처럼 나부끼고
한 쌍의 청둥오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나도 허우적거리는데
상수리나무 잎을 베고 자던 피라미가
깜짝 놀라 가장자리로 떠미네
상수리와 도토리가 물에 떠내려가고
산토끼는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해 산으로 오르는데
실한 노간주 나무 코뚜레가 나를 끌고 봉우리로 쳐 오르네
까슬까슬한 바람이 턱수염으로 얼굴을 비비며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를 보고 등짝을 툭 치는데
허기진 배가 깜짝 놀라 강둑에서 자맥질하네
산과 강을 오가며 젖은 몸 말리기를 몇 번,
산토끼를 데리고 집으로 가네.
< 시작노트 >
건축 리모델링 현장을 누비다보니
시상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쓰고 싶은 생각은 문득문득 간절한데
일에 묻혀 있다 보면
어느새 날아가 버립니다.
나름대로 퇴고 과정을 거치지만
갈수록 들여다볼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동안 보냈던 시들은
몇 번이고 퇴고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이번 시는 특히 퇴고 과정이 부족했습니다.
모자란 작품,
합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합평노트 >
원작 말미에 “산토끼는 나의 꿈이고, 이상이고, 현실”이라고 언급했듯이,
산토끼는 현실과 이상을 마음대로 오가는 존재입니다.
산토끼는 ‘나’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 좇는 꿈이기도 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산토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초현실을 표방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산토끼는 산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집으로 갔는가가 이 시의 화두입니다.
작품에서 ‘집’은 이상을 추구하는 자아를 옭아매는 족쇄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헤매다가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고뇌가 밀도 있게 형상화되는데,
그것은 “산이 강에 잠겨 있더니/ 산토끼의 가쁜 숨소리가 뽀글뽀글 올라오네”라는 표현과
“산과 강을 오가며 젖은 몸 말리기를 몇 번”이라고 하는 형상화가 증명해줍니다.
전체적으로 중년 가장의 고뇌가 전달되어와 가슴에 싸한 바람이 붑니다.
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도 안주하지 못하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슬픈 눈동자가 보입니다.
제3행에서 “씹어대던”이란 어휘는 삭제하고 “싸리나무 속살 같은 순둥이는”으로 함축합니다.
이렇게 수정해도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는”이라는 표현과
“물결치는 중턱 어디쯤 중택이는 바위틈에서 모래무지와 부산하게 산란을 준비하고”,
“산정엔”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삭제합니다.
이쯤 해놓고 읽어보면, 처음 만났을 때의 난해함이 좀 해소될 것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 8. 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46) 시 합평의 실제 1 - ① 김종겸의 ‘산토끼는 왜 집으로 갔는가’/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